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 오세훈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쇼'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다양한 희극적 요소를 담고 있던 이 쇼는 주인공의 장렬한 최후로 대미를 장식, 180억을 쏟아부은 블록버스터 제작의 당위성을 강변하고 있다.

이 쇼는 처음부터 무대에 올려질 수 없는 비경제적이며 부조리의 전형이었다. '전면 무상급식' 대 '무상급식 불가'론의 충돌로 합의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면, 최후에 시민의 의견을 물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의 안과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안은 무상급식의 범위와 시기를 서로 달리했을 뿐, 무상급식에는 뜻을 같이 했다.

서울시민들이 주민투표 문안에서 선택했어야 하는 두개의 문항 가운데 오세훈 쪽 질문은, '소득 하위 50%의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급식 실시'다. 또 곽노현 쪽 질문은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 중학교는 2012년부터 전면 무상급식 실시'다.

이를 바르게 정리하면, 소득 하위 절반의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것과,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2012년까지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한다는 안의 대결구도다. 이것은 심판의 문제가 아니라 조율의 문제다.

게다가 서울시의회는 당초 전면무상급식을 주장하다 한 발 물러서서 서울시의 예산부족 현실을 감안한 '초등 4학년까지 전면 무상급식, 초등5학년부터 중학생까지 부분 무상급식'이라는 곽노현 교육감의 절충안을 추인했었다.

굳이 구분하자면, 오세훈의 성향은 중도 개혁이거나 중도 보수 쯤 된다. 주민투표에 붙인 그의 질문이 그걸 방증한다. 따라서 그가 복지포퓰리즘을 정치적 쟁점으로 삼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하지만 그는 투표에서 지고 퇴장했어도 '보수의 수퍼 영웅'으로 등극한 양상이다.

오세훈은 강남 3구 가운데 두 곳에서 투표함을 열 수 있는 투표율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6.2지방선거에서 일궈낸 25.4%(208만6,127)의 득표율보다 0.3%(7만1,617명)나 높은 지지율을 끌어냈다.

사면초가의 식물시장이었던 오세훈은 오히려 고치를 뚫고 날아 올랐다. 이미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실시되고 있는 무상급식을 이념논쟁으로 비화시켜 얻어낸 물리적 탄성에 의해서다. 그가 추락 할지 연착륙 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각적인 면을 감안해 살펴보아도 오세훈은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조장했다. 거기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됐다.

하지만 그는 아이들을 차별하며 밥그릇이나 뺏는 나쁜시장이라는 낙인을 '보수의 아이콘'으로 치환하는데 성공했다. 의회를 적으로 삼다 고립무원에 떨어졌던 처지를 벗어나는 것은 물론 더 나은 내일의 티켓을 거머쥔 것이다. 

무상급식 투표를, 그의 무릎꿇기와 눈물을 동원해 시장 신임투표로 변질시킨 결과다. 보수쪽은 그에게 속았지만 그걸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가 발판으로 삼기 위해 택한 대립과 국론분열 책동은 분명히 성공한 양태다.

주어진 역학관계상 지더라도 보수의 결집 덕에 개인적으론 승리한다는 예측, 복지황무지에서 복지과잉을 외치는 그에 대한 반발이 클 수록 그 가능성도 커진다는 것을, 그가 고려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가 도탄에 빠진 시민을 상대로 무모한 도박을 벌였다는 가설은,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74.3% 역시 결과적으로 오세훈을 키웠다는 역설적 사실에 의해서도 세울 수 있다.

모두가 오세훈의 혼수모어('混水摸魚' 물을 혼탁하게 만들어 놓고 방향감각을 잃은 물고기를 잡는다)에 낚인 꼴이다. 한나라당은 당내 갈등과 혼선 속에서도 10.26보선 승리를 장담하며 전열을 정비하고, 민주당 지도부는 시장 후보 선출을 놓고 자중지란을 일으켰다.

주민투표가 찬반의견을 가진 모든 시민의 공론장이 됐었다면, 유래없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가운데 오세훈이 압도적인 표차로 패배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투표거부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세훈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머리 위에서 외줄을 탔고, 그가 추락 할 경우 피할 공간이 없는 지형이었던 탓이다.

1인 혼수모어에 농락 당한 나라

민주당은 투표함을 열 경우, 지난 6.2지방선거에서 오세훈이 획득했던 표를 이길 수 없으리라는 불안감을 털어내지 못했다. 더구나 투표일이 주말이나 휴일이 아닌 평일이었다.

초기에 오세훈의 계략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애쓰던 한나라당이 막판에 그를 당차원에서 지원한 것도 민주당의 생각과 대동소이 할 터다. 설령 투표함을 열지 못하더라도 지는 게임이 아니라는 계산, 하지만 지원하지 않을 경우 보선에서 참패 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지배됐을 터다.

문제는 오세훈은 처음부터 그 모든 경우의 수들을 짚었을 공산이 높다는 점이다. '혼수모어'는 적의 내부에 뜻밖의 상황을 만들어 혼란에 빠뜨리고, 우왕좌왕하며 힘이 약화된 틈을 타 적을 나의 의도대로 따르게 하는 계책이다. 오세훈은 주민투표결정 초입에서부터 그 뜻밖의 상황을 지속적으로 터뜨리고 연출했다.

다가올 서울시장 보궐선거 조차도 뜻밖의 상황이다. 민주당이 겪고있는 혼란은 오세훈의 주민투표 결정을 방기한 순간부터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의 꼼수는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을 뒤흔든 정도가 아니라 국민을 우롱하고 농단했다. 그러나 오세훈은 차기 대선에 출마할 것이고 높은 당선 가능성을 확보했다. 그것이 이 나라의 한계다.

당초에 오세훈 각본의 '주민투표 쇼' 를 국민의 권한으로 허락하지 말았어야 하는 이유다. 오세훈의 쇼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는 MB나 한나라당 주류와 합작한 훨씬 더 정련되고 화려한 쇼를 가지고 반드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오세훈의 당당한 뒷 모습에서 이 나라의 수준을 본다.

그가 초래한 국력 낭비와 손실에 대한 책임을 물을 자는 어디에도 없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허둥대며 서로 충돌한 끝에 오세훈 재등장을 돕는 조연이 되어줄 것이다. 물이 맑아지거든 한 번 들여다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