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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호 도시의 낙타

편집국장 공인배

최근 텔레비젼 여러 채널의 다큐프로그램에 몽골 사막으로 달려간 카메라들이 자주 등장한다. 카메라 앵글은 대개 풀을 찾아 쉼 없이 이동해야 하는 유목민들의 긴 여정과 애환,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담고 있다. 삭막한 초원과 불모의 사막에서 몽골인들이 살아남는 법은 극명하게 우리의 현실을 대체하며, '삶이란 인고의 세월을 지나는 것' 혹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불만족을 지우고 함께 나누는 여유를 웅변한다.

브라운관 너머를 굳이 보려하지 않아도, 몽골에 간 카메라들이 우리의 각박한 현실을 우회적으로 애둘러 보여주려 했다면 아주 효과적인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저곳에서는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구나" 그런 생각은, 광풍에 들끓는 모래 언덕에서 모래가 버적거리는 입으로 되새김질 하는 낙타를 마주하며 더 붉어진다. 어느 순간 오아시스가 가까워지고 물냄새라도 나면 현기증이 날 것 같은 갈증에 몸을 떨게 된다.

그러나 저 불모의 사막을 정면으로 맞서거나 이웃하는 사람과 낙타는 그 불편한 공간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다. 아니,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보인다. 그들 골수에 새겨진 체념과 긍정의 힘이 극단적으로 열악한 환경 안에서 영속(永續)의 희망을 발견하고 안주한다. 타들어가는 생명의 갈증을 최소한만 풀도록 허용하는 초원 위에서 그들의 생활은 차라리 아름답고 행복해 보인다. 낙타는 생존을 위해 이곳에 왔다. 최형선의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에서 4,500만년 전 지구에 살기 시작한 낙타는 수천만년 동안 북아메리카 사바나 대륙의 짓푸른 초원에서만 번성했었다. 하지만 180만년 전 지각변동으로 알래스카와 시베리아 사이의 베링해협이 육로로 연결되자 낙타는 이주할 수 밖에 없었다. 아메리카 들소와 마스토돈 같은 크고 힘센 동물들과 맹수들에게 밀린 탓이다. 낙타가 초원을 떠나 사막으로 간 것은 먹고 먹히는 무한경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대신 낙타는 자신의 몸을 가혹한 환경에 적응시켰다. 무더위와 강추위가 반복되고 먹힐 염려도 없지만 먹을 것도 극미한 죽음의 땅에서 가시덤불과 씨앗, 동물의 뼈 같은 것들을 먹었다. 체온이 41도가 넘어야 땀을 흘린다. 눈물은 코와 연결된 관을 통해 몸으로 다시 들어가 수분 낭비를 줄인다. 오줌도 농축해서 누고 열 손실을 막기 위해 여분의 지방을 혹에 몰아넣는다. 무엇보다 낙타는 달릴 줄 알지만 달리지 않는다. 종종걸음도 치지 않는다.

난산한 어미 낙타가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다다른 것을 감지하면 자신이 낳은 새끼에게 젖을 물리지 않는 것, 젖을 먹으려 하는 새끼를 밀쳐내는 것은 그런 생존 본능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몽골사람들은 그렇게 극한의 상황에 놓인 낙타의 모성애를 깨울 줄 안다. 낙타를 마을 한 가운데 두고 마두금(馬頭琴)을 연주하며 아이를 많이 낳은 여인이 노래를 부른다. 악기의 선율과 인간의 다정다감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구슬픈 노래가락에 낙타는 모성애를 되찾고 눈물을 흘리며 새끼를 품어 젖을 먹이는 것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낙타는 사람을 배신하는 짐승으로 묘사된다. 사람과 함께 사막을 횡단하는 낙타는 수천 리를 걷고도 지친 내색을 하지 않다가 어느 순간 무릎을 꺾고 숨을 놓아버린다. 동행하던 사람은 아무런 준비 없이 길도 이정표도 보이지않는 곳에 덩그러니 남게 되는 것, 그 때 엄습하는 공포감에 비례하는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것을 말한 것으로 읽힌다.

함께 하면서 홀로인 것, 그 자체가 배신 일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낙타는 타자에 대해 아예 관심이 없는 이기주의 덩어리다. 하지만 낙타가 생존을 위해 사막에 왔다는 것을, 경쟁에서 비켜서기 위해 혹독한 환경을 선택했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낙타의 배려를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낙타는 출발해서 버틸 수 있는 한 버티며 성실하게 걷다가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낙타의 적응은 긍정의 힘에서 비롯한 것인 까닭에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부정적인 생각은 애초에 생겨날 여지가 없었지 않을까. 낙타의 생존신화는 그 스스로 극한의 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진화 과정을 기록해 왔다. 낙타는 마지막 순간까지 수분을 아끼고 호흡을 고르며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긍정의 거품에 스러지고

낙타는 쓰러지는 그 순간에도 생존에 집중하며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의지와는 무관하게 한 톨의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를 만난 것이 낙타의 죽음일 것이다. 긍정은 그렇게 진화의 본질이면서 무모하다. 홀로 남는 사람이 그런 낙타의 언어를 읽지 못했을 만큼, 낙타의 생존에 대한 긍정은 치명적이다. 처음부터 낙타의 배신은 없었다. 그것은 또 이기주의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다만, 남과 경쟁하지 못하는 약자로서 낙타의 '긍정'이 문제였다. 약자는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희망에 매달리고 행복을 얻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런 약자의 긍정은, 불편한 현실에 대한 책임을 약자에게 뒤집어 씌우도록 허용하는 결과를 낳는다. 나아가 개인의 긍정성 부족을 탓하고 동기유발에 더욱 매진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구실이 된다.

약자가 살아남기 위해 열중하며 제도의 불합리성과 사회 문제를 외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신자유주의가 원하는 최적의 환경이다. 요즘 생존환경이 열악하고 미개한 지역으로 카메라들이 자주 들어가는 것은, 그 보다 진보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약자들에게 보다 강력한 긍정적 사고훈련을 원하는 시장주의에 부응한다.

경쟁으로 피로에 찌든 약자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오감을 막고, 메스컴은 그런 은근과 끈기, 침묵을 조장하는 시장 이데올로기의 메신저를 자처하는 도시에 낙타 행렬이 이어진다. 마두금과 노래가락도 없는 황막한 도시를 낙타가 걸어간다.

사막을 횡단하던 낙타가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별안간 쓰러졌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불균등의 문제가 있다. 낙타의 등에 과도한 짐이 올려져 있고 동행은 빈몸이 아니었는지 살펴보라. 낙타는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니, 자신의 한계를 낙타가 말하기 전에 동행이 먼저 알아차려야 한다. 그런 주의는 동행인 자신이 살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