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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공인배
우리나라 작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노벨문학상, 프랑스 콩쿠르상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상을 대한민국 작가로서는 처음 수상했다는 점에 놀라고, 참신한 작품을 가려낸 심사위원들의 안목과 심사의 공정성에 감동한다. 이번 낭보는 특히 우리 문학이 유럽의 문학적 가시권에 바싹 다가서는 접근성을 확보한 점에서도 뜻이 깊다. 한강의 작품 '채식주의자'의 우뚝한 두드러짐은 작품성에 기반하거니와, 이 작품을 심사위원들의 시계(視界) 또는 지각 틀 안에 찬연하게 펼쳐 보인 번역력의 개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심사위원장 보이드 통킨은 "비범한 균형과 재치를 지닌 이 작품의 탁월함은 작가와 함께 데버러 스미스의 놀라운 번역에 의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문학 세계화에서 일대 진전을 이룬 이번 성과가 우리의 풍부한 어휘와 어법 또는 작가의 작풍을 유럽화한 치환력에 힘입었다는 것인데, 이는 우리의 독특한 세계관과 언어체계가 이미 오래 전부터 수준 높은 문학작품들을 쏟아냈으나 다만 나라 밖에서 제대로 읽혀지지 못했을 뿐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뜻밖에 맛보는 자부심의 열락이다. 수상 소식이 알려지고 난 후 서점에 나와 있던 '채식주의자'가 단숨에 매진된 것은 아마도 나와 같이 떨리는 손길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기 때문이리라. 책 읽는 사람들이 늘어나리라. 특정 작가들의 표절 행위로 충격과 침체에 빠진 우리 문학계가 단비에 푹 젖으리라. 우후죽순처럼 수많은 명작들이 눈부신 햇살을 마중하고, 출판계는 상업 위주의 출간 마케팅에서 벗어나 다양성의 시대에 걸맞은 역량 있는 작가 발굴과 양서 출간에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되리라. 흥분을 가라앉히고 눈을 뜨니, 우리의 비옥한 문학적 토양에서 좀 더 체계적으로 수준 높은 번역가들을 양성하고, 한국 작가와 세계 유수의 작가 또는 번역가들 간 교류의 틀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을 요구하는 방향성이 보인다. 그런데 '채식주의자'의 어떤 부분이 그토록 심사위원들의 시선을 끌었을까. 5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인 영국 인디펜던트지의 보이드 통킨 문학선임기자의 심사평에서 그 단서를 발견한다. "한강의 작품은 우아함과 강렬함이 동시에 묻어나며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괴한 조화가 이뤄졌다" 지속가능성은 균형, 아름다움은 필사적인 진화의 산물 '공포'는 무의식의 기저에 깔린 무력감과 무지의 자각 한강의 우아하고 강렬한 문체에서 남다른 서사 전달력이 돋보였고,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괴한 조화로 이루어진 스토리의 내용이 참신했다고 읽혀진다. 우리의 삶 속에서 아름다움이란, 공포란 무엇인지를 새삼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다. 우리에게 아름다움이란 대상이 감각적인 기쁨을 주며 마음을 끌어당기는 조화의 상태다. 그 대상은 사물이 될 수도 있고 예술작품이나 윤리적 가치에 기반한 인간의 행위를 망라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평가는 시간과 공간의 보편성을 따르지만 그 의미와 해석은 개인차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 보편성은 진화라는 긴 과거의 경험에 의해서 획득된다. 아름다운 것은 사랑받지만, 아름답지 않은 것은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다. 그런 맥락에서 아름다운 상태의 대상이나 아름다운 것을 인지하는 능력은 생존과 대 이음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산물이다. 그래서 우리의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은, 음식의 신선한 상태, 생존에 이로운 맛과 냄새, 살아있는 것의 건강한 상태, 안전한 사물 같은 원초적인 현상에 기인한다. 그 반대의 것들을 혐오하는 것은 치명적인 위험을 멀리하려는 본능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우리의 눈이 후각이나 촉각보다 먼 거리에서 사물을 식별하는 능력을 지닌 것은, 미처 모르고 먹거나 만졌을 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진화의 결과다.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안전 여부를 먼저 판단하는 인지체계인 것이다.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먹거나 접촉한 사람을 죽이지만, 보는 사람은 죽이지 못한다. 본다는 것은 물체에서 반사되는 광자들로 인식하는 간접 인지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맹독을 지녔으면서도 아름다운 존재들이 부비트랩처럼 도사리고 있는 것은 그런 진화의 부작용이라 할 것이다. 