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홍

협동사회연구소 대표

장점마을의 교훈은 무엇인가? 지자체와 정부가 주민의 입장과 눈높이에서 주민들을 대변하고 일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주민들이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주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은 정부와 지자체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장점마을 사례는 발병원인을 한가지로 특정할 수 없는 집단암발병과 같은 비특이성 질환에 대해 정부가 역학적 인과관계를 인정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장점마을 인정 이후 전국에서 많은 마을이 장점마을처럼 환경피해로 인해 고통받고 있음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고통과 죽음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마을들에 처음으로 다른 선택지가 열린 것이다. 장점마을의 승리는 천우신조라고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장점마을 대책위원회와 주민들의 끈질긴 노력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른 마을들과 비교한다면 함께 팔 걷어부치고 뛰었던 지역사회 각 분야 전문가들의 역할이 결정적인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어느 누구 하나 없어서는 안되는 환상의 조합이었다. 지자체와 정부의 전문성과 힘을 넘어선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역에서도 함께 연대하고 협동하면 장점마을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도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진폐증처럼 분명한 원인에 의해 질병이 걸리는 특이성 질환의 경우에도 인정받기가 쉽지 않은데, 집단 암발병 마을에서 수많은 원인들을 조사해서 역학적 인과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주민들의 상식과 현실로는 너무나 명약관화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관쪽에 가까운 전문가들이 동원되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이 가려지는 일들이 많은 실정이다. 지자체나 정부의 책임이 문제가 될 때는 그만큼 더 어려운 일이 된다.

장점마을의 경우 2018년 1년 동안 진행된 환경부의 역학조사가 실시되기 이전에 익산시 재정으로 장점마을에 대한 환경기초조사를 미리 실시했었던 결과가 대단히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주민추천 전문가들이 참여했던 익산시 민관협의회의 결정에 근거해서 시행되었다.

하지만 정부 역학조사의 설계에서부터 조사 과정, 조사 이후 최종 보고서가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곧 선보일 장점마을 백서에 그런 내용들이 담길 것이다. 환경부 역학조사 전담 전문기관이 없다 보니 외부용역에 의해서 진행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제일 큰 문제였다. 외부용역업체는 환경부와의 관계에서 을일 수밖에 없는데 환경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결과를 낸다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2018년 1월부터 역학조사는 시작되었다. 그해 7월 역학조사 용역기관의 중간발표를 듣고서는 역학조사 자체를 계속 진행해야 하는지 근본적 회의에 봉착했었다. 잘못하면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줄 상황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역학조사의 설계 자체가 매우 엉성했다. 환경조사와 주민건강조사를 통해서 환경오염과 주민건강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는 조사인데 오염원으로 지목된 금강농산 사업장 내부조사가 중간결과 발표 때까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업장의 비협조로 할 수 없었다는 옹색한 변명이었다. 주민건강조사는 이해할 수 없는 주관적인 설문지 등 더 가관이었다. 사업 허가기관인 익산시가 관계 법령에 의해서 원인제공 사업장 내부조사를 위해 경찰 협조를 받아 공무원 특사경(특별사법경찰)을 투입할 권한도 있었다.

소극적인 익산시의 태도와 더불어 국가기관인 환경부조차 역학조사 기간에 해당 사업장 내부를 조사하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업장 내부를 조사할 것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이용해서 오염원의 발생 이전과 이후의 주민 건강상태를 비교할 것을 강력히 주문해서 역학조사의 후반기에 사업장 조사가 이루어졌고, 주민 건강조사도 보완되었다.

2018년 환경부의 역학조사 기간이 모두 종료되고 최종 보고회에서 또 갈등이 시작되었다. 암발병 환경오염인자가 장기간 마을을 오염시키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고, 주민들의 건강도 비오염지역 대조군과 비교해서 확연히 문제가 되었다. 다른 결정적 오염원은 없었으므로 금강농산에서 배출된 환경오염인자로 인해서 주민들의 집단암발병이 일어났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환경부는 영향을 주었다는 표현으로 역학조사의 최종 결론을 내고 싶어했다. 인과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과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것 사이는 책임소재와 이후 대책에서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큰 것이다. 국회를 지렛대로 삼아 정부에 강력한 문제제기를 지속했고, 한국역학회의 전문적인 자문까지를 받아서 정부가 최종적으로 환경오염과 주민건강피해간에 역학적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지난 과정을 이렇게 복기해보는 것은 장점마을 문제가 장점마을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집단암발병 등 환경피해마을들에 대한 대책이 제대로 세워져야 하는 시작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장점마을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사안별로 용역을 주는 방식의 역학조사는 일관성도 없을 뿐 아니라 결과의 공정성도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정부가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충분한 재정과 인력을 투입해서 환경부 산하 전문적인 역학조사 전담기관을 설립해야 한다. 지자체 차원에서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최근 환경부 주도로 환경보건법 개정을 통해 올해 7월부터 환경피해 주민건강영향조사권한을 환경부에서 각 광역지자체에 넘겼다. 권한을 넘겼다고 하지만 실상은 책임 떠넘기기이다.

환경부조차 역학조사를 수행할 전문성이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광역지자체에 이를 넘기면 전문성 부족과 더불어 책임회피로 인한 주민피해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공개사과하고 책임있는 대책을 세우겠다고 약속한 정부 아닌가? 환경피해 주민건강영향조사는 반드시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정부산하 전문기관을 설립해서 국민들의 환경피해를 적극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충분한 전문성과 경험을 쌓아가면서 인력과 재정, 경험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지자체와 역할분담을 책임있게 해가야 하는 것이다. 추가적으로 환경오염 유해물질에 대한 전면적인 기준 재정립에 나서야 한다. 더불어 제대로 된 환경피해구제법에 의해서 빠른 피해배상이 이뤄지도록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장점마을 주민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