'의리'는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 도리다. 그 가치를 잰다면, 의리는 산 같고 죽음은 기러기의 털(鴻毛)같다. 하지만 옛 사람들은 의리를 그렇게 뚜렷한 명제로 대하면서도, 가슴속에 있는 그것을 글로 표현하지 못한다(不文於胸中) 했다. 현대에 이르러 이 모호한 화두 '의리'는 남을 등쳐먹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인식이 팽배할 정도가 되었다.
오래됐으나 낯익은 '도원결의'는 훗날 유비가 촉한(蜀漢)을 건국하는 기반이었다. 또 전장에서 생사를 넘나들면서도 변치 않던 형제들의 의리는 남자들의 로망이 되기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미혹(迷惑)은 '도원결의'의 시작이 유비의 생존전략에서 기인했다는 점을 쉽게 지나치게 한다. 장비와 관우를 처음 대면하는 유비의 심중에는 의리란 '패거리를 지어 천하제패의 이치에 다가가는 것(牌以密理)'일 뿐이었다.
학업을 중도에 포기한 탓에 돗자리를 짜며 저잣거리의 협객들과 여기저기 어울려 다니던 유비는, 봉기한 황건당이 천자가 있는 낙양성을 향해 진격하면서 지방관군을 연전연파하던 때에 장비를 만났다. 지방각지의 현령들이 앞다투어 의병을 모집하던 상황속에서 그는 모든 권력은 '패거리'에서 시작된다는 이치에 골몰하던 차였다. 당시 힘이 세고 싸움질을 잘하는 장비는 지방관리를 흠씬 두들겨 패고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는데, 이런 과정을 소상히 살핀 유비는 자신과 한 때 동문수학했던 고을 현령 공손찬에게 부탁해 일면식이 없던 장비를 구했다.
관우 역시 일면식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으나, 그가 장비와 오랫동안 한치의 물러섬이 없이 위풍당당하게 겨루는 것을 보고 유비는 장비를 꾸짖어 제지하며 타관에서 방문했다가 곤경에 처한 그의 마음을 샀다. '도원결의'는 그렇게 유비의 권력쟁취 야욕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러니 이는 권모술수에 능한 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스크럼짜기의 모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인의(仁義)를 가볍게 여기고 공리(功利)만을 꾀하는 일은 그들의 영웅담에 가려 선량한 이가 그 위험성을 알아채기 어렵다.
관우, 장비는 물론 제갈량, 조운 같은 유비와 뜻을 함께 했던 영웅들이 강토에 피를 흩뿌려 세운 피의 제국은 무능력한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헌납되었으며, 당대에 멸망하고 말았다.
이에 앞서, 진(秦)제국을 무너뜨리고 한(漢)의 고조가 된 유방도 한낱 건달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게 한신(韓信)을 비롯한 장량, 소하 같은 3걸이 없었다면, 토호세력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군사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던 항우를 패배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방은 천하를 통일한 이후 한나라의 권력이 확립되자 제후들을 전부 유씨로 포진할 계획에 따라 초왕(楚王)에 봉해졌던 한신 등을 역모자로 모함하여 참형에 처한다. 이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의 고사를 낳았다.
거슬러 올라가 춘추전국시대에도 눈여겨볼 만한 그릇된 의리가 있었다. 갑부 '엄수'의 얘기다. 평소 벼슬살이가 꿈이었던 그는 어느날 만난 거렁뱅이 '협루'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오랫동안 큰 비용을 투자하여 환골탈태 시킨 뒤 협루가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돕는다. 하지만 정승이 된 협루는 엄수를 만나주지 조차 않았다. 엄수의 끝없는 탐욕이 부를 재앙을 예견한 경계심 때문이었다. 화가난 엄수는 그런 협루를 죽이기로 작정한다.
엄수는 결국 힘이 센 장사 '섭정'에게 접근해 그의 가족들이 윤택한 삶을 누리도록 재산을 아낌없이 대준다. 그 부담을 주체할 길이 없던 '섭정'은 자신의 모친상을 치른 후 엄수로부터 배은망덕한 '협루' 얘기를 들었고, 그길로 협루를 찾아가 단박에 때려 죽인 뒤 그 자리에서 자살했다. 마음을 독으로 샀으나 그 독이 덕으로 가장된 경우다. 어리석은 죽음이다.
우리 옛 선비들의 '의리'는 멀리는 공자의 역사철학인 춘추정신, 곧 '춘추의리(春秋義理)'에 기반을 두고 있다. 공자는 춘추(春秋)에서, 천하의 공리(公理)로 사리사욕을 질타하고 인류의 선덕(善德)으로 술수와 폭력을 추방해야 한다고 했다. 역사는 결코 진리와 허위, 선과 악의 투쟁에서 절대로 물러서서는 안 되며, 끝까지 허위와 악을 폭로하여 진리와 선(善)앞에 굴복시키는 도덕의 힘을 천하에 나타내야 한다고 했다.
사람의 의리는 그런 도덕적 양심을 실천하는 행위다. 따라서 누군가 의리라는 단어속에 자기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상대방의 희생을 강요하는 목적을 담았을 경우, 그것은 의리에 어긋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의리의 본질을 해치는 행위가 된다.
그 가장 극단의 폐단은 정치에서 발견된다. "우리가 남이냐"는 오늘날 우리 정치인들의 뿌리 깊은 정서가 되었다. 이는 지역주의의 원천이며, 유권자들은 그런 정서의 강요를 거부하지 않는 폐해를 낳은 것이다. 몰표를 믿는 정치인들은 모리배들에게 공천장사를 하는데 혈안이 되며, 표리부동한 조폭들의 의리가 지배하는 지경이 되었다. 적어도 익산에서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변하되 변치 않는 것
다시 옛것을 새롭게 보건데,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도리란, 덕을 갖춘 사랑과 참된 행위다. 변하면서도 변화하지 않는 사계(四季) 처럼,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겉과 속이 다르지 않으며 처음과 끝이 같은 것이 의리다. 이 때 비로소 "의리 없는 놈의 친구가 되기보다 의리 있는 놈의 원수가 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경구가 성립한다.
하지만 패거리를 짓고 그릇된 짓을 일삼는 익산의 정치권 일각에는 그런 의리를 비추어보기 조차 부끄러운 현주소다. 더구나 그들은 자성을 요구하는 내부의 목소리도 의리에 어긋난다면서 적대시 하고 있으니, 그들이 왜곡한 일그러진 의리를 유권자들이 계속 지켜보아야만 하겠는가. 표를 얻기위해 단상에 올라 했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이 하거나 아예 망각하고서 스스로 비리의 온상이 된 자, 그 온상의 의리로 줄세우는 낯 두꺼운 자와 그 무리들, 보건데 이런 환경에서 명증되는 의리란 같이 죽자는 물귀신일 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