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오늘날 민주주의는 지구촌 유일의 지표 아래 수정되어야 한다.

지난 15일 전세계 82개국 1,500여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린 '1%의 탐욕에 맞선 99%의 저항'시위, 그 행간에서 읽히는 지향점이다.

수십만 명이 자발적으로 광장을 채우고 '다함께 점령하지 않으면 안 될' 목표를 동시에 바라 본 전대미문의 저항.

1%의 사회적 자산 독점구조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자각에서 비롯한, 이날의 행동은, 불균형은 개인의 문제고, 개인이 불균형을 극복하도록 한사코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기존 인식 틀의 붕괴를 알렸다.

불공정사회는 지속되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심화된다는,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오랜 시간의 학습결과가 보편화 된 순간이다.     

오직 생존을 위한 경쟁을 강요 당하며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파편화된 개인들이 합목적을 위해 걸음을 멈춘 것이다.

사회불만세력의 일시적인 행동으로 보아넘겨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1%의 자본이 부(富)와 노동시장을 독점하는 경제·정치시스템, 그 '허위의 민주주의'가 광장으로 끌려나올 날이 임박했다. 

하지만 99%가 1%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같은 키 높이에서 담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쉬운 일일까.

쌍방의 과열을 피할 수 없다면 이날의 행동은 비극의 서막이 될 수도 있다. 요구하는 쪽보다 불감(不感)하는 쪽이 더 무자비하기 때문이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를 발전시킨 원동력은 기업간 불균형을 주도하며 경쟁한 기업가들의 혁신행위였다.

그러나 그런 선순환구조가 화석화 됐다. 전체 1%를 분점한 그들, 혹은 산업 각 부문을 독점한 그들에게는 더이상 혁신이 필요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해 자본주의를 가장 뛰어난 경제 체제로 만들었던 창조와 도전의 근육은 퇴화했다.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거대한 비계 덩어리, 그러나 폭식을 그치지 않고, 절대적 빈곤이 양산되고, 심화되고.. 이런 악순환을 우리가 바랐던가.

99%는 지금 중력을 의심한다. 노동이 천부의 권리이며, 일한 만큼 먹고, 세상에 기여한 만큼 존중받는가.     

오랜 세월 믿었던 것을 부정할 경우 긍정하는 쪽조차 혼돈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극소수가 절대다수의 행복을 강취하기 위해 세운 이념이 아니었다. 시장(市場)과 정치가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는 수단이라는 99%의 믿음이 깨진 지점이다.

합의의 산물이지만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 자본주의를 재해석하는 각도가 되었다. 민주주의는 운영의 오류로 왜곡됐고, 1% 자본의 지배체제로 변질됐다는 인식이 마침내 '민주주의는 한계에 봉착했다' 는 극지점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변혁을 꾀하는 움직임에서 위기가 감지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분노한 99%가 합의를 깨고 새로운 이념의 이름을 창출하는 쪽으로 기운다면, 자본과의 사생결단은 불가피하다.

화약냄새 없는, 그러나 무수한 순교자를 낼 '소유'와 '존재'의 전쟁이 임박했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는 까닭이다.

소유를 지상과제로 삼는 자본의 속성은 '폐쇄'다. 일단 포만감에 빠진 자본은 대체로 자신의 소유 안에서 안정을 느끼며 집착했고, 새로운 것 없이도 충분히 만족한다.

불확실에 도전하거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 위험을 느낀다.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은 자연법칙에 기반하며 고대부터 사회질서를 지배하는 근간으로 존재해 왔다.

그런데 99%의 인류는 이른바, 약자가 강자의 번영에 희생되도록 구축되어 있는 기존 시스템에 균열을 가하려고 한다.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만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되어 소멸하는 자연 현상 속에서, 99% 인류 스스로 그 환경이 되려고 한다.

이 살아남기 전략에 기인한 혁명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1% 자본의 환경이 해체되면 100%의 환경은 어떻게 재편 될 것인가.
99%의 환경 속에는 필연적으로 ‘어느 누구도 나보다 많이 가져서는 안된다’ 는 저급한 이기심 혹은 과잉이 도사린다.  

'존재적 인간'의 관점이 공동선

완강한 자본이 무장을 해제하고 99%와의 공존을 택하도록 할 최대공약수는 추출 될까. 새로운 시스템은 버티는 자본을 끌어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자유시장이 통제되는 시장으로 치환되는 것이 가능 할까. 이 질문들은,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지도자들에게 던져지는 것 못지않게, 행동하는 99% 쪽에도 중용(中庸)의 지표를 확립할 것을 촉구한다.

1930년대 초 미국의 대공황 때의 시위는 시장만능주의가 복지국가로 전환하는 큰 계기가 됐다.

반면, 독일 같은 곳에서는 파시즘이 등장하는 빌미가 됐다. 지금은 에리히 프롬의 '존재적 인간'의 관점이 공동선이다.

생산은 인간의 참된 욕구에 부응해야 하고 경제체제의 요구에 종속되지 말아야 한다는 반성이 공유되어야 한다.

적대감을 연대감으로 대치하고, 착취가 아닌 협력에 기초한 새로운 관계를 세우는 것이 첫 걸음이 되어야 한다.

사회적 제도의 최고 목표는 인간의 복지를 가져오고 인간의 고통을 저지하는 것이어야 한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독립된 개체로서 하나의 유기적 구조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

자발적, 능동적, 휴머니즘적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가치를 파괴해도 부작용이 최소화 될 수 있다는 안도감과 확신을 갖게 된다.

그래도 슬픈 것은 우리에게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다. 오늘의 광장은 시장만능주의에 도착 증세를 보여온 자본가와 지도자들이 만들었다. 대중이 그들 자신을 책임진다면 지도자들에게는 무슨 역할이 남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