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가 수상하다. 절망을 은유하는 장면들이 시시각각 겹치면서 희망을 볼 겨를을 주지 않고 있다. 출범 직후부터 미국산 쇠고기수입 저지 촛불정국에 몸살을 앓았던 10공화국이다.

검찰이 광우병을 보도했던 특정언론사 관계자들을 기소하는 와중에 국회는 언론법개정 파동으로 혼전을 치렀다.

'언론탄압용 악법 만들기'라는 국민들의 반발은 그런 오비이락(烏飛梨落)의 산물이었다. 돌이켜보면, 일극 중심의 정권이며 타의에 대한 부적응 공화국이다.

1천명에 가까운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을 형사입건하고, 박탈당한 권리를 외치던 용산철거민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355일 동안 영안실 냉동고에 있던 참사의 희생자들을 묻은 바로 그날(1월 11일),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됐다.

국가백년대계의 청사진을 지우고 경제도시 하나를 새로 설계한 결과물이다. 세종시는 국가균형발전 '교두보'에서 충청권의 공업단지로 전락했다.

고도비만에 걸린 수도권 경량화는 요원해졌다. 9부 2처 2청의 남하(南下)에 따른 중앙과 지역간 기회의 분점, 이를 통한 국가경쟁력 높이기라는 핵심가치는 폐기됐다.

행정부처 이전이 배제된 세종시는 당초 부여됐던, 기업도시 및 혁신도시와 맞물린 국가균형발전 핵심축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나아가 기업.혁신도시를 초토화시키고 각 지역의 신규 산업단지 조성정책을 거침없이 초토화시키는 괴물로 떠오를 전망이다. 세종시 안이 졸속으로 수정된 탓이다. 행정부처 이전은 안 된다는 중앙집권적 사고가 그 조바심의 진원이다.

허탈한 지역민심을 달래 줄 반대급부를 현실화 하기 위해 세종시 입주를 희망하는 주체에 전례없는 특혜 미끼를 던진 후폭풍이다.

대통령이 역사적 소명의식까지 불태우는 세종시 수정안이다. 따라서 정부는 그 어느때 보다도 강경하게 4대강을 밀어붙이듯 세종시를 관철시키려 들 것이 불보듯 확실하다.

성난 민심과 타의를 존중하지 않는 이 정권간의 충돌은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이 묻힌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의 뗏장도 마르지 않은 오늘, 또다시 아비규환이 예고되는 것이다.

저항도 진압도 결국 범죄가 되는 험로 끝에 국민과 정부가 맞섰다. 이렇듯 국론분열의 격랑에 휩싸여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4년 전 노무현 정부에서 확정된 세종시는 분권과 균형을 실현하는 민주주의의 결정판이었다. 힘이 집중된 수도권의 악력에 목을 짓눌려 사경을 해매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은 가치였다. 그 산통은 아직도 선연하다.

수 많은 목소리들을 숨죽여 경청했고, 단내 나는 입으로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래도 노무현과 민주진영의 목소리는 기득권의 온갖 굉음 속에서 들리는 듯 마는 듯 했다.

빛이 없는 광야를 주눅들지 않고 가로지를 수 있었던 의지의 원천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었다. 권력이 전횡을 휘두르면 쉽게 달성할 수 있었던 일을, 험난한 담론을 마다하지 않고 이해와 설득으로 이룬 민주주의의 성지(聖地)가 세종시다.

분권과 균형의 성지 유린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흡사 작전을 수행하듯 세종시를 둘러싼 이념을 유린했다. 수정의 필요성을 모호하게 흘려놓고 야권과 국민들의 동향을 살피더니, 혼란을 틈타 동조하는 여론을 끌어들여 세 불리기를 거듭하며 세종시 수정의 당위를 세웠다.

우선은 본래적 가치를 폄훼하고 왜곡하는 것으로 그 전단(戰端)을 구했다. 이후 세종시는 국가 대사(大事)가 아닌 한 낱 지역발전을 위한 새 도시 건설 부지로 전락했다.

종국에 세종시는 소외된 지역에 국가적 시혜를 베푸는 명분으로 변질됐다. 이제는 세종시 원안이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정치적 산물에 불과하다. 세종시 원안을 조속히 고치는 일은 대통령의 역사적 소명이 되었다.

쉬운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여야간 토론도 없고 국민 여론 수렴도 없다. 9공화국에서 피땀으로 일군 성지가 권력의 정치놀음에 희생되는 순간에 직면했다. 찬반으로 갈라진 국론이 서로 포격하며 포연속에서 길을 잃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무지막지한 화력은 민주 이념의 순교를 강요할 뿐이다. 그 피의 제단 위에 세워질 가치는 기득권의 이익에 불과할 따름이다.

10공화국은 많은 일을 해내더라도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는 국면이다. 참여정부가 5년여에 거친 국민적 합의로 확정한 사안을 두달여 만에 백지화 하는 것은 전횡이다. 상호존중이 없는 결과물은 사회적인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직전 정부에서 제정된 법을 시행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뜯어 고친다면 변경된 법 역시 지속가능성을 상실한다. 정통성의 부재 그것이 세종시를 수정하려는 MB정부의 한계다.                 

참으로 역사적인 소명에 의한 결단이라면, 3년 뒤 어떻게 평가되고 단죄 될지를 숙고해야 한다. 수와 힘으로 밀어붙인 결과물은 수와 힘에 의한 부메랑을 부르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