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 월급도 주기 어려운 자치단체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철밥통들이 생계에 위협을 받는 상황이라니, 진풍경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 불완전하나마 자치권을 부여받은 지방정부의 현실이다. 16년 동안 권한에 따르는 책임성이 강화된 결과다.   

중앙정부는 그동안 인건비 범위 내에서의 조직편제권을 지방정부에 이양하거나, 최소한 규제가 필요한 원칙을 제외하고는 예산편성에 간섭하지 않는 등 '분권'을 자리매김시켜 왔다.

나아가서는 중앙정부의 지방정부에 대한 사회복지 예산지원을 중단할 틈을 노리고 있다. 이는, 수요자 부담원칙을 강조한 나머지 정책입안자 부담원칙을 도외시한 것이지만, 분권과 자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필연적인 갈등으로 간주되며 접점을 찾아 수정.보완할 사안 일 뿐, 퇴행적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공직사회 안에서 지방자치는 한 세대의 물갈이를 거치지 못해 그 현주소는 여전히 의존형이다. 게다가 종적인 구조와 집행위주의 업무는 소비적인 환경을 조장한다.

공무원들의 창의성과 능동성 보다는 무사안일과 무소신, 복지부동이 여전히 잔존한다. 생산적이지 못한 조직은 외부 환경의 변화에 둔감할 수 밖에 없다.

주어진 일이나 잘 처리하면 밥 먹고 사는데 굳이 이익을 내자고 모험을 하지 않는 속성을 지닌다.

특히, 인건비는 빼놓고 나머지 예산을 가지고 복지와 사업, 서비스에 배분해 왔기 때문에 긴축재정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해 왔던게 공직사회다.

그런데 최근 꽤 규모가 큰 지방정부들이 빚더미에 올라 앉으면서 구조적인 문제가 노출됐다. 자치단체들이 사회 및 산업기반시설을 경쟁적으로 조성하는 것이 그 가장 큰 원인으로 포착되고 있다. 재정 여건을 감안하기 보다는 투자에 더 비중을 둔 탓이다.

투자에는 항상 위험부담이 따른다. 당초의 기대 효과를 얻지 못할 경우 그 비용을 회수하기 어렵고, 그에 따른 막대한 이자 손실 등을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자치단체들은 이런 투자의 기본원칙도 고려하지 않았다.

익산시의 경우, 대규모 기반시설을 조성한 뒤 비용이 회수되기도 전에 막대한 신규 투자를 계속 벌여왔다.

지난 4년 내에 4천억원대의 산업기반시설공사들을 발주했고, 이들 사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같은 금액은 향후 4년 동안 고스란히 부채가 될 전망이다.

사업의 연관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공사기간 중에 노동현장의 일자리와 미흡하나마 지역경제효과를 창출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넘쳐 흐르는 물이 바닥을 적시게 한다'는 적하정책(滴下政策) 효과는 자치단체가 추구해야 할 공익이 될 수 없다.

적하정책은,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富)를 먼저 늘려주면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가 총체적으로 경기를 자극, 국가경제 발전과 국민복지 향상을 꾀할 수 있다는 이론이었다.

이 트리클다운의 모태가 된 공급주의는 미국 레이건 행정부가 받아들였고, 부시행정부의 경제정책이었지만 클린턴 행정부에서 폐기처분됐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짧은 기간 안에 재정적자가 누적되는 결과를 겪었다.

이자소득세율 인하를 비롯해 기업의 투자세액 공제, 법인세율 인하 등 부자감세를 공격적으로 실시했지만, 결국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수요를 초과하는 투자는 부적절하다. 그래도 투자하기 위해서는 시기와 환경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충족하지 않은 투자는 자살행위다.

상당수 자치단체들은 "타지역이 하니까 우리도 한다"는 무뇌아적인 정책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의 중앙정부는 레이건 행정부의 과거 족적을 좇았다. 민간소비 경색을 방지하고 기업의 투자의욕을 고취시켜 경제의 선순환을 도모하기 위한 부자감세를 실시했다.

이는 경제위기를 극복한 면이 일부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트리클다운을 시행한 이래, 기업들의 투자는 거의 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나라 곳간만 텅 비게 했고 재정적자만 확대되어 국가 재정건전성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이는, 일부 자치단체들이 공무원들에게 인건비를 주지 못하게 되는 지방재정 초토화로 이어졌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소수를 위한 정책기조는 바꿔야 한다. 중앙정부는 원산지에서 이미 폐기처분된 정책을 도입했다.

대통령의 '친 기업', '친 시장' 철학에 부합하는 선진국의 경제이론을 무턱대고 좌표로 삼은 것이다.

트리클다운은 신자유주의의 소산이다. 감세정책은 정부의 사실상 시장개입이며 기업보호주의다. 무역장벽이 무너지고 시장의 경계가 지워진 신자유주의의 지도 위에 분배의 정의조차 없는 폐쇄적인 경제정책이 존치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악재 위에서 기업들의 투자여건이나 환경은 갈수록 고갈되고 있다. 과거 기업들이 수도권에 공장을 짓기 위해 받았던 각종 규제가 대폭 완화됐다.

기업들의 블랙홀로 지목되는 세종시는 MB정부의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런데 지방정부는 끊임없이 기업 유치환경을 조성하느라 빚더미에 올라 앉는 것을 불사하고 있다.

이런 불나방의 행태와 다르지 않다. 중앙정부는 그동안 종합부동산세 전액을 부동산교부세로 지방에 지원했지만, 종합부동산세 감세 조처로 지방정부의 의존재원 규모가 대폭 줄어들었다.

중앙정부의 소득세와 법인세, 내국세 감세조처는 지방정부의 자체 재원과 의존재원 모두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경제의 기본은 소비와 공급의 균형이다. 어떤 정책을 도입하든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쭉정이가 된 민생예산을 회복시키지 못하고 시민을 도탄에 빠뜨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