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 범죄학박사

대통령은 민생에 관심이 없고 검찰은 칼춤을 추고 야당은 탄핵을 외치고 있습니다. 2024년 우리의 시간은 2016년 겨울에 아직도 멈춰져 있으며 시대는 역행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가 겪고 있는 이 혼란스럽고 천박한 현실이 역사적으로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어느 순간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희미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역사’라는 책에서 신은 인간의 오만에 대해서 보복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책을 쓴다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마지막을 뻔히 알면서도 시민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우두머리 놀이에만 몰두하거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국정 농단을 자행한다면 역사 인식은 고사하고 무지가 빚어낸 인간의 오만임이 명백합니다.

자기 나라의 역사를 훼손하면서까지 권력을 장악하고 자기 나라의 역사를 비하하는 것으로 지식인의 대열에 설 수 있는 시절이 있다면 그것은 수치스럽고 비극적인 시대입니다.

탄핵 후의 정부는 부패를 청산하는 데 주력했으나 적폐 청산이 시대정신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번 정권도 반쪽짜리 공정과 상식을 부르짖으면서 전 정부 탓만 하며 임기의 반을 보내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고 새로운 것은 출발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대정신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첫째, ‘시대정신(時代精神, spirit of the age)이란 한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정신을 말합니다. 특정한 시대를 대표하는 시대정신을 제대로 찾기 위해선 한 국가와 민족이 보여주는 특수한 성격과 역사를 바로 볼 수 있는 보편적 시각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실패에 기초한 반성과 질책이며 내일의 성공을 담보할 비전과 열정이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이러한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여기에서 정치인의 시대정신은 당연히 국민의 정서와 일치해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국민이 대리인에게 권력을 위임한 제도이기에 책임정치와 협력 정치를 강제하는 것은 당연한 순리입니다. 광화문 촛불의 시대정신은 중도정치를 갈망하고 민주적인 협치의 정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배제의 정치가 아닌 포용의 정치를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둘째, 시대정신을 파악하기 위해서 지금 절실한 건 ‘누가’가 아니라 ‘어떻게’입니다. 이제는 물어봐야 합니다.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일자리, 고비용·저효율 구조에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대전환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또한 미·중 간 게임에서 어떤 전략을 가졌는지, 어떻게 이런 고차원 복합방정식을 풀지, 어떻게 퇴행과 갈등의 늪을 건너갈지 따져 물어야 합니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이라는 애매한 자세나 이도 저도 아닌 기회주의자가 설 땅은 이제는 사라져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연결하고, 전 세계 시민들과 대화하고, 대화로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셋째, 당연히 이러한 시대정신을 잘 이끌어갈 사람은 개방적이고 대화로 풀어갈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국민 친화적이어야 합니다. 이념논쟁을 극복하고 인간의 자연적인 욕구에서 기인하는 협력이라는 동기를 활용해서 이를 달성하는 방법을 고안해 내는 일이 커다란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우파, 좌파의 이념으로는 시대정신을 파악조차 할 수 없습니다. 흔히 보수는 유능하고 진보는 도덕적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경험한 바로는 보수와 진보 모두 도덕적이지도 유능하지도 않았습니다. 허울좋은 말장난으로 법치, 공정, 정의, 의무, 책임, 인권 같은 가치들이 그간 얼마나 훼손됐는지를 따져보니 정신이 바짝 날 정도입니다.

지혜의 상징인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지나야 그 날개를 편다고 헤겔이 말했듯이 시대정신이라는 지혜 또한 그 시대가 저물 때 비로소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인생이란 너무 이르면 알 수가 없고 알고 나면 너무 늦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위기감이 우리의 황혼을 재촉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합니다. 시대정신을 무시하고 혼자 돌 맞고 가겠다는 안하무인의 대통령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정치와 민주주의, 경제, 사회문화, 외교와 안보, 노동, 국민의 보건과 복지, 안전, 환경 등 모든 분야가 빠르게 퇴행하고 국정농단이 선을 넘는 위기를 더 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