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의존하는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진정한 관심이 있을까. 우리가 의존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실제로 쓸모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우리가 잘 모를 수 있다는 걸 걱정하고 있을까. 그런 우려는 쌍방간 단절감에서 비롯한다. 소통의 부재(不在) 탓이다. 그 원인을 서로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일상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쌍방이해는 드물다. 이해당사자간 분쟁에서 접점을 찾는다 하더라도 논리적이거나 물리적 힘겨루기의 결과물인 경우가 대종을 이룬다. 하물며 정부와 개인간 충돌이 있을 때, 중앙 또는 지방정부가 그 개인과 주변 상황를 고려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정부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규칙'일 뿐이다.

개인의 절박한 생존 문제는 당장 규칙에 맞아야만 시선을 끈다. 그 범주를 벗어났을 때 정부와 개인의 만남은 성립하지 않는다. 평소, 정부와 개인간 장벽이 높은 이유다. 관계의 이해가 축적 될 수 없는 구조다.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정부지만, 정작 정부는 규칙을 위해 존재하는 꼴이다.

그 단적인 예는 이 나라가 자동차 왕국이라는 점.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는 자동차가 좁은 국토에 넘쳐난다. 지방정부의 입장에서 거리로 몰려 나온 자동차들을 수용 할 공영 주차장을 확보하는 데에 한계를 절감할 수 밖에 없다. 이면도로가 주차장화 되는 것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단속도 이면도로의 주정차를 허용하는 추세다. 하지만 전주시의 경우는 이면도로에 주차된 자동차를 가차없이 단속한다. 이유는 명백하고 정당하다. 도로의 가장자리에 황색 실선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쌍방향 교통소통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지만, 불의의 단속을 당하고 항변하는 민원인은 담당 공무원 앞에서 교통법규도 모르는 무뢰한에 불과하다. 이면도로의 가장자리에 백색 실선을 그려 주정차난을 해소하는 방안을 제시해도, 담당 공무원은 그것을 자신이 전혀 알 바 아니라는 태도로 일관한다.  

규칙만을 고집하는 것은 다른 각도에서는 편의주의의 소산이고, 몰창의적인 행태다. 그 자리를 기계가 대신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가 의존하는 그들은 스스로에게 왜 그자리에 있는지를 물어보아야 할 당위다. 업무수행 면에서 꽉 막힌 규칙맨은 바른생활맨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도 아니다. 익산시의 경우를 보면 그런 공무원들이 최근 연이어 구속되고, 비리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자신의 존속에 필요한 규칙은 정작 지키지 않는 현장이다. 이런 모순은 가치의 전도를 낳는다.

우리는 공무원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부당'을 개선해야 할 상황에 봉착할 때 마다 더 많은 규칙 만들기를 검토한다. 그들이 본래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업무지침의 체계를 세우기 위해서다. 이런 대응책은 각 분야의 전문집단에 예외없이 적용된다.  

이렇게 규칙들은 무관심하고 무신경한 일련의 사회제도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우리들이 끊임없이 규칙을 만들어내는 동안 우리가 의존하는 그들은 우리가 원하는 표정을 짓고, 새로운 규칙의 뒤로 숨을 뿐이다. 한치의 양보 없는 결전의 의지들이 곳곳에 산재하게된다. 우리 사회 분노의 게이지는 갈수록 상승하고, 현실과 규칙의 괴리에 상처입은 결사체들이 속출하며, 충돌과 그에 따른 단장(斷腸)의 단절감이 음울한 냉소와 체념을 부른다. 혹 충돌이 계속 된다면 우리는 그 소모적인 곳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우리가 대면하는 현 정권의 행보에는 파괴는 있되 재건은 없다. 중도실용의 규칙이다. 우리의 건강보다 시장 개방이 우선하고, 무한경쟁의 이념이 언론을 통제하며, 기업이 노동자 위에 군림하는 규칙의 드라이브다. 특히 권력의 이기(利己)와 관련된, 환경파괴와 지역간 불균형 획책 등 국토의 농단은 국민을 경시하는 이 정부의 일방통행 규칙이다. 분쟁이 발생했을 때 규칙을 앞세우면 대화는 없다. 밀어붙이려고 할 때 대화는 장애물일 뿐이며, 또다른 걸림돌들을 양산하는 기제가 된다. 규칙은 힘든 길을 피해가는 지름길이다. 이 정권이 대화를 두려워하는 이유다.

그러나 정부에 부여된 무엇보다 우선하는 규칙은 국민을 '섬기는 것'이다. '섬김'은 이기를 버려야 가능하며,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정권 재창출의 실리보다는 정권 재창출의 명분을 중시하고, 그 명분을 쌓기 위해 설득하고 공감을 얻는데 심혈을 기울이며 시간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섬김'은 유연성을 요구한다. 규칙의 가치는 수용자의 바람과 합치되었을 때 생명력을 지닌다. 섬김의 미덕과 도덕적 기량이 진정한 정권의 힘이다.

그러나 이 정권은 '군림'으로 역주행 했다. 그것이 무엇을 잉태 했는지는, 최근 불거진 동남권 신공항 문제가 단적으로 명증한다. 정부는 정당한 경제성 검토를 거쳐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선언했지만, 그동안 이 정권의 규칙에 길들여져 온 영남 사람들이 이를 수용할 리 없다. 영남지역의 이기는 이 정권의 취약점들을 끊임없이 물어뜯으며 물고 늘어질 것이다. '공약 불이행 응징' 그 규칙의 칼을 갈 것이다. 불보듯 뻔하다. 이 정권이 자초한 일이다. 이런 유사한 일들은 다발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이 정권이 걸어 온 길을 되돌아 보면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우리 스스로 대화를 준비해야 할 때

잴 수 없는 것을 재는 규칙은 버려야 한다. 딱딱한 자로 기둥 둘레를 잴 수는 없다. 규칙이 왜 필요한 가를 염두에 두지 않는 규칙 준수는 무가치한 일이다. 기둥을 재는 줄자 처럼 규정은 합의와 최대공약수 안에서 구부러질 수도 있다. 규칙은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필요 할 때 유연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그것은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힘을 준다. 이는 상호작용에서 창의성을 촉발하고, 공존의 가치를 일깨운다.

맹자에 따르면, 자기가 자기를 나쁘다고 단념하는 사람과는 함께 말할 수가 없다. 자기가 자기를 쓸모없다고 버리는 사람과는 함께 일할 수가 없다. 하지만 맹자가 규정한 기피의 대상이 우리 자신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우리야말로 체념과 냉소를 버리고, 공복들이 규칙보다 주인을 섬기는 시스템 혁명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규칙들을 해체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그것을 위해 우리가 먼저 대화할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가 희망을 갖기,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