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지방자치는 왜 하는가. 여러 견해들을 부르는 질문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국토의 균형발전 욕구에 부응한 것이라는 데에는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없다. 이념적으론 주권자인 국민에게 더 나은 세상 만들기에 참여할 공간을 넓혀주고, 현실적으론 국민들의 세금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다.

지방자치는 결국 국토 전역의 사회적·인적 인프라가 골고루 발전하도록 구조화 한 체제다. 이처럼 지방자치는 중앙집권 체제의 형식적인 정책의 경직성을 거부하는 민심의 소산이다. 현장을 지향하는 능동적이며 역동적인 정치 시스템이다.

획일적인 도시개발에서 벗어나 각 지역 특성에 맞는, 또는 경쟁력을 갖추는 도시를 설계하고 운용할 권한을 각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로부터 이양 받아 갖게 된 것이다. 따라서 지나온 민선자치 21년은 '관치'에서 벗어난 '민치'의 시대였고, 민의를 반영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은 '관리'가 아닌 '경영'을 요구받는 지역의 대표였다.

우리가 직시해야 할 부분이 여기에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은 공무원이 승진해서 차지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주민이 선출한다. 지방자치의 대전제다. 왜 그런가. 체질적으로 보수적인 틀에 갇힌 공무원은 지방자치의 취지를 달성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통념 때문이다.

공무원은 무탈하게 주어진 일만 잘 처리하면 꼬박꼬박 봉급이 나오고 지속적으로 봉급이 오르거니와 때가 되면 승진도 하고 영예롭게 퇴직도 할 수 있다. 변화를 싫어하고 모험적 선택을 기피한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 성향이 대체로 강하다.

심지어 법이 정한 업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은 법 뒤에 숨어 현장을 외면한다. 법이 현실에 불부합한다는 민원인의 합당한 주장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그저 법대로 하는 것을 지상명령으로 삼는다. 그로 인해 민원인이 억울하게 피해를 입고 그 주변이 풍비박산이 나도 자기와는 무관한 일로 여긴다.

관료주의가 부정적 이념인 이유다. 중립성을 강조하며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오직 법대로 하는 곳에는 인간미가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국민에 봉사하는 공무원은 온데간데없고 기계화된 사무원들이 자기의 안위를 위한 철옹성 안에서 국민들의 혈세를 꿀꺽꿀꺽 삼킬 뿐이다.

그런 생활을 오래 한 공무원일수록 자주성이 미약해질 공산이 높다. 더구나 간부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공무원일수록 현장에서 멀게 마련이고, 철옹성 내부에서 군림하는 관성을 길러 교만해질 가능성이 높다.

안정을 희구하는 관료주의는 고인 물과 같다. 종국에는 썩어 생태계가 파괴되고 지속가능성을 상실한다.

'봉사'는 의지에서 비롯한다. 생각이 막힌 곳에는 더불어 사는 미덕도 없다. 공공선을 실현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공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지방자치가 실시된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밖 세상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개구리 중 하나가 우물 바깥세상을 보고 더 나은 세상을 말하더라도 앞서는 두려움에 발목을 잡힌다. 나가면 되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길을 나서지 못한다. 큰 바람에 노출되지 않으면서 비오고 해 뜨는 우물 안에 안주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이란 그 우물(장벽)을 깨부수는 사람이다. 공무원들이 주민들과 소통하며 함께 고민하도록 간극을 좁히는 사람이다. '공직'을 수동태에서 능동태로 환치시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공조직에 활기를 불어넣어 도시발전의 동력을 생산하고 그것을 공급하는 허브로 자리매김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고 지방자치에 걸맞은 리더의 덕목이 별 것이지는 않다. 원대한 꿈이 있는 사람, 더 나은 내일에 대한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 호연지기가 충만한 사람, 겸양과 배려의 미덕을 갖춘 사람, 화평을 지향하고 힘을 모을 줄 아는 사람, 자기를 던져 남을 이롭게 하는 사람, 성실하며 주민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면 된다.

그런데 공무원은 그런 깜냥을 갖추기가 어렵고 본래 가졌었더라도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퇴화되었을 정치적 자질들이다.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사람이 자신의 꿈이나 지역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대신 조직의 안정을 강조하면서, 전임 시장이 도시 인프라 조성에 투자한 것을 비판하고 그 위험부담만을 부각한다면 그 자질을 의심해 보아야 하는 이유다.

고위공직자 출신 후보라는 점도 자랑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지방자치의 취지조차 모른다는 것을 자인하는 사람이다. 사실은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는 적절하지 않은 경력인데, 직급이 낮은 상대 후보를 까는 소재로 쓴다면 교만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다.

당선이 되어서는 정치구성원들과의 형식적인 만남과 소통은 있으나 적극적이며 실질적인 통섭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모든 현장 행정을 전시행정 이상으로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그는 전형적인 공무원이다.

앞선 선거에서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이 주민들에게 먹혔으니까. 무탈하게 시간을 보내면, 주민들은 또 고위공직자 출신을 뽑아 줄 테니까. 둘러보아도 그런 점에서 자신을 이길 사람이 없으니까. 굳이 자기를 희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공무원이다.

이제 주민들이 그에게 질문할 때가 되었다. "당신은 공무원입니까 아니면 정치인입니까?" 자신이 주민들을 지배하는 소수 엘리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기존 중앙집권체제의 공무원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정치인으로서, 평범한 주민들이 지역 공동체의 사람살이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어떤 통로를 마련하는지, 그 활동 공간을 얼마나 넓히는지, 지역과 실생활을 변화시키는 피드백이 자치단체와 주민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소통과 협치의 현장 중심에서 어떻게 활약하고 있는지를 물어봐야 할 때가 되었다.

또 그 자신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정치인이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했는지, 관료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지방자치가 바라는 진보적 자질을 자신의 내부에서 깨우는데 사활을 걸고 있는지, 세상을 바꿀 방안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볼 때가 되었다.

스스로 공무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익산시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익산시장으로서 부적격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