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란 덧 없는 것이다. 목숨이 잠시 주어질 뿐인 것 처럼 불변의 진리다. 이를 부정하고 불노불사의 꿈을 실현하려 했던 권력이 있기는 했다.

수 많은 전장에서 가장 높은 주검의 산을 쌓고, 그 위에 최초의 통일 제국을 세운 진(秦)의 시황제(始皇帝)가 그랬다.

그가 소년소녀 수백명을 삼신산(三神山)에 보내 불노초를 구해 오라 명한 기록은 정사로 전해진다.

그의 죽지 않을 수 있다는 착각은 아방궁을 짓고 만리장성을 축조하게 했으며, 통치사상에 반하는 모든 서적들을 불태우게 했다.

착각에서 깨어나 현실과 마주하게 되어서는 허황한 말을 퍼뜨린 무리를 색출하면서 애먼 유생들까지 수 백명을 생매장하는 광기를 보였다.

이렇듯 무자비한 철권을 휘두르며 천하를 군림하던 그 역시 스러져 먼지로 돌아갔다. 또한 대물림 된 그의 굴절 된 권력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태자 부소(扶蘇)는 한 낱 환관(내시)이었던 조고의 계략에 의해 주살되고, 2세 황제(皇帝)로 옹립 된 어린 호해(胡亥)는 환관 조고의 허수아비가 되었다.

이 둘 사이에서 유래한 고사 '지록위마'(指鹿爲馬)는 그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환관 조고는 진시황이 남긴 권력의 유산을 그대로 답습했다.

제국 통치의 뼈대를 세웠던 승상 이사(李斯)를 비롯한 구신(舊臣)들을 모조리 죽이고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그는 어느날, '말'을 황제 호혜에게 바치며 '사슴'이라고 칭했다.

그러자 호혜는 "승상은 농담도 잘 하시오. 사슴을 가지고 말이라고 하다니.. 어떻소? 그대들 눈에도 말로 보이오?"라며, 좌우의 신하들에게 동조를 구했다.

잠자코 있는 사람보다 '그렇다'고 긍정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고는 부정한 사람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죄를 씌워 죽여 버렸다. 그 후 궁중에는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지록위마'는 단순히 윗사람을 농락하여 마음대로 권세를 부리는 것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강압과 전횡으로 유지 되었던 권력은 숙주를 옮겨다니며 존재하는 바이러스와 같다는 사실을 명징한다.

통일 제국 진(秦)은 피로 세워졌고, 3대에 걸치는 권력의 숙주들은 자중지란(自中之亂)에 의한 30여년 짧은 도륙의 역사를 기록한 뒤 멸망했다. 

어떤 권력이든 시작 될 때는 두 자루의 칼 앞에 선다. '죽이는 칼'과 '살리는 칼' 중에서 어떤 것을 집어드느냐에 따라 그 향배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살리는 칼'은 집도에 적합한 양태를 띠지만, '죽이는 칼'은 양날이다. 잘못 쓰면 자신이 베인다. 베는 쾌감은 중독성이 강하다.

한 번 맛을 보면 자주 사용하게 되고 거기에 취해서 자제력을 잃으면 멈추지 못한다. 이는, 진(秦) 제국이 남긴 유산이다. 

'죽이는 칼'의 속성은 폭력이며, 의도가 있으면 그 밖의 모든 것에 대해 모르쇠가 된다. 조고의 '지록위마'는 권력을 유지하려는 의도였고, 척살당해야 할 자들이나 살아남을 자들의 의지는 처음부터 권력의 의중에 없었다.

그래서, 민선4기 익산시가 출범 직후 선정 된 입지에 소각장건설을 강행한다고 발표했을 때 섬뜩했다.

권력이 선택한 칼이 너무나 뚜렸했기 때문이다. 불과 한 달 남짓 전에 약속했던 전면 재검토는 시도조차 되지 않은 상태였다.

해법을 찾을 때까지 공청회 또는 토론회를 열고, 안 되면 주민투표에라도 붙여 해결하겠다던 철석같은 약속은 권력이 칼을 집어든 순간 일거에 소멸되었다.

폭력은 계속되고 있다. 쓰레기를 태워 죽음의 물질을 배출하면 안 된다는 여론에 모르쇠다. 그동안 압축.포장 야적해왔던 쓰레기 소각을 계속하고 있다. 

영세상인들을 살리려는 취지로 추진 된 전통시장 환경개선사업이 상인들에게 오히려 독이 된 것 역시 '죽이는 칼'의 소산물이다. 혹은 의도에 어긋나는 기존 상인들을 와해시키고, 혹은 새단장한 시설이 그나마 장사도 못하게 시장을 망쳐 놓았다.

익산시 공직사회는, 상층부 권력의 바이러스가 어느새 하부 숙주들로 전이되어 '죽이는 칼'을 든 권력이 확장되었는지,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하는 '지록위마'의 전성시대를 구가하는 것은 아닌지, 이제 권력의 칼이 자신을 베는 순간이 오는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