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어른들은 10대들을 걱정한다.

사람 됨됨이를 형성하는 시기다. 잔뜩 긴장해 있으며 피로도가 높다. 생애주기 가운데 가장 예민하며 불안정한 상태가 10대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런 청소년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배려가 크게 부족한 이유다.

학벌지상주의와 물신주의가 만연한 나라의 학교는 과열된 경쟁사회다.

특히 고등학교는 최종적으로 서열이 결정되는 곳이다. 청소년들의 주된 생활공간은 인간성보다는 실력을 중시하는 곳이다. 선두그룹에 합류하고자 할 경우에는 오히려 인간성이 장애가 된다.

또래와 함께 어울려 노는 시간은 미래를 포기하는 시간으로 간주되는 탓이다.

폭넓고 깊이 있는 학우 관계가 형성되기 어렵다. 의지해야 할 때에 기댈 곳도 없다. 예민한 상태에서는 평온한 상태에서 보다 더 많은 감정의 지배를 받게 마련이다.

소위 선진국들의 결사체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청소년 행복지수가 가장 낮고 자살률이 높은 까닭이다.

잘못된 선택은 성적이 중상위권 이상인 경우에 더 두드러졌다. 소수 승자의 대열에 낄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만큼 성적을 끌어올리지 못할 때 하위권보다 더 큰 자괴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자기를 극한까지 몰아붙인 청소년일수록 성적비관은 더 깊었다.

내부의 에너지를 다 불태웠으나 목표는 여전히 까마득하다고 느낄 때 손끝 하나는 물론 생각 하나 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지쳐버리는 것이다.

심장이 터져도 안 되리라는 한계에 대한 인식의 끝에서 영원한 잠은 지극히 유혹적이지 않겠는가.

시시각각 신체와 감정이 변화를 일으키는 청소년들이다. 경쟁의 틀 내부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미미하다. 다만, 끝까지 경쟁하느냐 아니면 적당히 혹은 전부 포기하느냐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성적을 포기한다면 편해질 수 있다.

하지만 실패나 낙오에 대한 두려움 또는 그로 인한 또래집단 내부에서의 괴리감을 누가 쉽게 떨쳐낼 수 있겠는가. 그것은 돌발적이거나 거친 언행으로 표출된다.

이 나라 청소년들은 승자든 패자든 자기나 남의 히스테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학교의 딜레마는 거기에서 비롯한다. 모두가 가해자이며 동시에 피해자다. 학교폭력이 일어났을 때 교사들이 매뉴얼대로 하지 않고 적당히 쌍방을 화해시키고 미봉할 수 있는 빈틈이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나의 사랑하는 제자'라는 미덕 뒤에 교사들이 숨을 수 있는 것이다.

피곤한 일에는 스승의 미덕 뒤에 숨고

그런 스승의 큰 사랑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학교 안에 있는 학생들은 모두가 피해자'라는 스승의 측은지심이 오히려 빛나지 않겠는가. 그러나 보라. 그 교사들이 교내에서 무엇을 하는가. 수업일수를 엄수하며 기계적으로 가르친다.

경쟁대열에서 낙오한 학생도 자신의 사랑하는 제자인데, 그런 제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기존 수업방식을 과감하게 바꾸거나 개인적인 시간을 할애했다는 미담은 익산지역사회에서 지극히 드물다.

반면, 오후 4시 반이 되면 칼 퇴근하면서도 업무량이 너무 많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교사들의 목소리는 높다.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을 관장하는 때에 시간외 수당을 받으면서, 고급인력에게 지급하는 수당 치고는 지나치게 적다고 노골적으로 투덜거린다.

그들은 스스로를 왜 고급인력이라고 생각할까 그것이 늘 궁금하다. 교사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에는 지각을 비롯한 온갖 이유로 규율을 어긴데 따른 벌점 주기를 추상같이 한다.

벌점은 대학 진학에 악영향을 끼치는 징벌인데, 규율을 지키지 않는 학생도 규율을 지키는 학생과 다름없는 사랑하는 제자일 텐데, 왜 징벌에는 일말의 자비도 고려치 않는가. 통제를 위해서다.

