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시절 고락을 함께했던 절친이 있었다. 늦게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님이 되었다. 얼마 전 그 친구의 아버님상 소식을 들었다. 조문차 경기도 장례식장에 밤늦게 도착했고,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 치매를 앓으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친구 부부가 3년간 모셨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친구의 부인은 뼈가 부러지는 등 두 번이나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고 한다.

당위나 선의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단다. 치매 아버지를 모시고 석 달이 지나서 욱 욱 치밀어오르는 나쁜 생각에 스스로 악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존재의 성숙'을 거치며 아버지를 온전히 모실 수 있었고 '신과 화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눈앞에 닥치기 전에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가늠이 잘 안 될 것이다. 수많은 치매 환자들은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독실한 신앙인인 친구 부부의 얘기를 들으며 존엄한 노년을 위해 사회적 대책이 절박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익산에서 아는 분들과 가끔 말씀을 나누다가 한 번씩 여쭈어본다. “익산에서 백 살 넘으신 어르신들이 몇 분이나 계실까요?” “몇 분이나 계시겠어요?” 대부분의 시민들은 주변에서 백 살 넘으신 분들을 뵙지 못했을 것이니 당연한 반문일 수도 있다. 나도 익산에 살면서 한 분도 뵙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두 자리 숫자 정도를 찍어서 얘기했다.

지난 2018년 통계를 기준으로 백살 넘으신 어른들은 100분이라고 말씀드리면 대부분은 깜짝 놀란다. 내가 한 번 더 묻는다. “그러면 익산에서 110살 넘으신 분들은 몇 분이나 되실까요?” 대부분의 지인들은 열 분 이하로 응답한다. 2018년 통계를 기준으로 32분이라고 얘기해 드리면 또 깜짝 놀란다.

익산 100세 이상 어르신들은 작년 말에 106분(여성 82분)으로 더 많아지셨다.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오래 살고 있고 오래 살 것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다만 통계로는 확인되는 그분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계신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과연 존엄한 노년을 보내고 계실까? 내 주변을 보자면 80대 중반을 넘기신 장모님께서는 치매를 앓고 계시며 처남이 오래 모셨지만, 지금은 요양병원에 계신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뵙기도 어렵다. 막내 작은어머니는 60대 후반인데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신다. 막내 작은아버지가 하시던 일도 그만두고 작은어머니를 돌보고 계신지가 몇 년째다.

얼마 전 뵙고 속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막내 작은아버지는 생활력이 무척 강한 분이고 친구도 많은 낙천적인 분이다. 직업도 친구 관계도 모두 포기해야 했다. “정말 힘들다.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도 없다. 하지만 내가 힘이 닿는 데까지는 함께 있을 것이고, 요양병원에 보낼 수는 없다”고 하셨다. 작은 아버지는 간호의 대가로 우울증을 앓고 계셨다.

우리에게 요양병원은 어떤 곳일까? 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흔쾌한 선택이 아닌 것이 현실일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2.36세이고,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64.9세이다. 한국인은 장수하지만, 평균 17년 정도는 아프다가 세상을 떠난다는 얘기이다.

유럽의 경우에는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가 한국인의 절반 정도이다. 한국인들의 치열한 삶의 반증이기도 할 것이고 의료체계를 비롯한 건강체계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통계이기도 하다. 통계로 보거나 주변의 체험으로 보거나 존엄한 노년을 준비하는 것은 이제 매우 중요한 사회적 숙제이다.

노후의 존엄을 사회적으로 보장하는 일은 사회구성원 모두의 존엄을 보장하는 일이기도 하다. 노후의 존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사회구성원 모두는 미래의 불안 앞에 노출될 것이고 현재도 여유 없이 불안한 삶을 강요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존엄한 노년을 위해 ‘존엄케어’의 대비책이 필요하다. ‘존엄케어’라는 가치에 공감하고, 그런 사례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가족의 문제이고 나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만큼 편안한 곳이 있을까? 존엄한 노년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후에 살고 있는 집에서 최대한 오래 자력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의료와 복지 서비스를 포함해서 이런 통합서비스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커뮤니티케어’이고 현재는 국가시범사업으로 여러 곳에서 실시되고 있다.

중증의 치매나 질병 앞에서는 전문병원들이 꼭 필요하다. 시설이나 요양병원의 가치목표도 ‘존엄케어’에 맞춰지도록 하는 사회적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오늘 이 시점에 이런 시설들에서 환자의 존엄, 직원들의 이익, 병원의 이익 중에서 어떤 가치가 가장 우선할까?

최근 이슈가 된 치매환자에 관한 학대사례가 과연 보호사 개인의 일탈 문제로 평가되어야 할까? 최근 국내 한 요양병원의 ‘존엄케어’를 목표로 하는 ‘4무(無) 2탈(脫) 운동’ 사례를 가슴 뭉클하게 보았다.

‘4무’는 냄새, 욕창, 낙상, 신체구속 제로이며, 2탈은 탈기저귀, 탈침대(탈와상)이다. 냄새를 없애기 위해 주 2회 이상 목욕과 필요시에 수시 목욕을 시행한다. 치위생사의 구강 케어도 병행한다. 욕창방지를 위해 2시간마다 전체 방송하고 환자들의 체위를 변경하도록 한다. 낙상 방지를 위해 낮은 침대와 온돌 사용하고 낙상 방지 훈련을 한다. 와상 극복 위해 침대 벗어나 식사하도록 유도하고 걷기 재활 치료 강화 등 맞춤형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기저귀가 필요 없도록 배뇨 패턴 파악 후 사전에 화장실 이용 유도하고 요실금 예방 골반 근육 강화 운동을 시행한다. 한가지 한가지의 노력들이 환자의 존엄을 보장하기 위한 눈물겨운 과정들이었다. 대기 환자들이 줄 서 있다고 한다.

일본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요양병원에 대한 건강보험의 수가책정 자체가 제도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수가제도하에서도 ‘존엄케어’라는 가치목표를 함께 세우고 환자의 존엄을 최우선 가치로 실현하는  ‘재활이 가능한 요양병원’의 사례가 국내에 있음은 진정 감사한 일이다.

익산 지역사회가 눈여겨 벤치마킹했으면 좋겠다. 존엄한 노년을 위해 ‘존엄케어’와 ‘커뮤니티케어’의 좋은 실천 사례를 익산지역사회에서부터 민관이 함께 만들어내기를 소망하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