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세상속의 우리들 대다수는 대중(大衆)에 머문다. '대중'이란, 부처의 법회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을 총징하는 태생적 의미를 지닌다. 대중이 한사코 현자(賢者)가 가르키는 곳을 놓치지 않고 집중하는 이유다. 리더십이 대중과 사회에 미치는 치명적인 파동을 우리는 이미 짧은 현대사에서 집중적으로 겪었다. 하지만 우리는 리더십의 선악(善惡)을 구별하려는 태도부터 허영이 되는 지점에 떨어져있다. 사실 우리 사회의 리더십은 작동 조차 되지 않고 있는 탓이다.

우리는 지금, 리더십이 아니라 리더 자체가 없는 무정부 상태의 암흑 속에서 불안한 미래를 더듬고 있다. 내부 문제에 앞서 대북정책의 역행이 안겨주는 북에 대한 괴리감은 그 걱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혈육이 갈려 국토를 분점하게 된 이후 61번째 맞는 그날을 닷새 앞 둔 오늘은 더욱 그렇다. 최근 김정일은 거듭되는 방중(訪中)으로, 그동안 유지해 왔던 '미국의 보호'와 '남측의 지원'이라는 전략 기조를 완전히 버리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제, 냉전적 회귀는 가속화 될 것이다. 한반도는 동북아 남북 동맹국간 각축의 최전선으로 떨어질 것이다. 우리 대북강경책은 결코 한반도 대중에 대한 리더십의 발현이 아니다. 남북(동포)관계를 망실하고 천안함 폭침사건에 대한 외교력 부재를 희석시키려는, 혹은 보수의 존재감을 극대화하려는 꼼수로만 보일 뿐이다. 그 덕에 남북(동포)관계마저 망실했다. 이렇게 대결에 집중하는 과열된 태도는 중국의 서늘하고 유연한 리더십에 상반된다.

중국의 외교와 내치(內治)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없는 무위(無爲)의 통치를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리더는 대북관계는 물론 내치에서도 요란하기만 할 뿐 정작 갈등과 반목만 부추기는, 무엇인가를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인위(人爲)의 족적을 무수히 남기고 있다.

정세불안으로 긴장이 고조되는 우리 내부에서 눈을 돌려 중국을 볼 수밖에 없게 하는 오늘이다. 그리고 중국과 우리의 현대사가 줄곧 유사했다는 점에서 안도하지만, 리더십의 유무에 따른 결과는 판이하다는 점에서 통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중국의 현대사는 모택동에서 시작된다. 그가 몰아세운 10년간의 극좌적 이념투쟁은 중국이 30년 이상을 역주행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그런 시련은 오히려 새로운 리더를 배양한 토양이 되었다. 하지만 한반도와 같은 리더십 부재의 사회에서는 타도할 대상이 모호하다. 이런 사회는 아무런 자각증세 조차 없이 급속히 퇴행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중에게, 학교를 빼앗고 모든 전통적인 가치를 공격했으며 정적과 지식인을 숙청하는 등 20세기의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자행한 모택동이 있었다면, 이를 전면적으로 일거에 역전시킨 등소평이 있었다. 등소평은 모택동의 문화혁명이 주도한 이데올로기, 정치동원, 계급투쟁, 반(反)지성주의, 평등주의, 배외주의의 물결을 경제성장과 교육개혁, 실용주의적 외교정책으로 돌려놓았다.

성숙한 대중은 사회의 긴장감이 점증할 때 본능적으로 올바른 지도자를 포착해내고 그를 따라나선다. 대약진과 문화혁명 시기의 브레이크 없는 당시 중국 권력의 광기가 중일전쟁 때 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냈지만 그것이 대물림되지 않은 이유다. 지금의 중국은 매년 10%씩 30년 이상을 지속적으로 성장해 온 나라다. 골드만삭스는 오는 2025년 중국경제가 미국의 경제규모와 동일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고, 향후 상상을 불허하는 성장을 예측했다.

실로 기적이다. 중국은 무엇보다 공산주의 국가의 완전히 새로운 전형이 되었다. 등소평 이후의 리더십이 13억 인구의 다양성과 다원성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고, 통일성으로 힘을 집중한 결과다. 중국에는 한 문명 아래 여러체제가 공존한다. 다양한 민족들이 단일 국가를 이루며, 그런 문화적 정체성이 적정한 분권으로 유지되고 있다. 균형을 갖춘 리더십만이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구조다.

중국에는 문화혁명의 극좌적 오류를 시행착오로 삼아 개방과 개혁을 이끈 리더십이 있었다. 내부에서 분출하는 차이의 문제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모든 면에서 편협하지 않은 리더십이었다. 중국의 대중은 시장(市場)과 국가를 가족처럼 신뢰한다. 그 결과 중국은 서양보다 많은 면에서 범세계적인 면모를 갖췄으며, 세계 그 어느나라보다 큰 네트워크를 갖게 되었다.

무위의 중국과 인위의 한국

우리 현대사의 초입에는 이승만이 있었고 그는 남쪽 극우파의 우두머리였다. 일제강점기의 잃어버린 36년은 해방 이후의 대중을 극도로 약화시켰고, 향후 나라 안팎에 닥쳐 올 숱한 난제와 시련을 슬기롭게 극복 할 리더십이 절실했다. 하지만 좌파 우파로 갈린 우리 리더들은 독립정부와 신탁통치 논쟁으로 충돌하다가 동족상잔의 전쟁 배후에 섰다. 이승만은 그 시류를 타고 등장했다.

이 철저한 친미 반공주의자 덕분에 우리는 빠르게 서양문명과 민주주의를 조우했지만, 그는 자신의 실패를 복원 할 자질을 갖춘 리더들을 제거하는데 힘을 쏟아 부었다. 여기에 법령 개정과 테러를 동원했다. 테러하는 배후였다. 임기 중 정치파동이 그치지 않았다. 그의 정치사는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발췌개헌과 사사오입 같은 선거부정으로 얼룩졌다.

중국과 한국의 현대사는 서로 닮은 꼴이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 12년에는 모택동에게 있었던 사상무장과 체제확립, 혹은 성숙한 대중이 없었다. 그는 독재와 탄압을 수단으로 삼는 철권통치를 대물림했을 뿐이다. 한 세대 안에서 명멸한 새로운 지도자들은 그의 통치방식을 복제한 듯 했다. 그 결과 불균형과 부조화, 부문간 격차는 날이 갈수록 심화되었고, 대중들의 가슴에 싹텃던 민주주의는 거의 자라지 못했다. 리더를 선택하는 역량이 부족한 이유다. 우리의 대중이 시장과 국가를 믿지 못하는 근원이다.

지금 우리의 지도자는 타워크레인 꼭대기에서 목놓아 부르짖는 '정리해고 철회'를 듣지 않는다. 생명을 재물삼고 국고를 헐어 강물에 털어넣는 지도자다. 나아가 입법권을 유린하며 스스로 권력분립의 원칙을 훼손하는 일을 망설이지 않는다. 대중의 입을 원천봉쇄하고, 정권연장이 지상목표이며, 모든 현안에 단기적 처방이 난무한다. 우리가 리더를 뽑긴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