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우리는 숨가쁘게 걷던 길 위에서 "정의는 무엇이냐"고 묻고 있다. 새천년 이래 그저 인문학적으로 제기 된 듯 했던 이 질문은 어느샌가 플랫폼 한 복판에 던져졌다.

나라 안에서는 언론탄압, 노동자 학살, 법조 정치화, 유전무죄, 권력 오용, 국가권력 사유화같은 극한의 살풍경들이 우리들을 불러세웠다.

나라 안팎에서는 만연한 부당이득과 부(富)의 독점구조, 그 철옹성이 우리들로 하여금 비정의(非正義)를 자각케 했다.

그래서 우리는 논법적 '정의'에 약할 지언정 정의가 무엇인지 그것은 왜 필요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다만 정의를 구현 할 주체들이 정의를 망각하고, 혹은 정의가 그들의 자의적 정의에 매몰되고, 정의를 사익 강탈의 흉기로 휘두르는, 정의가 실종 된 길 위에서 만나는 질문이다. "너희는 왜 존재하느냐"

내곡동 사저 터 매입과 관련한 각종 의혹이 특검팀 가동 몇 일만에 그 혐의의 구성요건을 갖춰가고 있다. 대통령 일가와 청와대 경호실이 전방위적으로 얽힌 '배임과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는 이 나라 검찰이 수선을 피우다가 수개월 전에 무혐의로 종결했던 사건이다.

두차례에 걸친 고발에도 미적거리다 못해 착수했던 수사였다. 이명박 부부가 직접 개입했다는 정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검찰은 면죄부 수사라는 꼬리표를 감수하면서 사건을 덮었었다.

법원은 어떤가. 서울변호사회는 8일 전 100일동안의 '쌍용차 사태 특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천646명의 정리해고와 23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결정적인 역할을 법원이 했다는 내용이다.

쌍용차 기획파산 의혹을 검증하지 않은 채 회사가 내민 수치만을 근거로 정리해고의 실체적 요건을 쉽게 인정했다는 것이다. 당시 쌍용차의 대주주였던 상하이차는 쌍용차의 유동성 위기를 해결할 충분한 여력이 있었지만, 회사의 부채 비율을 천문학적으로 높여 자력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로 보이도록 손상차손을 계상했다는 조사 결과다.     

쌍용차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해고 노동자들을 상대로 과도한 소송을 제기해 노동자들을 천길 벼랑 아래로 떠밀고 있다. 우리의 정부도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회사쪽의 손해배상 청구액은 250억원, 경찰을 비롯한 정부가 제기한 청구액은 42억원에 이른다.

회사와 정부가 소송에서 이긴다 한들 밥줄 조차 끊긴 노동자들이 어떻게 배상 할 수 있겠는가.

그걸 뻔히 아는 소송 진행은 악의적인 노조 탄압 행위일 뿐이다. 법은 사경을 헤매는 사람들의 목숨을 아예 끊는 흉기가 된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와 좌우 이념간의 충돌 이래, 빠른 고도성장을 이루었다. 공권력의 일선(경찰, 검찰, 법원)이 일제의 앞잡이를 했던 식민사법제도가 그 원동력이었다.

식민사법제도를 운용한 사람들은 기꺼이 권력의 앞잡이가 됐고, 권력과 고용자는 다양한 형태의 부패 문화를 꽃피웠다.

성장에 따른 부패는 그들만의 것이었고, 노동자는 성장의 중추가 아니라 노예로 취급되었다. 유전무죄, '부패가 곧 성공'인 시대를 우리는 치달아 왔다.

지난 몇 년간 우리를 좌절케 한 일련의 폐해들은 '제도권이라는 영역은 부패 없이 돌아가지 않게 되어 있다'는 걸 명증했다. 이것은 또 엄존하는 식민사법제도의 잔재다.

검사는 맡은 사건에 대한 기소를 독점한다. 수사와 관련해 사법경찰관리를 지휘·감독하고 휘하 조직을 운용하는 단독 국가기관이다. 그러나 검찰은 총장을 정점으로 '검사 동일체의 원칙'에 구속된다. 모순이다. 독립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 놓고 이것을 침해한다.

검찰총장이나 각급 청장은 검사들에게 사건을 배당하고, 회수 할 수 있으며, 간섭하거나 아얘 사건 수사에 참여 할 수도 있다. 검찰사무는 상명하복에서 출발한다.

윗선에서 원하는 것이 일사천리로 이행되는 제도다. 통치권력이건 경제권력이건 검찰의 윗선에만 닿으면 뭐든 할 수 있는 구조다. 식민치하의 공권력 통제장치다.

이는 검사의 책임의식을 희박하게하는 폐단이다. 기소를 잘못한 책임을 엄중하게 묻지도 않는다. 책임이 분산돼 있기 때문에 누구의 책임인지도 모르는 탓이다.

이는 흉악범보다도 위험한 검사들의 서식환경이며, '전관예우'의 근원이다. 기득권을 수호하는 추악한 법조 마피아를 양산하는 시스템이다.

부패한 공권력은 온갖 비리의 울타리며, 사회 양극화의 앞잡이다. '무전유죄', 무고한 시민을 범죄자로 만들고, 바른 말을 틀어막는 재갈이다.

부패가 곧 성공인 시대

그릇된 법의 집행은 인권을 침해하고 인간성을 파괴하며 개인의 생활을 파탄으로 내몬다. 거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공권력은 어떤 짓을 해도 정당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고착화된다.

검사도 법관도 모럴해저드에 빠지고, 국민은 절망에 빠지며 그에 반발하는 범죄들이 속출한다.

검사의 선서 가운데 '바로세워야 할 정의와 인권'은 무엇인가. 법관은 자유·평등·정의를 어떻게 실현하는가.

이 질문은 오히려,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판·검사, 이해와 신뢰를 얻어내는 믿음직한 판·검사, 스스로 더 엄격한 바른 판·검사,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기울여 국민을 섬기는 판·검사들에게 던져져야 한다.

말귀가 밝은 그들이 부패를 걷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식민지의 잔재를 청산하는 것 못지 않게 우리는 사람에게 기대 할 수 밖에 없다.

올바른 사람은 그릇된 잣대도 바르게 쓰지만,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훌륭한 잣대도 자의적으로 사용한다.

이 나라 법이 상식이 돼야 하는 이유다. 초등교육과정부터 법은 특정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야 한다. 누구나 훌륭한 법률가가 될 수 있도록 자질을 길러서 법이 법전 속에 잠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법집단을 감시 하는 범 국민적 시선과, 질적으로 진화된 사람들의 법조계 진출 없이 무엇이 바뀔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