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현존하는 사회가 공유하는 최대한 맑은 물이며, 법전은 그 물이 결빙 된 거울이어야 한다. 이런 법의 '냉기'와 투명한 '비침'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만큼의 적당한 긴장을 일깨우고, 죄를 범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이런 법의 위엄은 사법권 행사가 엄정하게 이루어졌을 때 갖춰진다. 결국 법전에 활자로 존재할 뿐인 법을 맑은 물로 치환(置換)하여 세상을 정화하고, 그 물의 냉기를 유지해 나가야야만 법은 비로소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 떳떳하여 변함이 없는 상태를 일러 중용(中庸)이라 하니, 이는 반드시 사법권 행사의 준거(遵據)가 되어야 한다.

반면, 사법권이 자의적으로 행사 될 경우는 생각 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차라리 법이 없는 세상보다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회를 이루고 지속시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해체당하는 일이며, 나아가서는 법이 오히려 가해자의 안전장치가 되어 피해자는 있되 가해자는 없는 암흑세상에 떨어지는 일이다.

사법권의 자의적인 행사는, 법을 물로 치환시켜서 세상으로 흐르게 하지 않고 그들만의 웅덩이에 고이게 하는 것으로, 온갖 먼지와 병원균의 수용체가 되어 세상의 각가지 악(惡)을 적정한 온도로 양산하는 일이다.

그럴 때의 선(善)은 피해자로서의 권리를 찾기 위해 악을 상대하기 보다는 법을 집행하는 자들의 척결을 선택한다. 그것이 빠른 길 아닌가. 모름지기 사법부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그런 극단의 상황이 머지 않았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법권을 행사하는 측의 중용은 국민의 법감정과 정의관념이다. 법감정은 기본권에 근거한 형평성을 지향하며, 정의관념은 공익에 근거한 공정성과 투명성에서 비롯한다.

결국 법적용과 법집행은 사회상규의 범주를 벗어나면 혼란을 야기한다. 국민은 이 때 사법권이 감시와 통제 밖에 놓여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되며, 이런 위험요소를 제거할 방법을 찾게 된다.

본질을 흐린 법관의 무리수

최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이 P씨와 L씨에게 각각 내린 두 개의 판결이 일시적인 파문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파동의 진원이 되는 것은 그런 우리 사회의 보호본능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검찰이 두 사람을 법정에 세운 혐의 내용은 단순하다. 익산시청 사무관 P씨가 비서실장 L씨에게 승진 부탁을 했고, P씨가 서기관으로 승진 한 뒤 L씨에게 사례비조로 3천만원을 건넸다는 것이다.

검찰은 서로 다른 시점에 두 사람을 기소했고, P씨의 뇌물공여 혐의는 형사단독 판사 A가, L씨의 뇌물수수 혐의는 형사합의부 판사 B등이 각각 배당받아 심리 했다. 

같은 법원은 이에 앞선 검찰조사 과정에서 P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P씨가 혐의사실을 인정한 시점었다. 또, 판사 A는 P씨의 진술에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면서 P씨에게 실형을 선고 했다. P씨는 옥중에서 항소했고, 상급법원인 전주지방법원 판사들 역시 P씨의 유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L씨의 뇌물수수혐의를 심리한 판사 B등은 L씨에 무죄를 선고 했다. P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고, 증거도 없다는 이유였다.

우리는 우선, 같은 진술을 바라보는 법관들의 시각이 극단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점에 섬뜩하고 불안하다. 특히, 양형의 차이 정도가 아닌 유죄와 무죄를 가르는 오류다. 이를 단지 실수로 여길만한 마땅한 당위가 없다. 판사 A와 판사 B 중 누군가는 논리적 규칙을 벗어난 판단을 내렸고, 그것을 의도했을 공산이 높다는 세간의 의혹이 그래서 확산되는 것이다.

판사 A와 B중 누가 하늘의 그물(天網)에 걸린 것인가. 현행 형법에 따르면 뇌물공여죄와 뇌물수수죄는 서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뇌물을 받은 사람이 없으면, 뇌물을 준 사람도 없다. 뇌물을 준 쪽이나 받은 쪽의 상관관계를 입증하지 못하면 범죄의 구성요건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P씨는 L씨에게 뇌물을 건넸다는 진술로 옥살이를 해야 했고, 검찰은 그 진술을 결정적인 증거로 삼아 공소를 제기했으며, 판사 A가 주재한 1심과 항소심은 모두 P씨의 유죄를 인정하여 형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판사 B등은 P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당사자로 기소 되었던 L씨에게 무죄를 선고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판사 B등은, 판결문에 P씨가 공소사실 밖의 특정 인물인 K씨에게 돈을 준 것으로 추측된다고 적시해 논란이 일고 있다.

같은 법정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P씨를 의식한 도피적 상쇄 장치인지, 검찰을 비롯한 같은 법정과 상급법원의 P씨에 대한 유죄판결이 잘못 되었다고 가르치는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 판결이 여러모로 석연치 않고, 규명이 필요한 부분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판사가 검사의 일을 대신 할 수 없는데, 굳이 사족을 달아서 본질을 흐리고, 소외(訴外) 인물의 명예를 훼손하여 얻을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런 판결의 효용가치가 무엇이라는 것인지 도대체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