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벽두에는 한 해의 운세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다가올 불행을 미리 듣고 대처하려는 마음의 방어시스템이 그들을 작동시키는 터다.

또는 앞 길에 놓인 행복을 미리 들어서 그걸 희망찬 첫 발의 동력으로 삼고 싶어서 일 터다. 그들이 지난해 들었던 운세의 오차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울하고 불안한 오늘을 떨쳐버릴 덕담 한마디가 필요한 것이니, 들었을 뿐 확연하게 보이지 않더라도 그런 앞을 보고 싶은 갈증이 다가올 운세를 엿보도록 이끄는 것일 터다.

동양의 가장 대표적인 점서(占書)인 주역(周易)이,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천하의 질서를 담은 예지의 창(窓)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에게 절실한 수양서 또는 철학서로 읽혔던 까닭이다.

이런 맥락에서 주역의 일단을 살펴 올 한 해의 덕담으로 삼아 보는 것도 가치있는 일 인듯 하다.

주역은 누누이 현재의 처지에서 만족과 안일을 누리지 말라 한다. 다가올 변화에 대비하는 한편 그에 순응하여 따를 것을 강조한다.

하늘을 상징하는 건(乾)괘가 위에 있고 땅을 상징하는 곤(坤)괘가 아래에 있을 경우 누가 보아도 안정된 상태인 듯 하지만, 운세가 꽉 막힌 부괘(否卦)로 명명하는가 하면, 하늘과 땅이 뒤바뀐 상태를 태괘(泰卦)라 이름 붙이고 대지가 교류하는 편안한 상태로 보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주역은 사물의 극단이나 극도의 행위는 피할 것을 계시한다. 괘 가운데 최상위인 건괘(乾卦)는 하늘을 높이 나는 용을 품지만, 그런 용일지라도 지나치게 높이 날면 반드시 뉘우치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경고한다.

주역은 한사코 자신의 의욕이나 행동을 억제하는 겸손의 덕(德)이 인간 행위의 근본이 된다고 역설한다.

형세나 국면에 따르면서 자기가 직면한 일에 전념하고 힘을 다하여 부지런히 노력할 뿐, 겸허한 자세로 처세에 임하라는 교훈이다.

겸괘(謙卦)의 모든 판단이 길(吉)한 것은 그 본보기이다. 주역은 서로 다른 처지에 놓여있는 상태에서 상호 협조를 중시하고 있다.

음과 양이 서로 작용하는 속에 하나의 현상이 이루어질 수 있듯이, 지존의 자리에 있는 군주는 지위 없는 서민에게라도 협조를 해야 하며, 안과 밖이 서로 호응하고 처음과 끝이 서로 제휴된 속에서만 상호의 지위와 환경과 지니고 있는 그 덕을 발양할 수 있고 유지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역을 해설하고 부연한 공자(孔子)의 계사전(繫辭傳)은, 소인(小人)과 군자(君子)를 규명하고 그 필요한 바를 일깨운다. 소인(小人)은 자신이 어질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옳지 못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게 그 골자다.

조그마한 선행은 이익이 될 것이 없다고 하여 행하지 않고, 조그마한 악행은 손상될 것이 없다고 하여 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한 일이 쌓여서 징벌을 피할 수 없으며 죄가 커져서 풀어줄 수 없게 된다.

반면, 군자(君子)는 자기의 몸을 안전하게 한 뒤에 움직이고, 그 마음을 편하게 한 뒤에 말하고, 교제(交際)의 도리(道理)를 정한 뒤에 대상을 구한다.

몸이 위태로우면서 행동하면 사람들이 협력하지 않고, 마음이 두려우면서 말을 하면 사람들이 순응하지 않고, 사귀는 도리가 없으면서 대상을 구하면 백성은 참여하지 않는다. 참여할 사람이 없으면 해칠 사람이 생기게 된다. 

주역에는 또, 늘 준비하는 사람만이 자신을 보존할 수 있다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위태로울까" 항상 걱정하는 사람은 그 지위를 안전하게 하고, "망할까" 항상 걱정하는 사람은 그의 생존을 보존하며, "문란해지지나 않을까" 항상 걱정하는 사람은 질서를 세울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어 있다. 

불안한 오늘 떨쳐낼 운세는

주역의 정수는 서로 다른 사물들 간의 관계에 의한 변화와 결과다. 질서에 순응하고 절제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협력하여 공동체의 발전을 이루고, 한사코 공생을 위한 법도를 지키라 한다.  

주역은 결국 경험의 산물이며, 질량불변의 법칙의 발견이 아닌가 한다. 다만 순환이 있을 뿐, 물이 기화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인간사 역시 인과(因果)의 질서에서 이탈하지 못한다는 깨달음이 주역의 출발점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 변화가 각기 다를 뿐, 거기에는 반드시 추이(推移)가 있고, 그것은 예측 가능하다는 명증이 바로 주역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바라는 새해 벽두의 복(福)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았거나 몰랐거나 우리가 행한 배품과 나눔이 보은(報恩)이 되어 돌아 온 것이 바로 복일 터다. 

그렇다면, 우리는 올해 운세를 들으려고 애쓰기 보다는, 우리 자신이 지난 한 해 동안 실천한 덕행이 어떤 것들이었을까를 되돌아 보는 것이, 우리가 받을 복의 크기와 앞 일을 내다보는 실제적인 운세풀이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