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여름방학이다. 불볕더위 속의 젊은 세태는 둘로 나뉜다. 대학등록금 때문에 거리로 나와 구슬땀을 쏟는 축과 방안에 앉아 더위를 느끼지 못한 채 넘어가는 축이다. 한 젊은이는 선택한 노동의 고통은 극복해야 한다는 걸 안다. 또 다른 젊은이는 자신은 선택할 필요가 없으며 주어진 시간을 그저 누리면 되는 것으로 안다.   

같은 처지인데 한 축은 절박한 반면, 다른 축은 터무니없게 느긋하다. 전자에게는 오늘의 연장선상에 미래가 있지만 후자에게는 오늘과 미래는 별개인 듯 하다. 전혀 다른 그림인데, 두 개의 축은 우리 안에 실존한다. 그러나 이런 모순을 혐오하는 사회분위기는 희박하다.

잘 드러나지 않는 개별적 문제인 탓이다. 함께 나누지만 고통을 분담하는 가정환경에서 자란 축과, 부모는 배고픔을 잊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지만 자식에게만은 고생의 냄새도 못맡게 한 환경에서 자란 축의 차이 일 수 있다. 그런 부모의 '방치'는 당장은 사회문제가 아닌데다 신념의 문제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전자가 성공가능성이 높고 후자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류의 확률 논쟁은 그다지 유의미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후자의 태도가 현실속에서 무개념적이고 연계성을 상실한 사고에서 기인한다는 점은 사회병리의 근원적인 문제다. 무엇보다 그들의 의존성향과 쉬운 방법에 길들여진 삶에 대한 자세는 지극히 위험하다.

우리는 청춘들의 막가는 범죄와 죄의식 없는 표정들을 무수히 대면해 왔다. 단순히 유흥비를 마련하려다 더이상은 주지 못하는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아들의 표정이 너무 익숙해진 오늘이다. 그들에게서는 공통적으로 조급성과 폐쇄성, 불성실성, 비현실성이 발견된다. 밖으로 나가지 않은 그들이 방 안에서 미디어와 인터넷에 지나치게 노출된 탓이다. 그 빛들에 조사(照射)된 그들은 정수(精髓)가 고갈되어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텔레비전은 거의 모든 공공담론을 쇼비지니스화하고 인터넷은 온갖 영상물로 그들의 인식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단순화되고 주체성을 상실하며 소통의 빈곤에 사로잡히는 이유다. 그들은 보는 것과 듣는 것에 익숙하며 자극적인 것에 중독되어 있다. 인간의 사고와 가장 관련이 깊은 읽기를 거부하며, 읽을 틈도 갖지 못한다.

고3 학생들을 보더라도 한 축은 경쟁이 불가피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도태되지 않기위해 진력하지만, 한 축은 컴퓨터 앞에서 밤을 새며 다음날 학교에도 가지 않는, 낮과 밤이 바뀐 생활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림에 익숙한 그들은 책을 펼치고 읽으려해도 해독되지 않는 활자들의 반란에 눈이 시려 고개를 돌리고 만다. 그들은 특히, 자신의 생활패턴이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믿는다. 늘 접하는 환경에는 그들과 같은 부류가 몰려있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 이론 중 하나로 '탄환이론'이 있다. 매스미디어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목표물을 정확하게 맞추는 '탄환' 처럼 수용자 대중에게 직접적이고 즉각적이며 강력한 효과를 갖는다는 게 이 이론의 요지다. 하지만 80~90년 전에 대세였던 탄환이론은, 수용자들이 소외되고 이성적인 판단능력을 갖추지 못해 쉽게 설득당하고 조작당하는 수동적 존재로 여기는데 대해 비판을 받았고, 등장 이래 20년이 지나면서부터는 퇴조를 거듭했다.

수용자 대중 각각은 상이한 심리적 기질, 다른 사회화, 생활환경, 미디어 이용방식을 가진 하나의 개체이고, 특정한 매체물에 대해 해석하고 영향을 받는 지점이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한편의 폭력영화가 그것을 시청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효과를 갖지 못하는 것 처럼.

그러나 유사한 폭력영상물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거나 지속적으로 빠져있을 경우 폭력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변별력을 갖춰야 할 시기에 영상미디어와 인터넷의 바다를 유영하다 그럴 기회를 놓쳐버린 수용자에게 '탄환이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수용자들은 탄환이론이 등장하기 전 미디어에 무지한 대중의 상태에 머문다. 당시 지배세력이 동원한 미디어 선전은 미국과 스페인간의 전쟁을 일으켰고, 1.2차세계대전과 나치 독일, 볼셰비키 혁명의 무기로 이용됐다. 미디어가 막강한 힘을 행사하며 대중들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었던 배경은 결국 허술한 대중사회였다. 미디어는 무력하고 피동적이며 원자화된 수용자 대중들에게 일방적으로 막강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가능성 과도한 포장, 미래는 없다

이미 수차례 실증되었듯이 미디어의 심리적 영향은 변별력 없는 수용자의 행동까지 유발한다. 이 경우 그 효과는 개인들의 사회적 심리적 속성의 차이와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개인의 마음속에 '주입'된 메세지는 바로 그들의 감정과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가 더 주의깊게 보아야 할 것은 영국과 미국 등 동맹국들에게 독일에 대한 적대감을 유발해 1차세계대전을 발발케한 언론의 보도들 거의가 거짓이었다는 점이다. 또 1938년 10월 30일 6백만명의 미국 시민들이 화성인들이 침공한 것으로 오인하고 공황상태에 빠지게 했던 라디오 방송은 공상과학소설을 각색한 드라마였다. 

폭탄테러와 총기난사로 무고한 노르웨이 국민 76명의 목숨을 앗아간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은 가공의 지형에 '방치'된 수용자였다. 특히, 그는 인터넷 전쟁게임 마니아였다. 그가 이슬람에 대한 분노와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를 담은 1,500쪽의 테러 예고문을 트위터에 남기며 극우적 신념범임을 자처하고 있으나, 한 낱 변별력 없는 수용자이며 그를 겨냥한 커뮤니케이터에 의해 창조된 희대의 괴물일 뿐이다.     

그런 극우 이념과 사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을 비판 없이 유도하는 배후는 우리 안에도 엄존한다. 직접 체험하며 몸소 느끼지 않는 이상 우리가 받아들이는 진실은 미디어 테스크를 통해 편집된 가공된 현실을 변별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온갖 미디어들이 가능성을 과도하게 포장하고, "공부가 전부는 아니다"는 메세지를 한 목소리로 송출하는 한 우리에게 온전한 미래란 없다.

우리는 정보의 진위를 파악 할 수 없는 무저항적 수용자가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