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철밥통이라는 말이 있다.

실정법 위반이 없는 한 중도에 잘릴 염려 없이 정년을 보장받는 직장인을 일컫는다. 그렇지만 '철밥통'이 만년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공직사회는 연공서열에 지배되고 그에 따른 애환이 적지 않다. 뼈빠지게 일을 해도 잘 보이지 않는 하위직들이나 중간 허리들이 그 실증이다.

이런 수직 체계는 수동적이기 쉬운 공조직에 경쟁을 불러일으키는 순기능을 지닌다. 반면, 승진의 지름길을 찾는 분위기가 팽배해질 경우 일하기 보다는 아첨하고 파벌을 만들어 세를 불리는 줄서기가 고착화 된다. 공직사회가 이렇게 역기능에 휩쌓이게 되는 원인은 인사권자에게 있다.

직무의 숙련도가 높은 사람이 승진에서 몇 번 고배를 마시면 일하는 분위기는 금새 사라진다. 주어진 직위와 직무 환경에서 상당한 경륜을 자랑하고 서열에서도 우위를 점하는 사람이 배척되면 공무원들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승진에 전부를 거는 공직사회의 속성 탓이다.
게다가 일을 하지 않던 직원이 승진배수에서 간신히 턱걸이 하던 차에 줄을 잘 서서 승진하거나, 직위를 이용하여 실정법을 위반한 직원조차 인사권자의 측근이라는 이유로 승진하는 지경에 이르면, 공직사회는 완전히 도덕적 무장해제 상태가 된다.

이때부터 해바라기성 공무원들의 두드러져 보이기 위한 '튀기'는 위험하다 못해 막장에 도달한다.

목표가 설정되면 그 달성을 위한 행정행위는 절차상 하자의 누더기를 입고 앞만 보고 돌진한다.

특정한 사업이 작위적이고 임의적인 수단의 총동원에 의해 추진되면서 파열음을 내지만, 그것은 그 만큼의 위험을 감수했다는 표지이면서 충성도 측정의 바로미터가 된다. 시민들의 혈세를 크게 수반하는 사업일 수록 이런 무모한 행정행위는 더욱 돌출된다.

민선 4기 익산시는 그 전형적인 표본이다. '튀기'에 성공한 공무원들은 대부분이 승진했다. 850억원대 소각장건설 관련 직원들과 2천3백억원대 익산일반산업단지조성사업 담당직원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운영주체 선정과 익산유스호스텔 위탁사업자 선정 절차, 소각장 입지선정 절차는 위법 투성이로 밝혀졌다.

하지만 지휘계통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의회나 언론이 지속적인 지적과 재검토 요구를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반성도 사과도 없었다.

이런 연유로, 민선 4기 익산시 '철밥통'은 다른 지역 보다 휠씬 더 높은 강도를 자랑한다. 인사권자가 원하는 일이라면 편법을 동원하거나 불법을 저질러도 되고, 잘 해내면 개인적 숙원인 승진도 거머쥘 수 있다. 반면, 인사권자의 눈 밖에 나면 '종이밥통'으로 전락한다는 역설이 엄존한다.

재량권을 일탈한 양용준 케이스

민선 4기 익산시에서 인사권자에게 짓밟히고 찢긴 '종이밥통'은 여럿 있다. 아닌 밤중에 날벼락을 맞고 2년 동안 눈물겨운 법정 투쟁을 해 온 공무원 양용준 케이스는 그 대표적인 명증이다.

양씨는 2007년 하반기에 익산시장의 인사비리를 실명으로 전주지검에 진정했다는 오해를 샀다. 때 마침 그가 근무하던 면지역의 관변단체장 몇이 익산시장 집무실을 방문했고, 양용준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달라는 취지의 면담이 이루어졌다. 이후 양용준을 표적으로 하는 일련의 조치는 숨가쁘게 진행됐다.

익산시장은 관변단체장들을 감사실로 안내 했고, 감사실 직원은 관변단체장들이 진술한 대부분 허위의 내용을 진정서로 작성했다.

익산시장은 곧이어 양용준에 대한 특별감사를 지시했으며, 특별감사팀은 현지에 나가 양용준이 부임한 이후 수행했던 직무 관련 사항을 샅샅이 뒤졌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익산시장을 위시한 그들이 양용준을 표적으로 작심했던 특별감사 결과는, 업무태만으로 볼 만한 경미한 사안을 포착한 정도였다. 이는, 통상의 범주에서 볼 때 인사위원회에 회부할 필요 조차 없는 훈계 또는 지휘로 가름할 사안이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당시 익산시 감사실은 양용준을 중징계 처분 대상자로 결정하고 전라북도 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 이 과정에서 예의 면지역 관변단체장들에 의해 작성된 진정서가 첨부 되었고, 이 때까지 양용준은 그런 진정서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특별감사팀은 감사를 실시하면서 진정서의 진위여부를 일절 파악해 본 바 없고, 당사자에게 같은 진정서와 관련한 소명기회는 커녕 그 존재 조차 고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라북도 인사위원회 대다수 위원들은 양용준의 혐의내용이 중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데 뜻을 같이 하면서도, 같은 진정서를 근거로 중징계를 결정하기에 이른다. 더욱 부끄러운 일은 그런 결과를 이끌어내는 데 익산 출신 현직 변호사가 앞장섰다는 것이다.

양용준은 이에 불복하여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같은 처분이 '재량권 일탈 또는 남용'이라며 그 취소를 결정했으며, 이 판결은 확정됐다.

이 과정에서, 실업자가 된 양용준은 경제. 사회적으로 심대한 타격을 입은 채 6개월여 동안 길거리를 전전하면서, 오직 억울함을 풀기위해 절치부심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패소한 익산시장은 양용준과의 적정한 보상 논의는 고사하고 사과 한마디 없었으며, 되레 양용준을 인사위원회에 회부하여 경징계처분을 내렸다.              

양용준은 그로인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회복되지 않은 명예회복을 위해 법정투쟁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양용준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품행이 일반에 칭송을 받을만큼 방정하지는 못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그의 법앞에 평등할 권리를 박탈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또, 규명되지 않은 오해에서 기인한 괘씸죄에 대해 인권을 일방적으로 유린하도록 허용한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뚜렷한 혐의사실도 없는데 양용준에 대해 특별감사를 감행한 이유를, 그를 죽이기 위해서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익산시장 이하 연루자들은 만화속에나 있어야 할 자들이 아닌가.

살인 혐의자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고, 혐의내용에 대해 고지받을 권리가 있다. 벌할 수 없는 죄는 수사대상이 되지 않으며, 공권력을 사적인 곳에 악용해서는 안 된다.

이건 너무나 보편적인 법칙이 아닌가. 그런데 이를 모두다 어겼고 그런 사람들이 민선 4기 익산시의 수뇌부를 이루고 있으니 더이상 끔찍한 일이 있겠는가.

익산시는 풍전등화다. 한 사람의 생각이 곧 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