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인구절벽이라니, 아직 실감나지 않는 말이다. 인구가 감소하면 내수가 줄어 경제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꼴이 된다는 비유에서 비롯한 것인데, 지금처럼 극한에 도달한 취업난의 와중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어서 경제가 곤두박질친다는 걸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도 모자라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진격의 피임정책으로 순리를 거스른 대가다. 그것은 '종 보존'이라는 인류의 사명조차 망각케 할 정도로 긴 시간 동안 이 나라 사람들을 지배했다.

생명자원의 고갈과 인구의 포화를 막기 위해 선택한 인구제한 정책은 그야말로 말살정책이 된 것이다. 갈수록 줄어드는 일자리에 비례해 적정한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증가하고, 그들은 연예·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절멸의 세대가 됐다.

시간은 그와 같은 세대들에게 더 많은 것을 포기하도록 강요했고, 지금은 포기할 것을 무한대로 맞닥뜨리는 엔포세대가 100만명에 이른다. 인구가 줄었는데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드는 이유는 뭔가.

누구든지 "경기 위축에 따른 기업들의 투자 없는 생산이나,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하는 산업구조 재편이 몰고 온 환란"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다양해진 소비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자리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더 대놓고 말하자면, 우리는 일자리를 스스로 줄여왔다.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3D산업(힘들고, 더럽고, 위험한)이나 유사 직종에서 일하는 것을 기피하는 현상이 한 세대 가까이 만연했다. 우리 익산지역에서는 섬유산업의 재봉이나 편직, 보석산업의 세공이나 제작이 그 대표적인 기피 직종이었다.

산업구조 전반에서 보면 금속제품 주조를 비롯한 가구·가죽·건축·전기설비·조선 등의 대부분은 생산현장 및 생산직에 집중되어있었다. 관련 업계는 심각한 인력난에 빠졌고, 인건비가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높아진 생산비용은 상품 가격을 높였고, 이 나라의 3D업종 상품들은 국제시장의 가격경쟁력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들 업종은 값싼 노동력이 아니면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익산의 보석업계가 앞다투어 중국으로 대이동을 하고, 3D업계가 동남아시아 노동력을 수입해서 국내 노동력을 대체한 이유다.

극한 직업은 이밖에도 많다. 하지만 국제시장에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는 국내 상품들도 많다. 그러나 이들 업계도 인력난 때문에 도산하거나 기술을 외국에 팔아넘기는 업체들 때문에 초토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악순환에 기반한 분석 결과다. 자식을 둘 혹은 하나만 낳은 세대들은 자식을 과보호할 수밖에 없었고, 3D업종을 양산했으며, 생산현장보다는 서비스산업에 노동력을 집중시켰다.

이런 와중에 농촌 공동화에 비례한 도시의 팽창으로 부동산 졸부들이 급증했고, 정부의 비호와 전폭적인 지원 아래 성장한 굴지의 대기업들이 나라 경제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지난 한 세대는 그들 1~2세대간 부의 세습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여파로 자수성가형 경제인구가 우리 경제축에 새로 진입하는 사례가 현저하게 줄어들었으며,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듯 가족 내부에서 재화가 재분배되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인구가 급증하기도 했다. 사실, 지옥불반도(지옥불+한반도)를 피부로 느끼는 청년인구가 청년실업인구 모두에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통계를 내기는 어렵지만, 엔포세대가 실체화되는 무렵부터서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서 있는 경제지형을 알게 됐다. 후진국의 노동력이 거의 잠식한 힘들고 값싼 생산현장들 조차 개발도상국 기업들의 기술 도약에 경쟁력을 상실했다.

이른바 금지옥엽의 육아정책인 산아제한은 온실 밖에서 적응을 못하는 약골들의 공화국을 만들었다. 캥거루족을 양산했고 그리하여 어미 우렁처럼 자식에게 살을 다 뜯기고야 마는 비참한 노년들을 양산했다.

