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키퍼트리 이사장 이강래

  옛말에 화로가 두 개 있는 집은 화목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아릿한 기억 속의 그 시절, 화로는 단순한 난방기구가 아니었습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오순도순 정을 나눌 수 있게 하던 화로는 생각과 성격이 제각각인 가족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구심점 이었습니다. 이런 히터가 한 집에 두 세 개씩 있다는 것은 가족 간에 대화의 위기나 다름없었습니다.
이불거죽이나 요 같은 큰 침구들을 집에서 손수 누비고 다려야 했던 옛적에는 다리미질감을 맞잡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서로 호흡을 맞추는 일체감이 필수였습니다. 개성이 모두 다른 시어머니 며느리들은 이렇게 다리미질을 함께 하면서 공동체의 관계성을 익혀갔던 것입니다.
TV도 옛 화로만큼은 아니지만 그런 대로 온 가족을 한 데 모으는 구실을 했지요.  채널쟁탈전을 벌이던 때가 엊그제련만 그 전쟁은 살벌한 싸움이 아니라 살가운 사랑의 엉킴이었습니다. 방마다 디지털 TV를 따로 갖춘 부유한 집에는 채널쟁탈전이 없어서 좋기는 하겠지만 가족들끼리 관계성을 익혀 가는 소중한 기회마저 사라져버린 셈이니, 그 상실감은 무엇으로도 메우기 어렵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쓰는 가전제품을 사유물처럼 바꾸어 가는 세태는 슬프게도 혼밥문화의 속도와 궤를 같이 합니다.가족 간의 그 사랑의 관계성을 일그러뜨리며 점차 콩가루집안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첨단이라면, 차라리 옛 시절의 자그만 흑백 TV 한 대가 더 정겹지 않을까요?

철새 떼는 수천 수만 마리가 한꺼번에 무리를 지어 날아오르지만 충돌사고 한번 일으키는 법이 없다지요. 사람들 같으면 몇백 명만 모여도 밀고당기며 부딪치고 하다가 다치기 일쑤지만, 새들마져도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질서 속에서 하늘을 납니다. 서로의 관계성에 충실한 본능적 지혜요 엄숙한 대자연의 섭리이겠지요.
공동체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내 자유이며 벗어나는 것은 곧 죽음이라는 것을 새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실연을 당했을 때에 사람만이 아닌 새들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다는 군요. 날개를 펴지 않고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새는 자결한 것이라 합니다. 아!!
이에 비하면 인간들의 운전습관은 얼마나 미개하고 무질서하며 얼마나 어리석기 까지 한가요.?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을 쓴 토마스 쿤 '보편적 절대성'을 버리고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을 진정한 과학의 패러다임으로 규정했는데, 종래의 기계론적 절대성의 과학은 사물을 양분 해서 인식했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은 전체를 나누지 않고 사물을 통섭적으로 해석합니다. 보편성에서 주체성으로, 주체성에서 관계성으로 옮겨가며 깊이를 더해 가는 사유의 새지평을 봅니다. 절대와 상대가 둘이 아니라 하나로 접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자 함이지요. 만유의  상대적 연관관계를 두루 포괄하는 차라리 초월적 섭리의 절대성은 치명적인 엄숙함으로 다가 옵니다. 수없이 밤을 세워 벗어 나지만 날이 새면 다시 수틀 속의 새처럼 타원에 갇쳐 있게 되다니요?

친구가 SUV차를 샀는데 1주일 만에 앞을 긁혀서 회의 중인데 낯선 전화가 오는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어쩌다가 제가 차를 ~~~~~” 한시간을 기다리라 하고선 달려가 보니 결혼을
앞둔 젊은 한쌍이 초조하게 친구 눈만 응시하더라는 것이지요. 친구 왈 “이 상처가 더 깊어지면   내가 가서 함께 수리할테니 그냥 가시게들~~~” 그렇게 해도 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고개를 넙죽 숙여 절을 하고 사고현장을 벗어 나려다 “선생님 전화 번호 좀!!!!”해서 그들 스마트폰에 이름을 적는데 글쎄 친구 이름을 ‘아름다운 약속’이라고 적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선 2시간 뒤에 스마트폰에 뜨레쥬르로 선물이 띵동 들어 왔구요. 나름대로 이벤트가 승화된 것인데 3일 후 친구는 정차 중에 깜빡 브레이크를 놓쳐서 4M정도 떨어져 멈춰 있는
40초반의 여성드라이버의 차 후미를 받고 만 것입니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서 남편을 오라했어요~~~~” 일은 커지고 말았는데, 남편이 부인의 차의 기스는 방관하고 친구의 3일전 발생한 상처의 사연을 묻더라는 것이지요. 친구는 자기의 이름이 ‘아름다운 약속’으로 바뀐 사연을 꺼낼 수 밖에 없었고, 이야기가 다 수습되기도 전에 40대 젊은 부부는 어느새 자기차에 올라타 있엇고, 어디선가 “저희들 내일 동유럽 출발합니다, 우리도 약속을 이어가겠습니다” 여러분 수틀 속의 새를 한번 찾아 볼까요?. 드물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