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범죄 유형 중에 '폰지 사기'가 있다. 고수익을 단기간에 매우 안정적으로 보장해준다는 허위광고로 투자자들을 끌어들인 뒤 투자자들의 투자금으로 일정기간 모집자와 투자자에게 수익을 배당하는 사기 수법이다. 하지만 실제 아무런 이윤 창출이 없기 때문에 투자금이 계속 유입되어야 사기행각은 들통 나지 않는다.

이 같은 아랫돌 빼어 윗돌 괴는 식의 메커니즘은 폰지 사기 일당에게 신규투자자를 끌어들이는 일에 사활을 걸도록 강요한다. 이로 인해 투자규모는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고, 기존 투자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배당액이 결국 모자랄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사기 수법이 발각되는 시점에는 피해규모가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이 4.13총선 각 지역구 대표주자들을 공천하는 과정에서 예의 돌려막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당내 경선에서 패한 후보를 부활시켜서 주자가 비어있는 지역에 전략공천 하는 방식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경선에서 탈락한 최명길·한병도 후보를 서울 송파을과 전북 익산을에 전략공천했다. 특히 한 후보의 경우 전북 익산갑 경선에서 패배했지만 바로 옆 지역구에 전략공천됐다.

새누리당은 텃밭을 중심으로 공공연하게 후보 돌려막기를 해왔다. 대구 중·남구에서 공천을 받은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애초 달성군 예비후보로 뛰다가 별다른 명분 없이 지역구를 옮겨 공천을 받았다. 경북 포항남·울릉에서 뛰던 김정재 후보도 갑자기 포항북으로 지역구를 옮겨 여성 우선 추천 케이스로 공천을 받았다.

새누리당은 또, 서울 서초갑 경선에서 패한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더불어민주당으로 옮겨간 진영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용산 지역에 공천하기로 결정했으나, 조 전 수석이 이를 고사해 돌려막기가 무산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당이 스스로 신이 된 것이다. '유한성'이라는 인간사와 자연계의 법칙을 깨는 무소불위와 전지전능을 과시했다. 국민들은 굶주리면 땅을 갈아 씨 뿌리고 가꾸고 거둬들이는 대신 정당이 내려주는 특별한 식량 '만나'나 받아먹으면 될 법도 하다.

불과 한 달여 전까지만 해도 여야는 공천하는 인물의 경쟁력뿐만 아니라, 공천방식 또한 경쟁력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은 1년 전에 혁신안을 마련했고, 친노 비노의 갈등 속에서 당내 공천의 공정성에 대한 회의론이 일자 문재인 대표까지 물러나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공천 작업에 돌입했었다.

새누리당도 1년 전에 공천권을 유권자인 국민에게 주기 위한 국민공천제(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하는 등 선거 및 공천 혁신안을 마련했고,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에게 일체의 공천권을 넘기면서 지도부의 전횡 가능성을 원천 차단했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짐짓 친노와 지지기반인 호남 현역의원들 일부를 물갈이하고, 새누리당은 영남 현역의원들을 대폭 물갈이하는 결단력을 보였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친노', 새누리당은 '친박' 세력이 준동하면서 그 모든 것이 위선이었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안도 없이 현역의원들을 컷오프시켰고, 새누리당에서는 살생부설이 파다했다. 그런 와류 속에서 나온 것이 죽은 후보의 목을 다시 붙여 특정 지역에 전략공천하는 돌려막기다. 양당은 경선 이벤트를 망쳤고, 의미 자체를 퇴색시켰다.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구태가 승리 전략인가

양 당에 의해 정당민주주의는 총재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던 시대로 역주행 했다. 돌려막기의 본질은 계파주의다. 대저, 컷오프는 비주류를 축출하는 구실이고, 돌려막기는 주류는 죽지 않는다는 신화다. 주류의 지속가능성이 구태 정당의 이념인 것이다.

바로 폐쇄적이며 배척주의를 근간으로 삼는 주류중심의 낡은 사고가 문제다. 그것은 정당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며 확장성을 감소시킨다. 정치신인들을 유인하지만, 주류들의 존속에 필요한 재물일 뿐이다. 이 같은 정당은 한정된 재원으로 계속 돌려막기를 할 수밖에 없고, 허위광고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지 않으면 지속가능성을 잃게 된다.

혁신안의 골자가 정당의 그런 구조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체질개선이었어야 하고, 주류의 수뇌부들이 그 혁신안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았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일말의 의지를 보이던 김종인은 총선이 불과 20여일 남은 지점에서 돌변하여, 자신을 비례대표 2번으로 셀프공천하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던 인물들을 대거 비례대표 앞 순위에 넣는 등 자기세력 확장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 돌려막기를 주도해 대의를 위해 대표직을 떠난 문재인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고, 더불어민주당 전체를 위기에 빠뜨렸다. 새누리당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역시 비주류 죽이기에 총대를 맺다. 비주류의 수장 가운데 한 축인 유승민을 공천하지 않고 버티며 등록일을 넘기는 고사작전을 감행한 점은 매우 인상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안철수를 필두로 한 분당을 겪었고, 당에 의해 배척됐으나 무소속으로 출마할 현역의원들이 상당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도 여러 행태에서 말기적 증상을 보이고 있다. 거덜 나고 국민들에게 철퇴를 맞을 날이 머지않은 것이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상향식 공천제는 이 나라가 참다운 민주주의를 지향하며 오랜 세월 진통을 겪은 끝에 얻은 원칙이다. 이 원칙을 장애 없이 지켜가기 위해 전략공천을 아예 폐지하겠다던 양당이다. 그러나 양당은 스스로 반민주적인 전횡을 주저하지 않으면서 국민 위에 군림하는, 이제는 낯선 권위주의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선거를 20여일 앞둔 상황에서 돌려막기한 후보들은 경쟁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후보 개인의 조직이 없고, 바닥 지지층이 없다. 뿐만 아니라 우롱당한 지역구 시민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해당 지역구의 역풍은 불 보듯 뻔하다.

정당 조직 하나에 전부를 건 망동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양 당은 주류의 밑천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다고 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