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 범죄학박사

올해로 ‘4.3 희생자 추념일’이 76회째를 맞이합니다.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이후 1954년 9월 21일까지 7년여 동안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입니다.

1947년 제주 3·1절 행사 중 한 어린아이가 기마경찰이 타던 말에 치였는데 경찰이 적절한 조치가 없자 항의하는 주민에게 발포함으로써 촉발하였으며, 도내에서 마무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육지의 군경과 강경집단인 서북청년단을 동원하여 판을 키운 사건입니다.

500여 명의 무장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15만 명의 도민 중 3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어린이와 노약자의 인명피해가 많았던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4.3 희생자 추념일’이 법정 기념일로 지정된 것은 사건 발발 66년이 지난 2014년부터입니다. 연좌제로 가족의 희생을 숨겨왔던 피해자들의 침묵을 극복하고 역사적 재평가를 통하여 지금은 4.3 기념관과 평화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제주 4.3 사건 하면 제주도의 ‘먼나무’가 생각납니다.

첫째, 제주도에서 4.3 역사 문화탐방을 시작하면 이 ‘먼나무’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옛 서귀포시 청사에 있는 먼나무를 시작으로 서귀포경찰서 옛터를 지나 소남머리까지 답사합니다. 이 나무는 한라산에 있던 것을 1949년에 한 병사가 주둔지인 이곳에 심었다 합니다.

둘째, 멀리서 보아야만 진정한 매력이 드러난다고 하여 ‘먼나무’라 부른다고 하나, 물리적 거리 때문인지 제주 4.3 사건이 우리와 무관한 먼일로 느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관광지로 극찬받는 제주도에서 민족의 비극을 볼 만한 틈새를 보지 못한 탓도 있겠지요.

셋째, “저 나무가 먼(무슨)나무지?”라고 물었을 때, “응, 먼나무야”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면 질문한 사람은 당황할 것입니다. 이름만큼 강렬한 것은 삭막한 겨울에 초록색 빳빳한 잎과 빨간 열매로 대조미를 보이는 그 존재감입니다. 붉은 열매의 선명함도 있지만 민족의 비극인 4.3 사건을 다 지켜보았을 것 같은 강한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최근, 미국 워싱턴 한국대사관 앞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을 세운다는 보도가 나오자, 4.3 단체를 포함한 제주시민들이 공동성명을 내고 "이승만은 한국 현대사에서 아무리 미화한다고 해도 4.3 학살의 주범 중 하나일 뿐"이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정부수립 이후에도 제주 민심에 대한 진지한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국민을 빨갱이로 몰아 가혹한 탄압을 지시한 이승만의 행적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주 4.3사건은 ‘친일’과 ‘반공’을 무기로 한 이승만 정권이 자신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제주라는 섬을 말살한 사건이라고 주장합니다.1948년 10월에 작성된 CIA 문건에서 당시 정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여순사건을 김구 등 우익 인사와 공산주의자가 함께 계획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이 사건을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이승만 정권을 비판하거나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을 ‘빨갱이’ 또는 ‘공산주의’로 매도해 이분법적 이념 프레임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비슷한 일이 오늘날 윤석열 정권에서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로이터통신은 윤 대통령이 당의 보수층을 유지하기 위해 반대파를 공산주의자로 낙인찍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비판자들을 공산 전체주의 및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는 것은 보수층을 결집하고 일부 정책에 대한 불안감을 분산시킬 수 있지만 분열을 조장할 위험이 있다.”라며 윤 대통령의 공산 전체주의 발언을 비판하였습니다.

이런 식의 프레임이 민주주의가 성숙한 오늘날에도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니 참으로 측은한 일입니다. 안하무인의 자세로 국민의 눈과 귀를 의심하게 만들고 입을 틀어막고 언론은 자기 검열을 하는 지경에 왔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습니다. 이제는 멈추게 해야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먼나무’의 꽃말이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입니다. 이 정도의 희생을 치렀으면 충분하지 않은가요? 부디 고개를 다시 드는 이념논쟁으로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