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익산은 도심을 가로지르는 물이 없다. 하지만 여름이 되면 도심은 섬이 된다. 빙 둘러쳐진 농토에서 일렁이는 만경창파(萬頃蒼波) 때문이다. 외곽에서 동서로 가로지르는 만경강과 북서로 가로지르는 금강이 그 젖줄이다. 익산의 생명선은 농촌이었다.

하지만 도시와 농촌을 통합한 17년 동안 익산의 농업인구는 절반 이상이나 사라졌다. 한 세대 이상 지속된 개발 독재시대의 저임금과 연동된 저곡가 정책이 부른 재앙이다. 농촌은 급속히 노쇄했다. 그나마 눈에 띄는 60대 이하 청·장년은 기계를 다루는 기업농 사람들이다.

지금 농업은 집단화와 규모화를 꾀하지않고 적정한 이윤을 창출하기 어렵다. 들판에서는 대형 기계에 가려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고, 오래 전 아기 울음소리가 그친 텅빈 마을에서는 경노당에나 가야 모여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농촌은 희망을 공유하던 정취를 상실해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농촌에는 생산자만 존재한다. 생산에서 소비까지 순환적 지역자립구조가 붕괴된 것이다. 게다가 FTA협상이 발효되는 등 농산물 수입 완전자유화에 직면할 경우, 대단위 전문농업도 선진국들의 덤핑 농산물 폭격 앞에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우리의 농업은 65세 이상이 100만을 상회하는 초고령화와 영세화 상태에서 세계농업시장과의 경쟁에 내몰리게 된 것이다.

피폐한 농촌의 산업기반은 농업의 파괴현상 앞에 속수무책이다. 농업을 천직으로 삼던 고령화된 농민들이 자연사하고 나면 농촌이 회복불능상태로 초토화 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통계청은 오는 2014년 읍면단위의 농어촌 인구는 전체인구의 15%선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중앙정부가 제시하는 적정인구 수준 20%에 5%나 밑도는 추계다. 이 예측이 현실화 될 경우 농촌의 공공서비스와 바람직한 수준의 사회복지서비스제공 등에 제동이 걸릴 공산이 높다. 18%대인 지금도 "농촌에 사회적비용이 과다하게 소요된다"는 경제논리가 저변에 확산되어 있는 탓이다.

악순환의 고리다. 사람들이 떠나면서 일손이 부족하게 되고, 일을 포기하면서 사람들은 또 떠나게 된다. 또한 출산율 급감은 어린이 인구 기근으로 이어져 학교 폐교가 속출했다. 지난 40년 동안 이나라 촌락지역의 학교 3,500여개가 폐교됐다. 이로인해 사람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또 농촌을 떠나고있다. 빈집들은 그렇게 복합적인 문제들을 투영한다.

농촌의 경쟁력은 바른 노동력이다. 그 질이 높고 낮고를 떠나서 기상청의 일기예보를 듣지 않아도 날씨의 변화를 읽을 줄 아는 농사꾼이 필요하다. 농사 이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 농사만 잘하는, 농사란 과정에서 힘을 모으고 결실을 함께 나누지 못하면 할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농민이 농촌에 있어야 한다.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도시사람들은 시스템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지향한다. 도시민들이 '신토불이'에 비싼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생명의 근본을 다루되 한사코 허튼짓을 배제하며 어렵지만 바른 길을 택하는 농민의 자부심을 아는 덕분이다.

농촌에 바람직한 농민이 돌아오면 농촌의 본래적 기능인 '공감'을 회복할 수 있다. 그것은 퇴화된 '거울신경 세포'의 재생에서 시작된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에 기대면, 우리는 공감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협력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삶은 스트레스 덩어리다. 우리는 서로 공감하며 위로받고자 프로그램돼 있는 존재다. 공감의 유전자가 이것을 도와준다.

공감은은 지역공동체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원동력이다. 농부는 본래 그 공감의 풍부한 감수성으로 전체 생태계와 맞닿아 있기에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

양육과 보육 환경이 관건

사실, 인구 과밀로 몸살을 앓고 있는 수도권이나 광역도시에는 새로운 터전을 꿈꾸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무한경쟁에서 밀려났거나 지친 사람들, 혹은 그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문명에 실망해 농촌을 대안적 삶의 토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익산에는 그들을 받아들일 기반이 전무하다.

일반적인 지형에서도 도시에서 살던 사람들이 농촌에 유입되기 어렵다. 노동의 질이나 소득, 문화의 편차가 큰 탓이다. 2000년 이후 이나라의 실업자는 110만명 수준으로 고착화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들이 얼마나 농촌으로 이주했는가.  

농업이 3D직종으로 분류되는데다, 정주환경마저 미래를 담보하지 못하는 이상 도시민들의 귀농은 어렵다.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상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최대한 탈농현상을 막고 귀농한 인구의 2세들이 농촌에 동화될 수 있는 조건들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

직접 보고 동참하며 생업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한 2세들이 아니고는 농촌의 안정적인 노동력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육과 보육에 대한 사회적책임 강화가 무엇보다 긴요하다. 출산율을 높이고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미래의 잠재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들이 성장할 때까지 경제논리의 형평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다음은 도시보다 더 나은 의료복지시설과 질 높은 교육환경, 맞춤형 교통 및 통신시설 설치와 쉽고 값싼 이용방안 마련을 점진적으로 추진해 나가야한다. 또, 귀농인에게 농촌생활정착지원제도를 도입해 택지구입, 최소농경지 구입, 주택건설자금 등의 일부 무상지원, 일부 장기저리 융자지원 등을 현실화해야 한다.

지자체는 더이상 중앙정부의 처분만 바라서는 안 된다. 이는 국토 균형발전과 실업난 해소, 국가경쟁력제고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치단체들은 공격적으로 필요한 것 들을 요구해야 한다. 그 재원으로 정부의 인구증가를 위한 정책자금이 있다. 또 무역개방으로 크게 혜택을 보는 기업들이 일부를 보태면 된다.

농촌의 노동력이 사라지는 것은 식량주권이 멸실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식량과 관련한 국가안보나 지역경제 활성화 보다, 농촌과 노동력은 우리의 허파라는 '공감' 회복이 우선하는 가치다. 농촌을 재건하는 이유는 도시를 정화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