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자치단체에서 공무원들이 서로 다른 시장 후보를 경쟁적으로 돕다가 철퇴를 맞은 사건이 있었다. 본격적인 선거철에 접어들면서 공무원들의 줄서기가 노골화되는 현주소다.

사건 전말을 보니, 공무원 A와 B씨는 오랜 공직생활의 기반을 걸고서 수 천명의 유권자를 현직 시장 편으로 끌어들이는데 목숨을 걸겠다는 메일을 보냈다.

공무원 C씨는 이를 알고 현직시장의 이메일을 해킹해 선관위에 고발했고, A씨와 B씨는 충성을 맹세하는 이메일 이외에도 학교 동창생 등 다수의 선거구민들에게 현직시장을 도와달라고 부탁한 혐의로 구속됐다.

공직사회 일각에서는 일부 공무원들의 조바심에 가까운 선거판 기웃거리기에 대해 우려를 감추지 못한다.

이런 판에 특정 후보자의 인사와 관련한 압력성 회유나 설득은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 된다. 아니, 사실은 공무원들이 먼저 유력 후보 쪽으로 몸과 마음을 던지며 줄을 서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특히, 민선자치 이래 줄을 잘못 서서 상당한 불이익을 받아 온 공무원의 뇌리에는 '줄'은 곧 '성공의 관건'이라는 등식이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후보자들이 은근히 "기회를 놓치면 찬밥 신세"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줄서기를 우회적으로 강요할 경우 공무원들은 초조해진다.

공직 내부의 누군가 일단 선거판에 뛰어들면 순식간에 대오가 형성되고, 덮어놓고 후보자와 가까운 쪽으로 진입하려는 경쟁이 가열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는, '발탁인사'라는 허울로 능력이 떨어지고 근무연한도 짧은 동료들이 승승장구 했던 과거의 인사전횡에서 비롯된 폐단이다. 진급에서 탈락한 부당한 현실을 추스리기도 전에 변방으로 밀리고, 정신차릴 틈도 없이 새로운 보임지로 옮겨다니던 설움의 발로다.

민선 자치 이후 공무원들의 자부심과 긍지가 눈에 띄게 희박해졌다. 적어도 관선시대의 인사는 연공서열을 중시했다.

후배가 선배를 추월해 승진하는 사례는 지극히 희귀했고, 그 타당성에 대해 상대다수가 공감했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불만이 노출되지 않았다.

또, 발탁인사가 불가피한 경우라 해도 관선시대의 단체장은 조직 내부와 외부에 그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자세를 보였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공직사회가 내부갈등으로 경색되면 그 존립가치를 부정하는 꼴이 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사람 잘 뽑아 대물림 종식시키고 공조직 사유화(私有化) 척결해야

그러나 민선시대가 개막되고 해를 거듭할 수록 '인사'는 줄세우기의 수단으로 심화되어왔다는 지적에 자유롭지 못하다.

익산시의 경우는 특정 학맥이 고위직과 중간관리직을 석권, 그 밖의 학교 출신들이 민선 4기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왔다는 피해의식이 팽창일로에 있다.

오는 6.2 지방선거가 지역내 두 학교의 대리전 양상을 띌 것이라는 같잖은 전망까지 나도는 배경이다.

그 진앙지는 이런 분위기를 조장해서 실익을 챙기려는 일부 정치인들과 거기에 줄선 사람들이다.

이런 정치는 지역사회 공동체를 파괴한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당장 회복불능의 후유증을 남긴다.

더구나 공직사회가 양분되어 정치적 희생양을 자처하는 일은 그 폐해가 너무 커서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정치적 중립 의무를 준수하고 국민 앞에 공복이어야 할 공무원의 줄서기는 법적 시비를 떠나 공직내부의 동력을 빼돌리는 행위다.

직원들 끼리의 불신과 편가르기는 비방과 끌어내리기를 횡행케 하고, 일하는 분위기를 해친다.

선거 이후 형성되는 주류 전선은 친위부대가 되어 공조직을 단체장의 사유화(私有化)하는 데 앞장서고, 비주류 전선은 주민들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부정적인 요인이 된다.

사유화 된 공조직은 오로지 단체장의 재선을 위해 가동되며, 예산서에서는 선심성 예산이 틈만나면 증액되고, 단체장의 정치적 협력세력인 특정단체를 지원하는 사업에는 편법.불법을 동원하는데 거리낌없다.

이는 각 부서에서 경쟁적으로 이루어진다. 공직내의 반대세력을 제거하는데는 직권남용이 예사다.

이런 자치단체는 비효율적인 떡고물 사업에 예산을 편중시키며, 생산적인 사업은 도외시한다. 이는 민선자치 16년 동안 고착화된 역기능이다.                 

줄서기로 성공한 공무원은 일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자리보전과 빠른 신분상승을 위해 아첨과 위험부담이 큰 충성을 지름길로 삼는다.

이런 공무원들의 자기 정체성 부정은 공직사회 내부에 불신을 확산시킨다. 인사가 불공정하게 이루어진다는 인식이 뿌리내린 공조직은 우선 의욕을 상실한다. 생기를 잃어버리고 무기력한 공무원들에게 기대할 것은 없다.

업무의 효율성이나 생산성은 고사하고, 칙칙한 분위기와 불친절이 만연한다. 따라서 공직사회에서는 줄서기에 성공한 사람이나 실패한 사람이나 똑같이 암적인 존재다.

줄서기는 곧 공직사회의 존립가치를 흔드는 행위다. 후보자든 공무원이든 함께 성찰해야 할 부작용이다.

시민을 위해 심부름꾼이 되겠다는 후보자나, 시민 때문에 존재하는 공무원이 자신의 사익에 눈 멀어 시민을 저버린다면, 우리의 단체장 선거는 도둑들을 위해 도둑의 두목을 뽑는 일에 다름아니다.

이 모든 폐단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단체장이 선출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줄서기의 대물림이 종식되고, 인사전횡이 척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