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의 법은 길을 잃었다. 법의 길은 국민의 신뢰다. 그 길은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관리한다. 그러나 신뢰를 퍼다가 검은 돈으로 바꾸고 신뢰를 파서 불신을 가리는데 쓰는 일이 허다하니, 그 길은 깊게 패여 끊기고 저 편의 길은 지워진 채 황량하다. 파손된 길 위에서 법은 영락없이 망나니의 손에 쥐어진 칼이다.

퇴직 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부장판사 이상 소위 '전관'들의 활약상은 우리 법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언론사의 특정 조사에 따르면, 전관 변호사들은 형사 항소심 사건을 맡아 65%이상의 원심파기 판결을 받아냈다. 피고인에게 유죄를 판결한 1심 판단의 오류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방증이다. 이렇게 형편없는 판사들이 1심 법원에 수두룩하고, 그 위에 법을 재단하는 전관 변호사와 항소심 판사들이 있는 것이다.

특정 전관변호사들이 손을 대면 1심의 실형은 집행유예로, 집행유예는 벌금형으로, 대개 3건 가운데 2건의 양형이 깎였다. 통상 사건을 기소한 검사가 7할의 승률을 보이지만, 전관 변호사가 사건을 맡으면 승률은 완전히 뒤바뀌는 결과다. 범죄의 구성요건이나 증거가 아닌, 변호사와 판사의 상관관계에 의해 피고인의 유·무죄를 가리는 게 우리의 판사들이 하는 일이라는 걸 부정 할 수 없는 실태다.

전관만 만나면, 특별한 사정 변경이 없는데도 '정상참작'이라는 모호한 판사의 재량이 감형 이유의 전반을 지배하는 판결이라니, 전관 변호사들의 형사사건 승소율이 전체 변호사 평균보다 2배 가까이 높다니, 판사 선배에 대한 예우가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보다 우선한다면, 죄를 지은자가 재판 받기를 거부했을 때 무엇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무도(無道)한 법 집행자들을 대법원의 예규나 판사윤리강령도 멈춰서게 하지 못했다. 예규는 전관 변호사가 선임되면 그 변호사와 같이 근무했던 판사는 사건을 맡지 못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특정지역에서는 전관 변호사와 한솥밥 먹던 판사가 3건 중 2건 꼴로 사건을 맡았다. 이 경우 항소심 파기율도 평균치의 2배에 가까웠다.

우리사회의 법에는 성역이 있다. 권력의 심장부로 가는 법의 길이 놓여있지 않은 탓이다. 권력에 부여된 법 앞에 평등할 권리는, 법 앞에 평등할 의무가 배제된 무한의 권리다. 검찰이 스스로 권력의 시녀가 된 데 따른 폐단이다. 권력이 그때 그때 놓은 길 위에 법은 있었다. 검찰의 핵심부인 대검 중수부는 지탄을 피하지 못한다.

대통령의 인사권에 예속된 검찰총장의 직할부대로 지목되어 온 대검 중수부는, 권력형 비리와 사정기관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에서 독립적이지 못하고 권력의 입맛에 맞추는 행태로 존폐논란을 자초했다. 중수부를 폐지하고 판·검사 비리를 비롯한 권한남용, 직무유기를 수사하는 특별수사청을 설치키로 한 최근의 사법개혁안은 그런 배경에서 기인했다.

국회에서 여,야 합의를 이룬 사법개혁안은 또, 판·검사가 변호사로 개업할 경우 퇴직 전의 근무지에서 민·형사, 행정 등 모든 사건을 1년 동안 맡지 못하게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질적인 전관예우 병폐를 뿌리뽑겠다는 뜻들이 취합 된 결과다. 특히 이번 사법개혁안에서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20~30세 초반의 백면서생(白面書生)들을 배제하고, 법조 경력 10년 이상의 경력자만 법관에 임명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지향점들이 법의 길을 복구하자는 것인데, 국민의 신뢰를 담보 할 수 있을 것인가. 신설하는 특별수사청의 독립성을 보장한다고는 하지만 대검의 그늘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독립성이 유지될 수 있을까. 특별수사청은 국회가 의결한 사건과 판·검사의 비리나 범죄에 한해 수사를 한다는 게 골자다. 당초, 판·검사 뿐만아니라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의 비리와 부패를 수사할 수 있는 독립이 보장된 '공직비리수사처'를 설치해야 한다는 야당의 제시 안에 비하면 형편 없다.

전관예우의 악습은 법의 길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1년 뒤면 전관이 지닌 동력이 소실되는 것일까. 또 퇴임 후 1년 동안 음성적으로 작용하면서 사건을 매개로 거래 될 전관예우의 폐해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사법개혁안이다.

사법개혁이 정치적인 흥정의 산물이라는 인상, 진정성이 없는 전시성 결과물 도출로 불필요한 갈등만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 등이 뒤섞인 곳에서 신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외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기관을 신설하는 것, 고위공직자의 비리·부패 근절을 여전히 과제로 남기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법개혁안에 법원과 검찰이 크게 반발하고 있는 건 또 뭔가.

검찰은 정녕 중수부 폐지가 검찰의 손발을 자르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중수부가 폐지되면 권력형 비리나 기업의 비리 고위공직자 범죄 등 대형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검찰 스스로 입에 담을 일인가. 그런 것을 중수부가 아니면 수사 할 수 없다고 자인하는 꼴이 아닌가.

道理를 아는  판·검사들을 바란다

길은 스스로 찾는 것이다. 국회의 사법개혁안은 단지 입법부의 길을 찾아가는 것일 뿐이다. 검찰과 국회의 긴장관계, 국회의원들과 국민들간의 신뢰관계 등 역학이 고려된 미흡하나마 나름 절실한 몸짓이다. 법원이나 검찰은 당초에 길을 찾지 못할 장애를 가진 적이 없다. 견제와 통제 장치가 아니면 바르게 가지 못할 정도로 불안정한 조직도 아니다.

단독기관으로서의 검사와 독립적 판단권을 가진 판사가 외부의 간섭을 받아야 제 기능을 발휘 할 수 있다면, 우리는 헌법과 절차법 전반을 뜯어 고쳐야 하는 절체절명의 현실에 직면한 꼴이다. 검찰의 활동과 법원의 판단을 속박하는 장치들이 양산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사법부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국민에게 말해야 한다. 그 전에 존폐를 건 내부개혁을 보여야 한다.

국회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예비 판·검사들 가운데 정신적 결핍이 있거나 반사회적인 자를 골라내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사법연수원이 실무교육과 인성교육을 병행하도록 기능을 보강하고 연수기간을 늘려, 사람의 도리(道理)와 판·검사의 도리를 아는 자들이 배출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법개혁이 더이상 필요 없는 내일을 구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