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학 박사  김성중

요즘 초등학교마다 소풍, 체험학습이 취소되고 있다고 합니다. 노란 버스를 구하지 못해서입니다. 아시다시피 노란 버스는 13세 미만 어린이 전용 통학버스를 말합니다.

원래 일부 사립학교나 특수학교의 버스, 유치원과 학원 차량 등에 의무화됐던 것인데 이번에 정부는 소풍 등 체험학습에도 노란 버스를 이용하도록 법을 바꿨습니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법에 대한 학부모들 분위기는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에 가깝습니다.

사회가 새로운 일을 요구할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담당할 기구를 조직하고 법 만드는 일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든 문제를 법으로만 해결하려고 할 때 우리는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법이 간단명료하고 처벌이 가벼울수록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가 번영했으나 법이 엄격하고 가혹하면 사회는 혼란과 쇠퇴에 빠졌습니다. 한 고조 유방은 진나라의 복잡하고 가혹한 법을 폐지하고 간단한 법규 3가지 만으로 나라를 다스림으로써 백성을 안정시켰습니다. 그 결과 한나라는 부국강병과 태평성세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다가 말이 많았던 한 무제가 큰 공을 세우려고 대외적으로는 전쟁을 일으키고 대내적으로는 통치를 강화했습니다. 나라 밖에서는 적들이 공격했고 백성은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 무제는 자신의 무지를 반성하고 입을 다물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수다스러워져서 가혹한 관리를 중용하고 형벌을 더욱 엄격하게 만들었습니다. 법률문서로 건물이 가득 차고 법을 집행하는 관리가 몇 명인지 셀 수조차 없을 만큼 복잡했다고 합니다. 결국 한나라는 통치 기반을 상실한 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민주공화국에서 사법과 정치 영역을 따로 둔 이유는 정치에 대해서 사법행위가 원칙을 넘어 간여하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려는 것입니다. 정치와 정책이 잘못됐으면 선거로 심판하게 돼 있는 시스템이 바로 민주공화국입니다.

대화와 타협이 필요한 정치권의 행위를 검찰과 법원이 심판하려는 순간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가 되고 맙니다. 정치의 주체는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 주권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법의 잣대로 정치와 정책을 판단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주권자의 영역은 그만큼 훼손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획일화된 구조의 아파트를 살펴보겠습니다. 마당 같은 테라스와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그리스 산토리니섬에 사는 꿈을 도시에서 실현한 작품이 캐나다의 ‘해비타트 67’ 아파트입니다. 이 아파트는 마당 같은 베란다가 있으면서 조립식으로 경제적이며 각 세대의 개성을 충분히 살렸습니다.

우리나라의 건축가들이 이런 식의 아파트를 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현행 건축법 때문입니다. 건축 법규상 발코니로 인정되어 용적률 계산에서 빠지려면 발코니 폭이 1.5미터 이하여야 하며 건물 길이가 60미터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단순한 규정이 건축가의 창작 의욕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비슷하게 생긴 닭장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모든 집의 모양이 똑같다 보니 개성이 없고 사람들은 집의 가치를 집값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국민이 집값, 성적, 연봉, 키, 체중 같은 정량화된 지표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데는 획일화된 아파트가 한몫했다고까지 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러한 사정인데도 21세기 대한민국 각 분야에서 법 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형식적 법률주의에 갇힌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 상대적으로 많은 탓이 크다고 봅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들은 기득권이며 사회경제적 배경을 볼 때 서민의 고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민생을 해결하겠다는 사고방식보다는 특유의 엘리트 의식으로 조문 하나하나에 매달리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특정 직군이 과다 대표되는 정치권의 한계를 극복할 때입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되찾아야 합니다. 지역에서 검증받은 인사는 물론 역사, 철학, 문학, 공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력과 전문성을 쌓은 사람들의 참여가 절실합니다.

법은 최소한의 상식이기에 법 만능주의는 다양성을 봉쇄하는 허구일 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법은 절대 만능열쇠가 될 수 없으며 단지 세상이 약육강식으로 변질되지 않고 공평하게 흘러가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임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