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노동자들의 여름 휴가철이 지났다. 그러나 귀가한 뒤 휴가의 무엇이 나를 이롭게 했나에 방점을 찍기는 어렵다. 오히려 근육통이나 수면장애 같은 여러 후유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랬으니 이렇다 할 마음의 휴식을 취했는지도 모호하다. 한적한 바닷가나 아무리 깊은 산속에 숨어들어도 그곳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대부분 그렇다. '공연히 집을 나서서 생고생을 자초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냥 정신 없이 놀았으니 됐다'고 자위 하지만 충전 보다는 방전을 더 체감한다. 휴식은 자유시간을 많이 할애했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새삼 짓눌린다. 더구나 우리의 형편으로 볼 때 휴가철에 휴식에 대한 바른 태도를 갖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상을 벗어났다는 것, 하고 싶었던 걸 한다는 것, 자신에게 맞는 걸 선택했다는 것, 수 많은 기회들을 데리고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들 틈에서 비켜섰다는 것, 그걸 위해 다른 것은 다 포기할 수 있었던 것, 고생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 그런 당위를 아무리 되뇌어도 찰라의 해방감에 그친 무거운 몸이다. 일정 기간 동안은 빠른 시간을 따라잡는 데 딱딱한 몸에서 눈물 같은 땀을 비오듯 쏟아야 할 것이다. 불안감이 엄습한다.     

게다가 휴가는 일상에서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상태를 발견하게 해준다. 과로였다. 살아남기 위해 곤두선 신경과 거기에 집중된 힘 말고는 바닥이었다. 다른 것들의 개입을 감당하기 어려운 탈진상태는 견고한 방어본능을 작동시키고 있었다. 바르며 살갑고 달작지근한 것에는 교감하되, 껄끄러운 것에는 토악질 하듯이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렇게 까지 소통불능 상태였던가.   

만성피로증후군이, 일상에서는 만날 수 없는 넉넉한 시간 속에서도 온전하게 자신을 열지 못하는 장애였다. 스트레스의 노폐물이 가득 쌓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더 많은 자극을 원하고 더 많은 쾌락을 추구하면서 찌꺼기를 양산한 결과였다. 해야 할 일들로 번잡한 우리는 그대로 휴가지에 있었다. 휴식이 선순환되지 못하는 근원적 문제다.

우리는 조급하다. 움직일 수 있는 한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야 한다. 불안한 미래를 피하는 방법이다.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스스로를 밀어붙인다. 우리는 휴식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몰랐었던 게 아니라 일상의 짐을 내려놓지 못했다. 휴가를 떠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판에서 "한국인들은 휴가를 두려워한다"고 썼다. 자기충전을 위해 휴가를 가느니 차라리 보너스나 칭찬을 듣는편을 택한다고 했다. '한국은 산업국가 중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길고 자살률도 가장 높은 나라인데, 연평균 휴가기간은 11일에 불과하며 그나마 대부분 단기로 나눠서 사용한다'고 소개했다.

FT는 또, 우리 노동자들이 장시간 업무에 기진맥진하면서도 이처럼 열심히 일하는 문화를 자랑스러워 하지만 이는 노동효율과는 동떨어진 일이다고 지적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연간 근로시간은 2,256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1위다. 네덜란드(1,389시간)나 독일(1,430시간)의 두 배에 가깝다. 하지만 1인당 노동생산성은 독일의 절반에 불과하고 네덜란드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한국전문가 마이클 브린은 FT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인들이 장기휴가를 꺼리는 이유로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정리해고가 난무하는 노동시장유연화에 대한 공포를 꼽았다. 2주 동안 자리를 비웠을 때 동료가 자신이 없이도 업무가 잘 굴러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자신이 대체 가능한 존재라는 점을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FT는 또다른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지금은 창조성과 혁신, 새로운 기술이 더욱 중요한 시대이며, 여가시간을 잘 소비하는 것이 곧 생산성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조명하면서, 한국에서 노동시간과 생산성을 동일하게 여기는 사고방식은 여전히 60~70년대 산업화 때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변해야 한다'는 노동문화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프랑시스 뽕쥬가 '달팽이의 생태'에서 말 한 것 처럼, 도대체 자기의 껍질 속에서 일단 몸을 빼낸 후에 움직이지 않는 달팽이를 우리는 생각할 수 없다. 휴식을 취하려 하자마자 그는 자기의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휴가를 떠나기 위해서는 먼저 일상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쉬지 않고 계속 가동된 몸은 반드시 문제를 일으킨다. 자신이 쌓아 온 모든 것이 일순간에 무너진다. 거스를 수 없는 진리다. 틈만 나면 쉬겠다고 결심하고 여유가 생기지 않더라도 반드시 쉬어야 한다. 망중한(忙中閑)을 체질화 해야 한다. 쉰다는 건 비우는 것이다.

휴식, 오직 마음이 내키는 대로

북송(北宋) 때의 사마광(司馬光)은 독락원기(獨樂園記)에서 휴식을 '홀로 즐기는 경지'라고 명명했다. 오직 마음이 내키는 대로 움직여 찾아간 곳이다. 때가 되면 밝은 달이 떠오르고, 어디선지 맑은 바람도 불어온다. 거닐어도 잡는 이 없고, 멈추라고 만류하는 이도 없다. 내 몸의 모든 것이 다 나의 소유요 또 뜻대로 해도 거리낄 것이 없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자유롭다.

휴식은 '일 이외에 무언가를 해야 하는 시간'이 아닌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라고 말한 과학저널리스트 슈나벨도 그와 궤를 같이한다. 그는 저서 '행복 중심 휴식'에서 행복한 삶을 위해 진정 추구해야할 것들을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을 때 제대로 된 휴식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우리 몸에 있는 부신(副腎)은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에너지를 만들지만,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장애를 일으켜 회복작용이 잘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러면 일상이 귀찮게 느껴지며 의욕도 창의적인 사고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지쳐있는 세포들을 재생시키려면 이완이 필요하다. 이것은 노동생산성과 직결된 문제다.

우리는 한가하게 어슬렁거릴 시간이 없이 바쁘게 일을 해야 생존한다는 그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사가 함께 공유해야 할 가치다. 필요한 만큼의 휴식이 일상에서 확보될 때, 로뎅이 말한 것 처럼 '일하는 것, 그것이 바로 휴식'이 되는 역설과 마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