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사회연구소 대표

권태홍

역사를 망각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어느 날이라고 소중하지 않은 날이 없겠지만 6.10은 특별하다.
97년 전인 1926년, 일제에 맞서 전국에서 6.10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3·1운동, 1929년 11·3 광주학생운동과 함께 3대 독립운동으로 평가받지만 2020년 12월 8일에야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6·10 만세운동은 순종 장례일에 맞춰 일어난 조직적인 항일학생운동이다. 1920년대 들어 기만적인 일제의 문화통치가 노골화된 상황에서 독립운동에 큰 힘을 불어넣었다. 3?1운동에 이은 '제2의 만세운동'이었다. 2021년부터 정부 차원의 기념행사가 치러지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적다. 곧 100주년이다. 체계적인 재조명과 제대로 기억하기 위한 사업을 잘 준비해가야 한다.
36년 전인 1987년 6.10은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기치로 전국적인 반군사독재 민주주의 시민항쟁이 시작된 날이다. 6.29 선언으로 대통령직선제 등이 쟁취될 때까지 500여만명의 시민들이 항쟁에 참여했다. 6.29 항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새 헌법에 따라 그 해 12월 16일 첫 대통령 직선제 선거가 실시되었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87체제’의 시작점이었다. 군사독재 종식을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의 댓가로 만들어진 민주주의의 거대한 성과였다.
연세대학교 한열동산 기념비에는 ‘198769757922’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다. 1987년 6월 10일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 은폐 규탄과 호헌 철폐 국민대회’를 앞두고, 6월 9일 연세대에서는 출정 결의대회가 열렸다. 연세대 교문 앞에서 이한열 열사는 경찰의 직격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내일 시청 6.10 대회에 가야 하는데” 이 말을 남기고 정신을 잃었다. 7월 5일, 27일간 사경을 헤매던 그는 끝내 세상을 떠났다. 7월 9일, 민주 국민장으로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그의 나이 22세였다. ‘1987696757922’ㅠㅠ
이한열은 대학교 동아리 후배였다. 장례식 때 서울에서 광주 망월동까지 직접 운구했다.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연세대-서울시청-망월동으로 이어진 장례식에 함께 해주셨다. 망월동에 한열이를 직접 하관해서 묻었다. 6.10 항쟁은 항상 후배 이한열과 함께 기억되는 깊은 상실과 슬픔의 역사이기도 하다.
수십 년의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를 이만큼 전진시킨 역사에 얼마나 많은 헌신과 희생이 있었던가? 6.10 민주항쟁은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국가기념일로 지정이 되어 2007년부터 국가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항쟁 20년이 지나서야 국가기념일로 위상이 정립된 것이다. 올해는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났다. 6.10민주항쟁 36주년 기념식 '민주로(路) - 함께 걸어온 길, 다시 가야할 길'이 10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열렸다. 기념식 현수막과 안내문엔 ‘주최 - 행정안전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정부 인사는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기념식 하루 전날 정부가 행사 불참을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기념식 행사 주관단체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윤석열대통령 퇴진을 주장한 단체를 후원했다는 이유였다.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위원회’가 6월 10일에 열리는 32회 추모행사를 신문광고에 실어 알리면서 "윤석열은 퇴진하라"는 구호가 적힌 광고를 냈는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그 후원 단체로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 이원영이사의 인터뷰에 따르면 사실관계가 전혀 다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법에 따라 민주화운동 정신을 기념하고 계승하는 사업을 하게 되어 있다. 올해 초에 사업 공모를 통해 32회 범국민 추모제 행사가 선정되었고 무대 설치비의 일부를 지원할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8일에 문제의 범국민추모위원회 신문광고를 확인했고 바로 기념사업회 내부 협의를 거쳐 후원을 취소하기로 결정하고 행안부에 이를 바로 보고했다고 한다. 사실이 이런데도 행안부는 정권퇴진을 주장하는 단체를 후원한다는 억지 논리로 하루 전인 9일에 행사 불참을 선언한 것이다. 억지스럽고 느닷없는 이런 행위는 행안부의 독립적 결정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실이 현 정부의 여러 정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들과 민주화운동의 역사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독재정치와 경제독점이야말로 소수의 이익과 기득권을 위해 다수가 억압되고 희생되는 사회악의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민주화 투쟁은 독재와 독점을 해체해왔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수구 기득권의 반동과 배신에 다름 아닐 것이다. 한열이의 선한 눈길이, 망월동 구묘역에서 그리움에 눈물짓던 고 배은심 어머니의 뜨거운 눈물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데.......
6.10항쟁 36돌을 맞아 꼭 이루어야 할 숙원 과제가 있다. 민주유공자법을 제정하는 일이다. 민주유공자법(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발의된 것은 1998년 12월이다. 보훈처가 진행한 ‘대국민 보훈 인식조사’를 보면 국민 75.8%가 민주화운동을 보훈의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현재 보훈법에서는 4.19와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만 인정하고 있다.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회장은 민주유공자법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이만큼 실현되기까지 몸 바쳐 싸워오신 분들의 노력이 정부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여전히 기득권의 지배가 계속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완성해 나가는 데 발판이 되게 하기 위함"이라고 호소했다. 유가협은 "(돌아가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평생 소원도 민주유공자법을 제정해 아들의 예우를 해달라는 것"이었다고 설명하며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원회를 통해 인정된 민주화운동 사망자 136명과 부상자 690여명에 대한 국가유공자 인정이 시급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제 6.10항쟁 36돌을 맞아 ‘민주화운동 관련자’가 아니라 ‘민주유공자’로 그 위상을 분명히 정립해야 한다. 6.10에 대한 제대로 된 기억과 기념, 민주유공자법 제정은 민주주의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