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다가 온 '법의 날'이었다. 천안함 침몰로 온 국민이 눈먼 바다에 사로잡혀 망연자실 하던 중이었다.

천안함 사태는 전혀 예기치 못했고 돌이킬 수 없었던 탓에 천재지변과 다르지 않았다. 차가운 침묵의 바다가 생때같은 젊은이들을 집어삼킨 직후부터 군 수뇌부는 천안함을 두동강 낸 병기가 어뢰일 가능성이 높다 했고, 함미를 건져 올려 역학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일관성이 유지되고 있으니, 천안함이 아군에 의해 타격되지 않았다면 북쪽의 공격을 받았을 공산이 높다.

우리 정부와 우방은 이를 빌미로 자위권을 발동하여 서부전선 일단의 적진을 초토화시킬 수도 있겠다.

바로 '법의 날'에 그런 섬뜩한 설정에 소스라치며 엄존했던 균열을 대면한다. '법'은 내치(內治)의 요체다.

그러나 그 법이, 민의를 묵살하거나 부당한 정책을 밀어붙이는 수단이 되고, 법 집행자들이 스스로 권력 쪽에 경도되면 더이상 국가의 미래는 없다. 법이 국론분열과 무정부 상태를 초래할 저항의 기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이 순기능보다는 역기능 쪽으로 기우는 걸 외침(外侵)을 경계하듯이 막아야 할 이유다.  

통치권자의 입장에서, 단순히 무력이나 전력을 증강하는 것으로 국방의 만전(萬全)을 장담할 수 없다. 최전선의 경계와 응전태세를 강화하고 무력을 집중시킨다 하더라도, 정부에 대해 피해의식이 팽배한 국민의 원성은 최전선 말단의 군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전선에서는 긴장과 화력만으로 완전한 경계를 보장받지 못한다. 지켜야 할 나라가 초병에게 확신을 주지 못하면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균형이 무너졌다는 데 있다. 청와대가 사정의 칼을 치켜 들었을 때를 보자. 부정부패를 도려내겠다는 칼이 오히려 토호와 밀착된 사정기관에 의해, 평소 토호와 긴장관계를 유지해 왔던 건강한 주체의 목에 겨누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는 없었다. 위에서는 오직 '비리 척결'만을 강조하고, 지휘부에서는 특별 진급을 미끼로 내세우며 "한 건을 올려라"고 몰아붙이니, 일선에서는 피해자는 없고 가해자만 있는 인지수사가 판을 친다.

이런 상황에서 복무수칙이나 절차법이 대수겠는가. 사정의 칼날에 인권이 유린당하고 제3의 피해자가 양산되지만, 검찰이나 경찰의 복무수칙에 어둡고 더구나 절차법을 듣도 보도 못한 선의의 피해자들은 부당한 사정기관의 가해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보지도 못한 채 억울한 울분과 불신을 가슴에 묻게 된다.

의도된 악의의 제보에 의존하여 오직 벌을 주기 위한 목적에 기운 검.경의 수사는 우선,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반 국가적인 범죄행위다. 이는 미필적고의에 의해 이루어진다고는 하나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니, 교사(敎唆罪)와 정범과 종범으로 나뉘어 그 죄의 경중이 다를 뿐 모두가 공범이 된다. 또, 이런 사직당국의 환경은 언제든지 권력이 명령만 내리면, 누구든지 먼지를 털어 처벌할 수 있는 여지에 노출되어 있다.

사정이야 말로 평소보다도 엄정하게 절차를 중시해야 한다.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정이 부정부패를 예방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겠는가.
다만, 실정으로 잃은 공권력을 잠시 동안 물리적으로 회복할 뿐이다. 사정이 공신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억울하게 인지수사에 피해를 당한 사례를 적출하여 일선의 가해자들을 엄히 척결해야 한다. 말해보라. 온 세상을 뒤흔드는 사정 정국 속에서 어떤 토호들이 척결되었는가를.

견제시스템 교란이 문제

이 나라의 내치가 걸핏하면 분규를 초래하는 것은 독립된 주체들간의 견제시스템이 일방적인 힘에 의해 교란을 일으킨 탓이다. 사법부를 견제해야 할 행정부의 수뇌부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권력분점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결과다.

내치든 외치든 '균형'이 성패의 관건이다. 그 균형은 견제 없이 얻어내기 어렵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고른 상태가 '균형'의 사전적인 의미이지만, 실용과학에서 균형은 물체에 여러 개의 힘이 작용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전혀 힘이 작용하지 않은 것과 같은 상태를 가리킨다.

화학적으로는 가역반응이 완료되어 더 이상 반응이 일어나지 않고, 물체나 물질이 시간의 경과에도 변하지 않는 일정한 상태를 의미한다.
'균형'을 집약하면 '조화'이거나 '중용'이다. 이 정권이 실패한 내치의 조화롭지 못한 양태를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난데 없는 좌파. 우파 논란으로 소란스러운 암울한 지형 아닌가. 국방도 이와 다를바 없다. 특히, 동족끼리 대치하고 있는 냉전의 상황에서 '조화'는 무엇보다 긴요하다. 그런 균형의 상태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열린 테이블로 확인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권은 일찌감치 테이블을 치워버렸다. 국제정서에 반하는 북한의 행태에 대해 걸핏하면 보복. 제재를 운운하며 자극했다. 천안함 사태는 그런 부조화와 무관하지 않다.

통치의 원리는, 떳떳하며 변함이 없고,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도리에 맞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 정권은 출범 이래 국민과 통치자의 거리를 지나치게 멀리 떨어뜨려 국민들의 원성과 고함소리만 광장에 넘쳐났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법의 날'에 천안함 사태를 되짚어 가다 자기 견제 시스템이 무너진 반작용의 결과가 천안함 사태라는 것을 깨닫는 건, 집행자들이 '법'을 평등이나 평화를 달성하는데 쓴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스스로를 내세워 우쭐대며 군림해 온 탓이다.

그들은 스스로가 대접 받아야 할 존재라고 여기는 우스꽝스러운 현실이다. 뇌물과 향응을 제공받은 자가 뇌물과 향응을 제공받은 자를 처벌한다니, '균형'은 커녕 주객이 전도 된 위험천만한 오늘이 아닌가. 검찰이 자신의 썩은 환부에 어떻게 메스를 가할지, 2010년 '법의 날' 이후 처음 검찰이 오른 시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