우리는 그러는 사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해야 하는 세대의 급증과 생산가능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시점에 봉착했다. 게다가 일자리 부족으로 고통받던 세대가 대책 없이 장년을 맞이하고 건강한 일손은 속절없이 사라진 인구절벽에 이 나라는 순식간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올해 3천7백만명이었던 국내 생산가능인구가 2060년에는 2천2백만명으로 꾸준히 줄어든다.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생산가능 인구의 비중도 올해 72.9%에서 2060년엔 40.7%로 떨어진다.

핵심노동인구 역시 같은 기간에 24.3%(1천69만명)까지 가파르게 감소한다. 반면 올해 639만명인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같은기간에 1천762만명으로 급증해 전체 인구의 40.1%를 차지하게 된다. 한국노동정보원에 따르면 2030년부터는 경제활동인구의 평균 나이가 49.2세로 높아진다. 제조업의 생산성 하락과 기술전수 중단 등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이는 한국을 이끌어온 조선과 철강, 자동차 등 제조업 기반 자체를 함몰시키는 지각변동의 전조라는 부정적인 전망에 무게를 더한다.

이와 같은 생산성 저하로 잠재성장률이 걷잡을 수 없게 하락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인구절벽에 도달한 지점에서부터는 일손이 없어 어떤 형태로든 정리되는 기업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생산가능 인구의 감소는 같은 비례로 소비인구 감소를 동반하기 때문에 제조업들의 자연도태가 줄 이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소비트렌드를 견인하는 이른바 꽃중년(40대)들의 자연 감소와 위에서 언급한 이러저러한 이유에다 노후를 걱정하는 그들의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사회 전체가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2011년과 2013년 사이 2년 동안 99만4천개의 자영업이 새로 생겼으나 84만5천개가 사라졌다. 소비부진에 따른 자영업 폐업률이 85%에 달하는 것이다.

한국의 인구절벽을 경고한 해리 덴트의 설파처럼, 대규모 인구집단(40대)의 씀씀이가 줄어들면 경제는 서서히 하강한다. 수요부족으로 물가가 떨어지고 생산이 감소하며 실업률은 상승하고 이는 다시 수요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통해 디플레이션 쇼크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더 많은 기회가 있는 길을 개설해 나가야

무엇보다 자식을 부양했던 베이비부머세대의 도태, 또는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일자리 다툼은 우리가 이제까지 만나지 못했던 지옥도를 연출할 것이다. 가정의 달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인구절벽'이다.

인구가 핵심 자원이라는 점을 소홀히 한 정책의 참상이다. 특히, 가정의 온실화는 야생성을 약화시키고 단절·고립·나태·회피 같은 부정적 현상을 낳았으며, 그것은 우울과 의지박약의 기제가 되어 자살률이 지구촌에서 최고인 나라가 되게 했다. 삶에 대한 호기심이나 기대가 현저히 줄어든 세대가 인구절벽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오히려 자식을 낳을 만큼 낳아서 풀어놓고 생계활동을 하던 시대에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저절로 습득했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으며, 형제간이나 가족 나아가서는 남을 위해 희생하는 가치를 깨달아가면서 불굴의 호연지기를 익혔다.

인구 문제를 인류의 생존 또는 우리 행복의 제1 조건으로 다뤄야 하는 이유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인구 늘리기에 진력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2001년부터 무려 15년 동안 한 명을 겨우 넘긴 출산율이다.

초저출산국의 오명을 벗어나는 일, 그것은 오늘을 사는 생산가능 인구들의 과제다. 무엇보다 과중한 자기 부담을 더는 길이다. 건강하고 긍정적이며 능동적인 경제구조 구축에 기여하고 진정한 삶의 가치를 2세에게 물려주는 길이다.

사랑과 행복이 계산될 수 있다고 믿는 물신주의의 허구를 깨는 일,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가정을 이루고 더 많은 가능성(인구)을 늘리는 길 위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