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곡

(인문운동가)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것은 정치가 권력 쟁취와 그 유지를 위한 장(場)으로부터 조화와 타협의 기술 더 나아가 국가 권력의 힘을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증진시키는 기술로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조건에서도 2500여 년 전의 현자(賢者)는 정치의 본질을 ‘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논어 안연 편 22장의 문장이다.
<번지가 인(仁)을 묻자, 공자 말하기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지(知)에 대해 묻자, “사람을 아는 것이다.” 번지가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자, “곧은 사람을 천거하여 굽은 사람 위에 두면, 굽은 사람을 곧게 할 수 있다”

번지가 물러 나와 자하에게 물었다. “아까 내가 선생님을 만나 지(知)에 대해 묻자 ‘곧은 사람을 천거하여 굽은 사람 위에 두면 굽은 사람을 곧게 할 수 있다’ 라고 하셨는데, 무슨 뜻이오?”

자하 말하기를, “원대한 말씀이요. 순(舜)이 천하를 다스릴 때, 여러 사람 중에서 고요(皐陶)를 등용하자 불인(不仁)한 자들이 멀어졌고, 탕(湯)이 천하를 다스림에도 여러 사람 중에서 이윤(伊尹)을 등용하자 불인한 자들이 멀리 사라졌소.”>

인(仁)을 묻자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愛人)”라고 대답한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성현의 공통된 말씀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공자는 ‘정치’라는 현실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공자의 정치관을 주로 성군(聖君)과 현신(賢臣)의 관계로 이야기하다 보면 공자의 보다 깊은 이상을 지나칠 수가 있다. 군신(君臣) 관계는 당시의 군주 국가 체제에서 개혁을 가능케 하는 가장 강력한 현실적 수단일 뿐, 공자가 그리는 정치의 이상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묻기를, “선생께서는 왜 정치를 하지 않으십니까?”
공자 말하기를, “서경에 ‘효도하라, 오직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게 하라. 그러면 네가 하는 일에 늘 정치가 있느니라.’고 일렀거늘, 바로 그것이 정치하는 것인데 일부러 정치를 한다고 나설 이유가 무엇이오?”>(위정 편 21장)

공자는 요즘 말로 하면 다원주의적 정치관을 가졌고, 더 나아가면 국가 정치의 무화(無化)까지도 바라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점에서 논어 편찬자들이 인(仁)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이고, 애인(愛人)은 ‘사람을 아는 것’(知人)에서 출발한다는 말을 지나치게 좁은 의미의 정치 즉 국가의 정치로 좁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넓게 보면 모든 인간의 사회적 행위가 정치인 것이다.

이때 ‘사랑’은 무엇인가? 부모가 자녀를 알고, 자녀가 부모를 아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부모에게 자녀를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주저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자녀에 대해서 얼마나 아느냐고 물으면, 아마 적지 않은 부모들이 당황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자녀를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나 생각을 자녀에게 투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다.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정치 행위는 가정에서 국가의 통치행위에 이르기까지 이치는 같다고 생각한다. 이해(利害)관계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에서, 자기중심의 사고를 넘어서 상대를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에 따라 ‘갈등 증폭’의 길과 ‘상생 조화’의 길이 갈리게 될 것이다.
공자는 국가의 무화(無化)를 정치의 궁극적 이상으로 꿈꾼다 하더라도 그것은 ‘무정부주의’ 같은 비현실적 주장보다는 ‘국가 정치의 건강한 진화’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그 시대적 조건 속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즉 바른 국가정치의 요체(要諦)는 ‘바른 인사(人事)’에 있다는 것이다. 근대 민주주의의 선두주자로 알려진 영국이 1689년 권리 장전을 통해 확립한 ‘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입헌군주제의 정치원리를 공자는 당시에 이미 군주제 국가 정치의 이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보는 서구 학자들도 있다. (H.G. 크릴 ‘孔子, 인간과 신화’)
다음은 내가 201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누가 대통령으로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시 모 신문 칼럼에 제안하였던 내용의 일부다.

‘저는 지금의 정치 상황과 관계없이 몇 해 전부터 일관되게 연합정치를 제안해 왔습니다.  그것은 다음 세 가지 과제를 동시적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경제력 즉 물적 토대를 튼튼히 하는 것입니다.
둘째, 양극화·이중화의 해소와 복지의 확대입니다.
셋째, 지구의 생태적 위기에 대처하고, 나아가 문명의 전환을 담아내야 합니다.
이 세 과제는 지금까지는 서로 대립 상충되는 점이 많았지만, 이제 이들을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해결하지 않으면 길이 안 보이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정당들이 낡은 관념과 편 가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보수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진보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자기 정체성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당보다 사람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세 가지 과제를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이 시점에서의 국가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최적 최량의 인사들로 정부와 참모진을 구성하는 것이 대통령의 최대 과제입니다.
대통령의 성공은 곧 나라의 성공입니다. 전쟁의 먹구름을 씻어내고 분열의 함정에서 벗어나,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 정착과 연합정치를 통한 개혁은 반드시 성공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다음 대선과 지방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 19나 기후 위기 등 인류적 과제와 새로 변화된 국내 정치의 과제들이 더욱 절실하게 정치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앞에 소개한 문장 가운데 ‘선어중거고요(選於衆 擧皐陶)’라는 말에서 선거(選擧)가 보인다.
좋은 정치는 좋은 선거에서 나온다.
옛날에는 성군(聖君)의 가장 큰 특성이 이 인사(人事) 능력이었다. 지금은 그 선거를 국민이 한다. 성숙한 국민(시민)이라야 선거를 통해서 좋은 정치를 만든다.

대선을 주로 이야기했지만, 지방분권과 주민자치의 발전이야말로 미래 정치 진화의 핵심 과제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지방 선거야말로 시민의 성숙과 정치 전환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