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인을 살 찌워야 할 위정자들이 고도 비만에 걸렸다. 주인이 한 눈 팔며 무절제하게 방목해 온 탓이다.

본래 모습을 잃은 형상은 이세상붙이가 아닌 것 같고, 널린 게 양식인 데도 넘치는 식욕을 주체하지 못해 저희들끼리 패악스러운 영역다툼을 거듭한다.

주인을 몰라보고, 해야 할 일을 망각한 채 어기적 거리는 품새가 비대한 짐승의 기세로 주인의 안위를 위협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위정들을 방목할 수 밖에 없다. 모두 피곤하기 때문이다. 누가 위정자인지 주인인지 알고 싶지도 않다.

행복을 좇고 거두느라 제각각 바쁘다. 혹은 행복을 분탕질하다가 맥이 풀리고 고단하다. 다가 올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투표율이 무슨 상관일까. 행복에 치어 스승이 죽은 사회, 정치가 고급 직업으로 전락한 나라. 그래도 마냥 행복에 겨운 우리다.

최근 국내 유스의 리서치 기관의 여론 조사 결과는 그것을 반증하고 있다. "행복하냐"는 질문에 응답자 가운데 73%가 "행복하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가 병리현상의 파동으로 인지되는 것은 왜일까. 우리가 누리는 행복이 남으로부터 겉도는 소통부재와 맞닿아 있다는 자각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한다.

도대체 오늘 "행복하다"는 대답이 자기중심, 자아도취, 자가당착 같은 단절의 성어(成語)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유는 뭘까. 이런 행복의 병리현상은 '액 땜' 풍습이 낳았을 혐의가 짙다.

'액 땜'은 일종의 정신적인 완충장치이자 예방주사 같은 것이다.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병이 들었을 때, '이보다 더한 일을 당할 걸 대신 때웠다'는 자위(自慰), 당장의 우환(憂患)으로 미래에 닥쳐 올 재앙을 미리 때웠다는 안위(安慰), 이것은 망각 문화다.

건강을 해치는 나쁜 일을 빨리 잊고 행복한 일만 생각하려는 긴장완화 작용의 기제다. 기실, 과거에 겪었던 유형의 우환이 훨씬 크게 닥쳐오더라도 그 충격이 완화되게 하는 묘약이다.

이는 피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순응하는 태도다. 불투명한 미래를 두렵지 않게 하는 자기최면이다.

정초에 옷이나 허수아비를 불태우는 등의 '액막이'는 그 적극적인 미래에 대한 채비다. 이런 능동성은 진취적인 기상으로 발현되어 행복을 견인한다. 반면, 과거를 되짚어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는 데는 터무니없이 취약한 헛점을 드러낸다. 발생한 피해의 재발을 막는데 끈기가 미약한 경향을 보이고, 그 폐단이 사후약방문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이 땅의 상당수 가해자들은 물리적인 처벌이 아닌 양심의 가책으로 죄값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를 당한 쪽에서 그것을 미래에 닥칠 '액 땜'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에 따른 결과들이다. 이런 감수(感受) 문화는 큰 비용을 수반하면서도 사회적으로는 미덕이 되기도 한다. 고난에 순응하되 그것을 빨리 잊어버리고 더 나아질 미래의 삶에 집중하는 행복지상주의를 낳게 된 배경이다.

우리의 피 속에 잠재하는 동질성은 '좋은 게 좋은 것이다' 이것은 희망이면서 절망이다.
행복지상주의가 맹활약한 결과다. 불행은 보지 않고, 겪은 불행은 완전히 망각하기, 그 막고 품기식 행복추구가 이룩한 개가로 들린다.

불만족이란 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다. 보고도 공감하지 않으면 스치는 풍경에 불과할 뿐이다.

자신의 행복만을 찾는 시야에 남의 불행이 들어올리 없다. 불행을 행복으로 나아가기 위한 관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감내할 뿐이다.

불행을 고민하지 않는 시대

불행이 복제되지 않는 사회에는 불행을 불행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 기현상까지 겹친다. 다만, 질(質)의 차이가 있을 뿐 널린 게 행복이고, 행복만이 생산되고 소비된다.

이런 관습적 폐단을 거부하는 진보진영의 불만족은 조금 질이 떨어질 뿐인 행복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불만족은 낙오하거나 일탈한 또다른 행복일 뿐이다.

이런 사회에서 불만족은 아무런 동력이 되지 못한다. 우리의 문명이 발달하는 동인(動因)이 불만 해소에 있는데도 그렇다.

우리가 인지하는 행복은 과연 진정한 행복일까. 불행을 겪어보지 않고는 행복을 모르는 법인데, 불행이 없는 행복이 존재할 수는 있는 것인가. 여기에 우렁차게 '예'라고 대답하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불행은 엄존한다.

"행복하다"고 대답한 73%는 동시에 불행하다. 단지, 행복을 지향하면서 불행을 고민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

기부를 하되 그 행위 자체로 자족하지만, 기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쪽의 고통에는 관심이 박약한 시대다. 고통을 줄이거나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고민하지 않는 불행 불감증의 시대다.
역설적이게도 행복의 시대에서는 '액 땜'의 풍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더이상 불안한 미래는 없다. 불행을 감지 할 촉수의 퇴화 때문이다. 이것은 멀지 않은 내일 행복의 복제도 중단 될 것을 암시한다. 

행복에 취한 귀에, 무겁고 답답한 심정으로 말하는 익산의 존립위기론이 들어갈까. 막대한 부채, 인구감소, 심각한 환경문제는 여전히 남의 일일 것인가. 정당의 이전투구와 반목은 선거 이후 익산을 두동강 낼 정도로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의 대립을 예고한다는데, 익산 60%에 가까운 행복한 유권자들은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 투표장으로 가서 불편을 나누기 보다 행복을 좇아 들로 산으로 나갈 것인가.

우리 가운데 누군가는 '액 땜'으로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불행으로 스러져가고 있다. 이제는 우리의 속성을 얕잡아 보고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위정자는 어쩔 것인가.  투표를 준비하라. 행.불행을 느끼지 못하는 연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