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

범죄학박사

포천에 있는 국립수목원을 찾았습니다. 4월의 수목원은 봄의 생명력이 넘쳐납니다. 전국에는 70여 개의 수목원이 있다고 합니다. 이 중 부산 화명수목원, 대구수목원, 한라수목원, 인천수목원, 황학산수목원, 부천 무릉도원수목원, 한밭수목원, 강릉솔향수목원, 경북수목원 등 13곳이 무료로 개방된다고 하니 한 번 다녀오시기를 바랍니다.

국립수목원은 조선 7대 왕 세조와 정희왕후의 능을 포함한 광릉숲에 위치합니다. 대표적 산림생물자원 연구기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자생식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숲길을 걷다가 우연히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하얀 꽃과 마주합니다. ‘미선나무’입니다.

이른 봄, 척박한 돌밭에서 단아한 흰색의 꽃을 피우는 미선나무는 한국에서만 자라는 토종나무입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더 큰 희망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온 우리 민족의 모습과 많이 닮았습니다.

첫째, 미선나무는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1종 1속' 희귀종입니다. 잎보다 먼저 흰색이나 분홍색, 상아색 꽃을 피운 뒤 9월쯤 부채 모양의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 모양이 부채를 닮았다고 해 부채 선(扇)자를 써 미선(尾扇)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전 세계에 희귀종인 미선나무를 보기 위해 많은 외국 학자가 한국을 방문한다고 하니 그 자태가 더욱 고와 보입니다. 도심의 궁궐과 공원 등지에서 만나는 꽃나무가 오로지 우리나라에서만 분포하는 식물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미선나무를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둘째, 멸종 위기 식물이었던 미선나무의 향기와 꽃말에 반해 인공증식에 성공한 한 부부가 충북 괴산에 살고 있습니다. 매년 미선나무 축제를 열고, 근교 마을조차 미선나무 마을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등 미선나무를 지역의 식물로서 알리는 데 적극적입니다. 과거 약과 음식 재료가 되어주었던 미선나무로 부부는 음식을 개발하기에 바쁘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미선나무가 충북에만 자생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으나 전북 부안 변산반도에도 분포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한국 특산식물 중 히어리, 백양꽃, 진노랑상사화, 변산바람꽃, 노랑붓꽃 등이 전라도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셋째, 미선나무 꽃말은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입니다. 꽃마다 꽃의 특징에 따라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한 '꽃말'이 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꽃에 의미를 부여한 건 인간이지만, '꽃말'은 '꽃이 하는 말'로도 읽히기 때문입니다.

한 시인은 노래합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4월은 잔인하고 슬픈 달이다/학교 앞 둔덕에 새하얀 꽃송이가 개나리처럼 피어있길래/무슨 꽃인가 했더니 바로 미선나무였다/올라가 한참을 들여다보며 되뇌었다/“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시인 김현욱>

또한 미선나무 꽃말의 의미를 재해석한 웹툰과 애니메이션인 ‘슬픈 속에서 가르쳐준 미선나무 이야기’가 청소년들의 사회적 폭력, 우울 등 문제를 직면할 수 있는 체험 콘텐츠로 개발되었다고 하니 그 파급력에 놀랄 뿐입니다.

나무 한 그루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때로 사람이 우리에게 주는 인생의 어떤 교훈보다 더 큰 의미의 교훈을 줍니다. 그들은 그 자리에 홀로 서 있지만 또한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지방 중소도시인 익산도 관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수목원의 가치를 인정하고 수목원을 통하여 자연 친화적인 도시의 정체성을 살려야 할 때입니다. 가고 싶고 살고 싶은 동네가 되기 위해 꽃과 나무가 필요하지 않은 때는 없었지만 지금이 특히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익산은 자연재해가 거의 없으며 야산과 전답으로 구성된 평야 지대는 황토와 굵은 모래로 이루어져 있어 수목원 조성에 유리합니다. 편리한 교통 여건을 갖춘 구도심 근처에 익산만의 특색 있는 수목원과 도시 숲을 구상해서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기를 바랍니다.

멋진 수목원이 자원 및 테마와 연결되면 도시는 활력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황등 호수공원, 식물문화센터, 습지생태원, 열린 숲 공원 등 추억이 살아있는 공간을 거니는 꿈을 꿔봅니다. 그 꿈이 현실이 되는 날 우리의 모든 슬픔이 살아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