억압받는 청소년이란 폭발물질과 같아서 단단한 용기에 가두고 안전장치를 하지 않고서는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사라면 누구든지 그것을 알고 있다. 징벌은 곧 교권확보의 수단이다. 한마디로 교권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맥락으로 보면 우리 사회 구성원들 가운데 교사 집단 보다 더 차가운 것이 있을까. 그런데 학교폭력이 벌어졌을 때 유난히 따뜻해지는 교사들의 태도는 무엇을 향도하는가.

용인이다. '그 정도의 폭력은 너희 또래에서 대수롭지 않은 일'이니 받아들이라는 교시다.

물론, 가해자는 부적절한 언행을 삼가고, 피해자는 사과를 받고 이해하라는 전제가 깔린 조처다.

하지만 교사들은 정말 그것이 질 나쁜 폭력을 양산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그런 토양 위에서 교내 폭력은 '고자질한 자에 대한 응징'이라는 정당성을 확보한다. 또한 또래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힘에 의존하는 주체적이지 못한 찌질이라는 낙인을 허용한다.

필경 모든 책임을 피해자가 져야 하는 지경에 떨어지는 것이다. 왕따가 되어서.

결국 교사의 그런 이율배반적 태도는 가해행위다. 뿐만 아니라, 교권이 규율에 근거하지 않고 행사되는 것이야 말로 폭력이다. 더구나 학교의 책임자가 피해 학생을 불러 "너에게도 문제가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묻는다면, 그 학교는 폭력집단이라고 자인하는 꼴이 아닐 수 없다.

일선 교사나 관리자급 교사가 자신의 신상 문제를 가장 중시하는 경향이 부르는 불행이며, 교권 편의주의가 초래하는 교육의 역기능이다.

학교폭력이 일어나면 즉각 매뉴얼대로 조치하라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을 어기면서까지 집착한 집단이기주의의 위험성이다.

교권을 세우고 싶으면 먼저 학습권을 세워야

법은 예방적 기능을 지닌다. 학교폭력을 엄단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입법 배경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러나 익산지역의 A고등학교 관계자들은 소임을 다하지 않고 법을 무력화하고 있다. A고등학교 전체 학생들이 학교폭력에 노출되어있는 것이다.

보라. 학교폭력은 학교 사회의 전체를 혼란에 빠뜨린다. 학습권은 지리멸렬하고 교권은 무장해제당한다. 통제 불능을 예고한다. 교내에서 이보다 더 위험하며 화급을 다투는 일이 또 있을까.

A고등학교에서는 불과 한 달 전에 2학년 가운데 한 학생이 고층 아파트에 올라가 몸을 던졌다.

평소 우울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는 사후 학교폭력이나 교육환경과 관련해 전 학생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한 번 하지 않았고, 그저 쉬쉬하며 넘어갈 뿐이다. 또, 거의 같은 시기에 학교폭력이 두 건 발생했으나 제 때 대응조차 하지 않았다.

이 밖에도 학생들 사이에서 '지옥여행'으로 명명되는 최근 1학년 현장학습은 학교 측의 부당한 업자 선정 의혹 문제로 매스컴을 타기도 했다.

A고등학교의 또 다른 문제들을 더 말하면 논지를 벗어나게 되겠다.

다만, 이 학교가 왜 그러느냐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하는 수두룩한 문제들 앞에서 탄식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혹자는 교직 말년을 A고등학교에서 보냈고 정년을 몇 달 앞둔 교장의 무사안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3년 여 동안 누적된 무소신과 무책임의 소산이라고 한다. 설득력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책임은 교원 모두에게 있다.

최근 해고된 노조 전임자들의 복직 투쟁으로 여념이 없을 전교조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해진다.

전교조를 구성하는 모든 교사들도 내 마음과 같을 것이다. 그렇다. 당신들은 왜 길을 잃었는가. 전교조 설립을 전후한 교육자의 참될 길을 가기 위한 투쟁은 퇴색되고 교원 집단이기주의에 함몰됐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의 지지를 받지 않고서는 존립조차 어려운 것이 전교조가 아닐까 한다. 학교 사회의 경쟁을 완화하고, 실효적인 학습권을 실현하며, 참된 인격을 형성하는 학교를 만드는데 매진해 보라. 교육부가 감히 당신들을 와해시키려 시도라도 할 수 있겠는가.

교원들이 책임의식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스승 노릇을 한다면 학교가 A고등학교처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