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사전에 매수한 담당 공무원을 통해 평가위원 후보자 918명의 명단을 입수한다. 그런 다음 평가위원이 선정되는 입찰 당일 새벽 4시 원격조정 장비로 명단을 받아 해당 평가위원 집 앞에서 대기한 뒤 거액을 건넨다.

이는 첩보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550억원대의 관급 공사를 따내기 위한 건설업계의 로비 비리의 과정이다.

이는 최근, 경기도 파주 '교하신도시 복합커뮤티니 건립공사'의 턴키 입찰과정에서 국내 굴지의 건설업체인 K사가 연출한 커넥션이다.

K사는 또, 공무원에게 뇌물 8천만원을 주고 넘겨받은 명단을 학연과 지연별로 가려 담당자를 지정한 뒤 술과 골프 접대로 관리해 오는 등 전방위적인 검은 거래 혐의로 사법처리 대상이 되었다.

그 심각성은 국회에서도 파악됐다. 국토해양위 소속 김성곤(민주당/전남여수갑)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아예 턴키제도 폐지론을 들고 나왔다. 턴키 입찰방식 그 자체가 부패를 유발하는 제도라는 것이다.

그런 논거를 살펴보니, 국토해양부 5대 공기업이 발주한 턴키공사 189건 중 71%인 134건이 2개 업체만 입찰에 참여했고, 사업비는 10.8조원으로 낙찰율은 94.3%에 이르고 있다. 또, 최근 들어서는 2개 업체만 입찰에 참여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고, 특히 올해 들어서는 5개 업체 이상이 참여한 건수는 없는 상태다.

턴키입찰 사업은 낙찰율도 90% 이상인 사업건수가 전체의 82%로, 최근 5년간 최저가 낙찰제가 적용되는 공공발주사업의 낙찰율이 60.9%인 것을 감안할때 턴키입찰의 담합은 굉장히 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김 의원의 설명이다. 또 1, 2위 업체간 투찰금액 차이가 1% 이하인 사업이 전체 54%에 달하며, 특히 0.1% 미만 차이도 49건으로 나타나 '기적'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김 의원은 건설업계 상위 10개 업체가 전체 공공사업의 79%를 독식하고 있어 결국 턴키사업이 대형 건설사를 위한 발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미심쩍은 행보

익산시는 지난해 12월 초, 1천7백억원 규모의 익산일반산업단지조성공사를 턴키 입찰에 붙여 업자를 SK로 선정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추진 초입에서 부터 잡음이 일었고, 발주되기까지 각종 의혹이 불거졌지만 아무것도 규명되지 않은 채 미심쩍은 상태로 남아있다.

2007년 4월 시행한 설계용역 발주부터 말썽이었다. 공모요강에서 참여자격기준을 대폭 완화해 무자격 업체를 응모케 하고 그 업체를 선정한 것이 진원이 됐다.

지역업체를 참여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얻는 실익에 비해 너무나 큰 위법 사안이었다.

그러나 이 환부는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그로부터 채 1년이 지나지 않았을 때 익산시는 다시 한 번 화려한 재주를 부렸다.

6백억원이 넘는 혈세 낭비를 감행하면서까지 계약방식을 변경한 것이다. 최저가입찰 방식으로 발주하면 설계가의 63%면 될 것을 턴키방식으로 변경해서 설계가의 94%에 계약을 체결했다.

1천87억이면 발주할 수 있는 공사를 1천622억원에 발주한 비상식적인 행정행위에 대해 익산시는 군색한 이유를 댈 뿐이고, 그것이 사회상규에 조응하지는 못한다.

이후, 익산시는 사업자 선정 막바지에서 또 다시 공개경쟁의 공정성과 공신력을 훼손했다. 익산시의 직렬별 전문직공무원들이 응모 업체에서 제출 한 설계서를 검토하는 과정이 문제였다.

총괄부서에서 미리 작성된 검토서(평가서)를 이들 기술검토자들에게 배포, 독자적인 평가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이는, 통상의 업무에 바쁜 기술검토자들의 현실적 빈틈을 파고들어 영향력를 행사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갖가지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은 지난해 말을 깃점으로 어둠 속에 가라앉았지만, 치유되지 않은 환부를 안은 채 유사한 신호를 받으면 한꺼번에 되살아나는 예민한 반응점을 지닌 익산시의 괴물 한 마리가 되었다.    

최근 터진 '교하신도시 복합커뮤티니 건립공사'의 턴키 입찰비리 사건을 접하면서 도리없이 섬뜩하고, 턴키 입찰제도 폐지론을 들으며 익산시의 저의를 가늠하는데 다양한 상상력을 동원하게되는 것은 그런 연유다.

수정 불가피, 의혹 불식시켜야     

정부는 이미 수도권에 입지하는 기업들에 대한 제세감면 제한 및 신규 산단 개발 억제 등 수도권 규제를 풀었다.

무한경쟁시대에서 공권력이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재계의 주장이 수도권 인구 분산정책과 국토균형발전 정책을 압도한 결과다.

특히 기업도시로 세워질 세종시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그 연관산업들을 흡수하는 블랙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익산일반산업단지가 위험에 노출된 지형의 단면이다. 게다가 익산시는 무려 3천100억원에 육박하는 자체재원을 들여 사업기반을 조성하고 있다.

익산일반산업단지(2,283억원)을 비롯한 종합의료 과학산업단지(401억원), 왕궁농공단지(208억원), 금마농공단지(175억원) 등속이다.

반면, 2천3백여억원의 열악한 자체 재원으로는 기 추진되고 있는 사업들을 효율적으로 마무리하기 어렵다.

익산시는 이미 내년에 1천360여억원의 부채를 안게 됐다. 이런 불건전재정은 예산운용 전반에 악영향을 미쳐 익산시민들의 삶의 질이 크게 저하될 게 뻔하다.

익산일반산업단지 규모의 축소나 목적 변경, 그에 따른 중단 등 수정이 불가피한 국면이다. 경쟁력 있는 곳에 예산을 집중하고, 장기미분양 사태에 대비한 안정장치를 마련해야하는 현실이다.

이는 익산시가 무모하게 대형사업을 벌인 이면의 목적이 없었으리라는 전제하에 건네는 제안이다. 엄혹한 현실을 차치하고라도, 익산일반산업단지와 관련한 더이상의 상상을 불식시키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