아름다움은 그래서 시각 안에 존재한다. 설령 냄새나 소리, 감촉으로 아름다움을 느꼈더라도 그것은 시각 정보와 결합한 뒤의 결과다. 그 정보는 무한(無限)의 마음, 세계의 전체와 일체를 이루는 그 정신 안에 담겨있다. 불멸하는 마음은 존재의 지속가능성을 균형에서 찾고 있다. 사람의 얼굴이나 몸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좌우 대칭이 평균값에 맞아야 한다고 확신하는 보편적 인식이 그것을 단적으로 방증한다. 공포는 깜짝 놀라는 것과 다르게 서서히 스며드는 감정이다. '할 수 없는 것'과 '알 수 없는 것'들이 공포의 근원인 탓이다. 무력감과 무지가 우리 무의식의 기저에 깔려있으며, 역설적이게도 그런 사실을 자각할 때 우리는 존재가 송두리째 떠는 것을 경험한다. 안다는 것 그것이 곧 공포의 단초인 것이다. 어떤 것과 관계를 지었을 때 요구되는 모든 것, 중력에 지배되기에 감수하고 순종해야 하는 모든 것, 어떤 일이 고통을 몰고 올 것이라는 예측, 관계 지었던 모든 것들과 결국 작별을 고해야 한다는 상실감 따위를 자각했을 때 공포는 고개를 든다. 정작, 고통을 쫓고 슬픔을 막기 위해 관계 짓고 심리적으로 축적한 수단들이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누구나 그런 축적을 시행착오처럼 행해 왔기에 그에 상응한 공포의 역습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에 욕망은 공포의 다른 이름이며, 공포를 막으려는 노력이 철두철미 할수록 공포를 마주하는 충격은 커진다. 공포를 야기하는 습성은 예민한 감수성에서 비롯하고, 공포의 크기는 거기에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공포란 언제나 관계에 민감한 쪽에 철퇴를 가하는 악마다. 더 역설적인 것은 공포란 사람답게 사는 사람의 영역에서만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남다른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이는 치열하게 자신을 지키기는 사람이며, 그 지점은 아름다움이다. 그곳에는 사적인 존재인 '나'가 사회적 존재인 우리가 되는 아름의 울림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5.18에 만난 맨부커상의 권위 '공정성' '채식주의자'는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인해 점점 육식을 멀리하고 스스로 나무가 되어 간다고 생각하는 영혜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폭력적인 모습과 욕망을 묘사한 작품이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세 연작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주인공과 가족 관계를 이루고 있는 세 인물들의 시선을 좇고 있다. 아버지가 자신의 입에 강제로 고기를 집어넣으려 하자 손목을 긋는 영혜를 지켜보는 남편, 영혜의 엉덩이에 아직도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말을 듣고 영혜의 몸을 욕망하게 된 비디오아티스트 형부, 정신병원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링거조차 거부하는 영혜를 찾아간 언니 인혜의 관점 등이 그것이다. 작가는 주인공 영혜를 통해 폭력과 욕망, 그리고 그에 의해 억압받는 내면을 다루었다. '채식주의자'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다. 공교롭게도 한강의 수상 소식은 5.18의 전야인 5월 17일 국내에 전해졌는데, 그는 이 작품의 동기를 '80년 5월 광주에서 학살된 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첩'이라고 술회해 묘한 우연에 또 한 번 놀란다. 그가 열 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보여줬다는데, 그날은 그가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 비밀스러운 계기가 됐고, '채식주의자'는 그 탐구의 시작이라고 한다. 한강은 아름다운 문체로 공포를 묘사했고, 그 성공을 맨부커상 심사위원들이 확인했다. '채식주의자'는 최종 후보 6명 명단에 올라 중국의 유명 작가 옌렌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터키의 오르한 파묵, 이탈리아의 엘레나 페란트, 앙골라의 호세 에두아르도 아구아루사 등 쟁쟁한 작가들과 경쟁했다. 심사위원들이 오직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작품성을 평가하지 않았다면, 부수적인 조건에 사로잡혀 편견으로 작품을 가려냈다면, 한강을 비롯한 한국 작가들의 가능성은 그들의 시야에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맨부커상의 권위는 여러모로 유럽의 강호인 영국에서 주관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공정성에서 나온다.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이자, 언론의 제1 덕목이라는 점에서, 소통신문의 창간 기념일 5.18에 '채식주의자'를 화두로 만난 것을 영광으로 여기며, 어떤 주장이 아닌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재해석만으로도 벅찼다는 것을 밝혀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