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이다.
밝은 희망을 말하고 싶다. 우리는 희망을 말할만한 역사를 만들어 왔다.
대한민국은 2차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 가운데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추고 글로벌한 민주국가로 되어 G7에 근접한 유일한 나라다.
그것도 동족상쟁의 참혹한 전쟁을 겪은 세계 최빈국(最貧國)으로부터 반세기만에 이런 밑천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중의 위기를 만나고 있다.
하나는 자본주의 산업문명이 만들어낸 인류 공통의 위기이고, 하나는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부딪치고 있는 나라의 위기이다.
이 이중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명을 선도하는 21세기형 선진사회로 우뚝 서는 것이 우리 공동체의 꿈이며 희망이다.
이 꿈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여러 방면의 노력들이 융합되어야 한다.
 
 ‘정의(正義)를 너나없이 줄기차게 외치는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살벌한가?’하는 질문에 응답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문명전환이라는 인류적 과제에 힘을 모을 수 없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공동체에 오래 동안 큰 영향을 끼쳐온 공자 사상을 새롭게 조명하는 일은 단지 고전을 공부하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정의(正義)의 실현에 대해서 공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하고 있다.
“군자는 세상 모든 일을 대함에 있어서 ‘이것이 틀림없다’ 또는 ‘이것은 절대 아니다’고 단정하지 않고, 오직 무엇이 옳은지를 끝까지 찾아서 그것을 실천하려고 한다”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단정하지 않음’과 ‘정의 추구’의 결합이다.
주야장천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살벌한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둘이 결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자기편)가 정의라는 독선과 아집들이 서로 만나 싸우는 곳에서는 막상 정의는 실종되고 살벌함만 남는 것이다.
흔히 보는 정의파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이 곧 정의라는 확고한 신념이 정의실현의 동력이라고 생각하지만, 공자는 그런 신념을 버리는 것이 끝까지 정의를 찾아서 실현할 수 있는 출발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다음의 문장이다.
 
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 (오유지호재 무지야 유비부문어아 공공여야 아고기양단이갈언)
 
 
이를 내 나름으로 의역해 본다.
 
“내가 아는 것이 있을까? 나(인간)는 실재(사실 그 자체)를 알 수 없다(알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오직 자신의 감각과 판단이라는 필터를 거쳐 인식할 뿐이다). 그러나 누가 물어오더라도 모른다고 하지 않고(불가지론이나 회의론에 머물지 않고) 영위(零位)에 서서(무지의 자각을 바탕으로) 그 양 끝을 두들겨(철저 검토) 끝까지 (진실을) 밝혀 가보겠다.”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아니라 이 ‘무지의 자각’이 공자 사상의 출발점이라고 나에게는 보여온다.
‘인의예지’가 이 바탕에 서지 않으면 특정한 시대와 사회 속에서 형성된 화석화된 관념으로 남게 된다.
‘무지의 자각’은 대단히 과학적이다.
요즘은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기초 과학으로도 쉽게 이해가 가는 것이다.
어떤 사물을 본다. 예를 들어 꽃을 본다.
우리가 보는 것은 꽃 그 자체인가?
자기가 본 것이 꽃 그 자체라고 하는 것은 착각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각자의 눈을 통해 자기 망막에 맺힌 상(像)인 것이다.
망막에 맺힌 상(像)이 실물에 아무리 가까워도, 그것은 실물 그 자체와는 별개의 상(像)일 뿐이다.
자신의 감각이나 판단이 사실과 틀림없다는 것은 착각인 것이다.
이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무지의 자각’이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이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라야 가능했지만, 지금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그럼에도 실제로 삶을 영위하거나 특히 어떤 가치를 실현하려는 사회적 실천을 하는 과정에서는 자기의 감각이나 판단이 틀림없다는 착각이 오랜 세월 굳어진 관성으로 여전히 지배적이다.
 
성현들로 알려진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런 깨달음에서 출발하고 있다.
요즘 나훈아의 ‘테스 형’으로 주목 받은 소크라테스도 이 ‘무지의 자각’을 진리 탐구의 출발로 삼았고, 일찍이 보조 지눌 선사도 '단지불회 시즉견성 但知不會 是卽見性' (다만 모르는 줄 알면 곧바로 견성이다)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공자의 제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나 집단이 오히려 불의한 신분제 사회의 기득권층으로 되어서 자기들끼리 정통과 이단논쟁으로 사활을 건 권력투쟁을 하면서 사회를 정체시키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일들을 자행해 온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자기의 감각기관이라는 필터를 통해 인식하고, 그에 대한 판단 또한 자신의 뇌에 입력된 정보(유전적 요소도 있는데, 불교에서는 이를 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를 통해서 한다는 것은 이제 평범한 과학으로도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의 정의나 공공선을 향한 인식과 실천 또는 투쟁의 바탕으로 되어야 하는데, 아직 오래된 강고한 아집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 우리가 만나고 있는 답답한 현실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이미 과학을 통해 큰 길이 열렸다. 나는 이런 보편적인 자각 운동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21세기의 르네상스, 즉  축(軸)의 시대에 꽃 핀 선각자들의 지혜가 보편화 현실화하는 위대한 르네상스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산업화 민주화를 통해 장만한 밑천을 잘 살려가면서, 우리가 만나고 있는 이중의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문명을 선도하는 21세기형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무지의 자각에 바탕을 둔 새로운 소통과 대화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단정하거나 고정하지 않으면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태도로 정의를 실현해가는 것이 그 진정한 동력으로 될 것이다.
익산 시민들이 이런 기풍을 만들어 갈 수 있다면, 아마도 가장 살고 싶어지는 도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