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홍

협동사회연구소

정치개혁 없이 어떤 사회개혁과 경제개혁도 어렵다는 것을 대한민국 정치가 잘 보여준다. 양극화된 정치 구조 속에서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적대적 투쟁이 난무하고 있다. 당직 선거에서조차 진흙탕 싸움이다. 원래 정치가 그런 것일까?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비교적 좋은 정치를 하는 나라들, 중요한 민생정책을 가지고 토론을 통해 제대로 싸우는 그런 정치로 국민통합과 선진사회를 열어가는 나라들을 보면 훨씬 더 좋은 정치도 가능한 것이다. 무슨 차이가 결정적일까?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많은 요인들이 있겠지만 대의민주주의에서 공직 선출 선거제도야말로 가장 핵심적인 문제일 것이다. 국민의 권력을 누구에게 어떻게 위임하는가의 기본문제이기 때문이다. 좋은 선거제도는 정책 정당의 형성과 책임 있는 정책 경쟁을 통해 좋은 정치인과 좋은 지도자를 배출하게 한다. 숙의와 토론을 통한 좋은 정치문화와 사회 통합으로 이어진다.
특히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의원들이 입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이 기득권 수호자들로 구성되면 입법 기능을 통해서 기득권의 아성을 제도적으로 두텁게 쌓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국회의원 선출제도를 살펴보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민낯을 볼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 헌법하에서는 직접 선거에 의해 지역구 의원을 전체 의원의 3분의 2만큼 선출하고 나머지 3분의 1은 대통령이 추천하여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선제로 선출했다. 지역구 의원의 선출방법도 한 선거구에 2명씩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도를 통해서 1당이 반드시 당선되도록 했다. 전두환 정권하에서도 2명씩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도는 그대로 이어졌다. 비례의석의 경우 지역구의석 제 1당에게 비례의석의 3분의 2를 배분했다. 박정희 정권의 간선제나 전두환 정권의 제 1당에 대한 과도한 비례의석 할당 등은 지금 보면 너무나 우스꽝스럽지만 실제로 시행되었고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제도로 작용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느닷없이 중대선거구제를 던진 대통령, 선거제도 개편을 강조하고 나선 국회의장, 그리고 여야 가릴 것 없이 많은 정치인들이 선거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개정법안을 제출하고 있다. 최근 여야의 국회의원들이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을 만들었다. 1월 30일 출범식에는 여야의원 121명이 참여했는데 지금은 참여자 수가 더 늘고 있다. 의원모임은 출범선언문에서 “국민들이 투표한 정당의 득표율과 국회 내 의석수가 턱없이 괴리돼 국민의 뜻이 국회에 제대로 닿지 않으니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국정은 더욱 혼란에 빠진다. 이런 난맥은 국민들의 투표 절반 가까이 사표로 만들어버리는 소선거구제에서 대부분 비롯된다. 사표를 최소화하고 국민의 표심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민주적 선거제도를 만들겠다. 당리당략에 구애되지 않고 여야가 허심탄회하게 원점에서부터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의 출범선언문에서 밝힌대로 소선거구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현재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승자독식, 절반에 가까운 사표문제, 정당득표율과 괴리된 의석수로 인한 비례성 문제, 지역주의 권력독점으로 인한 부패와 무능, 거대양당의 적대적 공생으로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고 싸움판 정치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선거제도 개혁의 방향과 속도일 것이다.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2월 내에 복수안을 만들어 제출하면 3월에 국회의장 주도로 매주 2회 이상의 전원위원회를 열어 선거제도 개정 법정시한인 내년 총선일 1년 전인 올해 4월 10일까지 선거제도 개혁을 완수하겠다고 한다. 과연 이번에는 소선거구제의 폐단을 개혁해낼 수 있을까? 시선은 국회 정개특위로 쏠리고 있다. 국회 정개특위가 최근 실시한 국민여론조사에서 조사대상자의 72.4%는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회 정개특위는 지난 2월 5~6일 워크숍에서 비례성·지역대표성 강화 취지로 △소선거구제와 병립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 △전면적 비례대표제 선거제도 등 4건의 대안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정개특위의 4건의 대안을 보면 큰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소선거구제와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문제가 가장 많은 지난 21대 총선 이전의 예전 선거제도이다. 권성동,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들이 현재 발의한 법안이기도 하다. 소선거구제와 준연동형비례대표제는 21대 총선 선거제도이지만 위성정당으로 무력화된 제도이다. 위성정당 문제도 방지대책이 필요하지만 준연동형이라는 한계를 넘어서는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세 번째 안인 도농복합중대선거구제는 도시는 중대선거구제, 농촌은 소선거구제로 선거를 치르는 방식이다. 중대선거구제의 많은 단점은 차치하더라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와의 조합을 통해 과연 정당득표율과 의석수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네 번째, 전면적 비례대표제는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대권역별 비례대표제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현재 덴마크, 스웨덴 등이 하고 있는 제도이다. 정당득표율을 기준으로 대권역별로 의석 배분을 하는 방법이다. 적어도 정치개혁이라는 말을 붙이려면 첫 번째 안과 두 번째 안은 제외되어야 한다. 세 번째 안은 각 당 중진들의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안이라고 한다. 네 번째 안이 제대로 개혁적인 안이라고 생각한다. 현행 지역구 선출제도가 과연 정치에 도움이 될까? 지역대표성은 광역 시도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많은 정치의 폐단이 현행 지역구 제도에서 생기고 있지 않은가? 할 수만 있다면 시도를 중심으로 한 대권역별 연동형비례대표제 방식으로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것이 매우 큰 전환을 할 수 있는 개혁안일 것이다.
언제까지 부패하고 무능한 국회를 지켜볼 것인가? 시민들이 선거제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바뀔 수 있다. 더 깊이 살펴보고 생생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민주주의의 새로운 이정표를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야 할 때이다. 선거제도 개혁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불평등, 기후위기, 남북관계 등 국민에게 닥친 큰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