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우리에게는 서로 다른 '만세'가 같은 의미로 존재한다. 92년 전 자주독립을 향한 열망으로 떨쳐일어났던 혼과, 66년 전 일제의 폭압에서 해방되자 격정에 휩싸여 거리로 뛰쳐나온 몸의 외침들이 그것이다.

오늘 맞이한 광복절의 토양은, 총칼에 뚫리고 잘려 피를 흩뿌리면서도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무심한 하늘을 흔들어 깨우던 3.1독립만세운동이었다. 상해 임시정부 수립의 토대였고, 독립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게 한 방향타였다. 그것은 무엇보다 세계 만방의 시선을, 도탄에 빠진 한반도와 한민족의 관점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우리가 가진 기록을 보니, 생물학적, 사회적, 종교적 다름은 한낱 어린아이도 건너 뛸 수 있는 물웅덩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들은 기미년 만세의 물길에 온전히 하나가 되었다. 모든 다툼과 차별을 단숨에 뛰어넘어 불변의 가치를 향해 일제히 전력질주 하던 결사의 몸짓들이 스냅사진 안에서 당장 뛰어나올 듯 생생하다.

오늘 빛을 되찾은 우리의 기쁨을 기리되 그 탄력이 3.1운동의 역사적 무게를 들어 올려야 하는 이유다. 92년 전 이날 촉발된 독립만세운동은 60일 동안 1,542회 2백여만여명의 봉기로 이어졌고, 일본군의 무차별 총격에 2만4천여명이 죽거나 다쳤으며, 5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투옥됐다.

그러나 이 운동은 27년이 지나서야 결실을 맺었다. 그 세월이 지나는 동안 일본의 압제는 더욱 지능화됐고, 우리는 그 이간 책동에 분열이 만연한 가운데 더 지독한 고초를 겪어야 했다. 특히, 한 세대를 거쳐 길러진 친일세력들은 동족의 목을 물고 늘어지는 흡혈귀들이 됐다. 그 등살에 수많은 지사와 그 가족, 주변인들이 산화했다.

1945년 이 땅에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봄이 왔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동족끼리 피흘리고 싸우는 처참한 비극을 겪었다. 나라는 두동강 났고 아직도 서로 대결하고 있다. 우리 내부에서는 좌우의 대립으로 불신과 갈등이 양산됐다. 이는 일본의 물리적 힘은 물러갔으나, 그 지배이념과 통치 방식이 엄존하는 증거다.

우리는 1910년 한일병합조약 이래 그 시발점인 을사늑약을 55년만에 무효화했으나, 한 세기가 지나는 동안 여전히 일제 강점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내부에 대물림 된 친일근성들이 착취와 억압의 중심에 있는 탓이다. 그들의 눈에는 모든 핍박받는 사람들과 저항하는 사람들이 '좌익'으로 비친다. 그들에게 좌익이란, 소요를 일으켜 혼란을 야기하는 사회악이며, 자신들 지배구조의 근간을 뒤흔드는 반드시 근절해야 할 적이다.

그들이 스스로 '우익'을 자처하는 한 그들과 다른 것은 공존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것이 일본의 정신이다. 굴복하거나 합류하여 그들의 앞잡이가 되거나, 그들이 추구하는 공공의 안녕은, '모름지기 지배 아래 있는 자는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세상의 이상향은, '그들의 억압과 수탈을 피지배자는 당연하게 인식하는 이데올로기 지배체제'다.

반동분자 색출과 낙인, 배척은 일본이 이 땅을 강점한 이래 100년을 지나는 동안 변하지 않는 지배방식이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서는 소통을 기대할 수 없다. 어떤 절규가 그들의 귀에 들리겠는가.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222일째 35m 고공크레인에서 농성중이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되돌아오는 이유다. 한진중공업 사태를 "사기업의 정리해고" 운운하며 자유시장주의의 안전밸트를 매고 버티는 정부와 여당이다. 짐짓 안타까워하는 그들의 표정은 어떤 생각에서 기인하는지, 오로지 지배체제의 붕괴를 우려하는 발로가 아닌지, 이제 많은 국민들이 그것을 궁금해한다.

오늘날 대기업들의 성장배경은 무엇이었나. 무한경쟁을 통한 적자생존이었을까? 스스로 우익의 정체성을 지닌 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투입해 전폭적으로 육성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우익의 중심에 안착한 대기업들이 지배세력이 되었다. 도산 직전의 한진중공업을 공적자금을 투입해 회생시킨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노동자들을 무더기로 잘라내고 사주와 지배주주들을 보호하는 것 말고 다른 목적이 있었던가.

돌이켜 보면 그들 자칭 우익은 역사에 무임승차했다. 독립만세운동이 지축을 흔들 때 어두운 방구석에서 숨을 죽이거나, 일본의 등뒤에 숨어 폭도들을 진압하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었다. 나중에는 점령군들 보다 더 날뛰며 그들만의 사회안녕을 위협한 이들의 색출에 혈안이 되었던 사람들이었다.          

지배논리 청산, 분배정의 세워야

오늘 66년째를 맞는 광복 기념일에 세계 12번째를 자랑하는 경제력은 그들만이 사는 저 높은 성의 표식일 뿐이다. 자본주의는 국가간 장벽을 무너뜨리고 거스를 수 없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이뤘지만, 그 시스템인 우리의 민주주의가 백년 전으로 역주행하는 원인이다.

오늘 8.15기념일은 민족과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본원적인 생존의 문제를 마주한다. 일제 강점 상태의 흑백논리와 그것을 주도하는 세력의 지배논리가 청산되지 않는 한 새로운 역사의 대의를 세울 수 없다. 국가공동체의 축적은 적정한 분배 없이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며, 그 동력은 선순환되지 못한 채 누수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의 경쟁력이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우리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스스로의 독립을 지킬 힘이 없다. 의식이 일제 강점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혹자는 이 기꺼운 날에 다함께 용서하고 화해하자 격양되지만, 그것은 구조적 난관을 외면한 소치다. 범야권 인사들이 김진숙과 뜻을 같이하며 34일째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단식투쟁'을 하고 있지만, 한진의 총수나 정부와 여당은 거들떠 보지도않고 있다.
우익이 스스로 하류(下流)에 내려오지 않는 한 '진보'의 생존문제를 공감할 수 없다. 항일을 했거나 친일을 했거나 어쩔 수 없어 입을 다물었거나 그런 행위가 아닌, 생존권을 유린하는 탐욕과 평등주의를 짓누르고 군림하려는 의식의 잔재가 청산돼야 한다. 광복을 이룬 기미년 3.1일의 그날로 모두가 되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야 분배의 정의를 이룰 수 있고,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정비 할 수 있다.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고, 모두가 존중하고 가꾸어갈 원칙과 대의명분을 뚜렷하게 세울 수 있다. 좌우동서갈등에서 벗어나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