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 범죄학박사

인연이란 미묘한 얽힘입니다. 인연이란 마음 밭에 씨 뿌리는 것과 같아서 그 씨앗에서 새로운 움이 트고 잎이 펼쳐집니다. 인(因)은 결과를 낳는 내적인 원인이며, 연(緣)은 주변에서 이를 돕는 간접적인 원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인연이 있다’라는 것은 내적인 원인과 외적인 조건이 다 맞아 이루어지는 관계를 말합니다.

인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스쳐 가지만 이 인을 선과(善果)로 만드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고 실망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스치는 모든 인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좋은 연으로 만들고자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인연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불교에서 인연을 강조하면서 전생, 현생, 내생 등 세 가지 생을 말합니다. 현생에서의 만남은 분명 전생에 어떤 관계가 있었고 현생에서의 관계는 내생에 어떤 모습으로라도 이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법은 무엇이든 나라는 존재를 통해서 오고 가는 인연만이 있을 뿐 선악은 없다는 것입니다. ‘옷깃만 스쳐도 전생에 인연이 있다.’라는 속담처럼 인간이 살면서 부딪치는 사소한 만남이라도 전생의 인연에서 비롯된다는 뜻입니다. 즉, 살면서 겪게 되는 인연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힌두교에서는 43억 2천만 년을 ‘한 겁’이라고 하고 지붕의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시간도 ‘한 겁’이라 합니다. 또 잠자리가 날갯짓으로 바윗돌을 닳아 없어지게 하는 시간을 ‘한 겁’이라고도 합니다. 상상조차 되지 않는 초월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면서 500 겁의 인연이 있어야 옷깃을 스칠 수 있고, 2천 겁의 세월이 지나야 겨우 하루 동안 동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5천 겁의 인연이 되어야 이웃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6천 겁이 넘는 인연이 되어야 하룻밤을 같이 잘 수 있게 되고, 억겁의 세월을 넘어야 평생을 함께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살면서 겪게 되는 인연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인연은 만남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여기서 만난다는 것은 곧 눈뜸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책이든 혹은 사상이든 만남에 의해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세계가 새롭게 열립니다. 소중한 만남 중 하나로 ‘바보’와 ‘무소유’의 만남을 들 수 있습니다. 한국인이 존경하는 종교 지도자인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은 생전에 아름다운 인연을 쌓았습니다.

1997년 법정 스님이 창건한 길상사 개원 법회에 김 추기경이 참석해 축하 인사를 하자 스님은 이듬해 명동성당에서 특별강론을 합니다. 종교 간 화합을 강조했던 김 추기경은 타 종교를 찾아가 거리낌 없이 절을 했고, 법정 스님은 길상사에 성모 마리아를 닮은 관세음보살상을 모셨습니다.

안경, 필기구, 책 몇 권, 수단, 승복에 불과한 두 어른의 유품은 커다란 감동을 우리에게 던져줍니다. 만남과 인연을 통해 몸소 보여준 화합과 용서라는 두 어른의 가르침은 우리의 가슴 속을 울리는 자명종이 됩니다. 참으로 소중한 인연입니다.

시절 인연이 맞으면 아무리 거부해도 인연을 만들게 되며, 시절 인연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인연을 맺으려 애를 써도 인연을 맺을 수 없다고 합니다. 연이 있으면 천리가 떨어져 있어도 만나게 되며, 연이 없다면 얼굴을 마주하고 있어도 만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시절 인연도 모두가 내 탓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만나고 헤어짐도 모두 내 탓입니다. 우연도, 인연도, 필연도, 악연도 내 탓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선택한 인연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피천득의 ‘인연’이라는 시의 한 구절을 음미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살아가고 숨 쉬는 날에 꿈같은 당신이기에
마른하늘 보담아 꽃피울 당신이기에

그립다 말하기 전에 가슴이 먼저 아는 당신이기에
애닯다 입 열기 전에 마음이 먼저 안긴 당신이기에
 
소망의 노래로 당신 위해 기원하나니
이 인연이 다하고 나도 당신 앞에 다시 서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