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가 봄의 전령으로 들이닥친 시점이다. 밟히고 짓이겨진 풀에서 생명의 냄새가 확 끼치듯이 봄은 오고있다. 무릇 상처는 아문다.

새싹은 꺾인 풀잎 틈에서 움튼다. 하지만 치유가 더딘 깊은 상처는 괴사(壞死)를 일으키며 생명현상은 복원력을 상실한다. 흉터는 차라리 통증이 그리운 마비로 죽음의 냄새를 풍긴다. 같은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반응하는 것은 생명연장의 지혜다. 생명의 대물림은 축적된 시행착오의 복제를 포함한다.

3.1독립만세운동이 각지에서 재현됐다. 그러나 92년 전의 절박한 몸짓은 길 위에 박제되었고, 그 때의 눈물은 고갈되었다. 그동안 우리가 길어 올린 일제 강점기의 박탈감이 시간이 흐를수록 무디어진 탓이다. 그것은 영양과다로 비대해진 우리의 정신상태에 비례한다.

그날, 적개심과 공포감만으로도 탈골될 것 처럼 떨리던 영양결핍의 몸들은, 울부짖으며 결사의 의지로 가슴을 내밀었겠으나, 그렇게 짙은 민초들의 냄새는 온데간데 없는 봄의 길목이다.
부자유와 억압, 강탈이 우리를 거리로 내몰았으니, 하늘 가까이 뻗어 올린 손은 진정한 '독립'을 쟁취하기에 앞서 '밥'을 갈구했다. 피골이 상접해 가만히 두어도 목숨을 앗아가는 질병에 노출되고, 면역력이 저하되어 작은 상처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택한 저항이었다. '이대로도 어차피 죽을 것'이 그날 우리들이 친 배수진(背水陣)이었다. 더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은 우리로 하여금 집을 버리게 한다. 흉기 앞에 가슴을 내밀게 한다.

그로부터 1세기 가까이 진보를 거듭해 온 지금 '밥'은 잘 분배되고 있는가. 그 수가 다를 뿐, 거리로 나와 자진(自盡)하는 이들이 여전한 오늘이 아닌가. 반면, 과다하게 섭취한 고혈로 고도비만에 걸린자들은 더욱 늘어났다. 부(富)의 집중과 극빈(極貧)은 모두 '독립'의 적이다. 착취는 강탈과 다르지 않으며, 그런 체제의 유지는 노동의 댓가를 정당하게 분배받을 권리를 유린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극빈의 사슬을 끊으려는 이들이 저항하는 것 마저 '부당'으로 규정하는 부자와 정권이 있는 한 부자유는 엄존 할 수 밖에 없다.

지금도 봄은 오지만 허울 좋은 봄일 뿐이다. 92년 전 이땅의 민초들은 그저 적이 쏜 차가운 총탄에 가슴을 찢겨 스러져갔으되, 오늘 처럼 우리가 무관심과 허위의 냉기로 얼려낸 얼음 창에 관통 당하는 것을 꿈이라도 꾸었겠는가. 부자와 권력의 흉기는 결국 빈자에 속하지 않는 대다수의 외면이 만들어주고 있다. 빈자는 오직 '밥'을 좇아도 힘들고, 비만한 자들은 '독립'에 관심조차 없다.

우리가 선택 할 수 밖에 없었던 '독립'은 국민이 주권을 지닌 국가 건국이었지만, 힘의 논리 앞에서 성문 헌법은 선언적 의미에 그칠 뿐 빈자에게는 무의미하다.

비만한 자들이 음지를 양지로 바꾸는데 둔감하고, 향락을 좇으며 힘을 소진하는 행태는 당초 민주주의의 표피 그 고지방부(高脂肪部)인 개인주의만을 편식한 데서 비롯한다. 빈자가 '밥'에 묵숨을 거는 동안 또한 비만한자가 무관심한 사이 이 나라는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특정인들의 놀이방이 됐다. 그들은 거리로 뛰쳐나온 극빈자들을 마음껏 제거하며, 전쟁놀이를 즐긴다.

대규모 한.미합동군사훈련을 강행한다. 북한을 자극하는 삐라를 북쪽 상공에 뿌리는 등의 심리전에 여념이 없다. 긴장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그들은 남북간 국지전이라도 터지고 남쪽의 피해를 최소화한 상황의 승전보를 노릴 수도 있겠다.

그것이야 말로 권부가 노리는 특급행 티켓이 아닐까. 이 정부는 때이른 레임덕의 험로(險路)에 떨어진 상황이다. 대선의 전초전인 총선도 넘어야 할 산이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 그들이 선택한 충격요법일 수 있다.

우리는 그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파워게임의 결과를 예단 할 수 있다. 안정을 바라는 비만과 고도비만자들, 그리고 그들의 세상을 보장하는 권력은 그 힘과 숫적인 면에서 우위를 차지한다. 그들은 이기는 것에 가장 큰 희열을 느끼며, 죽이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는 것을 단숨에 제압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정글의 법칙에 충실하다. 국지전이 벌어지거나 말거나 남북간 긴장상태가 극단에 이르게 되면 그들은 일단 한 덩어리가 된다. 그들의 광기에 극빈자들은 주눅이 든다. 위기는 조장할 수록 그들에게 유리하다.

'독립'은 '밥'에 묻히고

문제는 권력의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비만한 자들이다. 권력은 죽여서 벗긴 가죽으로 만든 북을 두드리고, 비만한 자들은 생명이 없는 그 마성(魔性)의 전쟁 행진곡에 춤을 춘다. 자신도 모르는 증오에 들떠서, 한 때는 살아있었으나 쫓기고 강탈당하고 잡아늘여진 가죽, 그 죽음의 울림에 춤추는 비만한 자들, 92년 전에 자신이 그 가죽의 주인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그들이 문제다. 권력의 북소리에 춤췄던, 자신이 지닌 심장 고동의 울림을 더이상 듣지 못하는 비만한 자들이 바로 이땅의 부적절한 권력의 하수인이며 도구다.

누구든지 폭력 앞에 자유로운가. 오늘 비만의 결핍이 단지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무릎의 문제에 불과한가. 오늘 한 방을 노리는 정권은 그렇게 절박한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다. 도대체 얼어붙은 대지 위에 씨를 뿌리는 권력을 언제까지 뒤따를 것인가.

모름지기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다. 모자라는 것은 채우면 되지만 과잉은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92년 전 결핍의 시절보다 더 위험하다. 자신의 짓눌린 심장 소리를 듣지 못하고 혈전으로 막힌 혈관의 팽창을 알지 못한다. 몸안의 기름덩어리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모든 감각의 퇴행을 막지 못한다. 병원체(病原體)에 대한 저항력이 바닥난다. 그렇게 되면 더 무엇을 탐닉할 수 있겠는가.

북풍한설은 낡은 것을 몰아내고 대지를 정화한다. 뿌리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대사를 멈춘 몸을 감량한다. 그렇게 겨울을 함께 나야만 봄을 알 수 있다. 무관심은 온실과 같다. 그 안에서 무엇을 누리는가. 오늘 3월 1일은 비만에 그렇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