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의 여자 거상 '김만덕'이 장안의 화제다. 그녀는 300년 전에 실존했던 인물이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현실과는 동떨어진 캐릭터다. 그녀의 인생역정을 만덕전에 기록한 동시대의 영의정 채제공(蔡濟恭)은 그녀를 "그 누구도 꿈꾸지 못할 일을 스스로 해 낸 사람"으로 평가했다. 바로 그런 신화적인 요소가 요즈음 봄 날 한 때의 달콤한 꿈과도 잘 어울리는 것일까.

"제주 백성의 반 이상이 굶어 죽어갈 때에 객주 앞에 전 재산을 털어 사들인 쌀 뒤주를 가져다 놓고 백성들이 하루에 한 되씩 퍼갈 수 있도록 했고, 죽을 끓여 나누어 주었다.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백성의 굶주림을 여자 상인인 김만덕이 구제했다" 만덕전의 백미다. 당대의 거상이 표징하는 혜안(慧眼)과 개척, 위기 돌파 등 무용담들 속에서 단연 두드러지는 전부를 건'나눔'의 일화다.  

김만덕은 가난을 이겨냈고, 기생신분을 벗어났으며, 여자로서 대상인이 되었다.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어 뜻을 세웠다. 사가(史家)는 그녀가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역발상의 승부사였기에 남긴 수 많은 신화들 앞에 경탄해 마지 않는다. 그녀가 부(富)를 사회에 환원한 것도 부를 축적하는 과정의 유연성과 궤를 같이 한다. 빈 손으로 간 그녀의 부는, 성공을 향해 경쟁만이 강조되고 '부는 세습되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우리 부와 엄연히 다르다.

그녀가 신분과 성차별, 약육강식의 경제논리를 극복하고 달성한 '노력하면 이루어지는 세상'은 이 시대에서도 추구해야 할 이상이다. 양태만 다를 뿐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지배하는 시장환경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갖지 못한 자의 노력은 가진자의 부를 늘리는 수단에 불과하다. 적어도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대부분의 부(富)는 가진자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현실이다.

반면에, 김만덕에게 부는 연속성이 아니라 동시성(同時性)을 지닌 것이었다. 모두가 상호작용하여 새로운 부를 창출하도록 하는 부의 종자, 그 모든 가능성의 축적물이 곧 그녀의 부가 아니었던가 한다. 그녀의 부가 '나눔'이라는 가치사슬에 이동하여 목적을 달성하면서 그런 그녀의 뜻을 드러낸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제주에 유배를 갔던 추사 김정희는 '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번진다'는 뜻의 은광연세(恩光衍世)를 휘호로 그녀를 기렸다.

한 낮 찰라의 남가일몽(南柯一夢)일 지라도, 부는 어떻게 축적할 수 있는 것인지 그걸 위해서 어떤 역발상이 필요한 것인지 궁금해지는 봄 날이다.

"사람은 재물 때문에 목숨을 잃고, 새는 먹이 때문에 죽는다" 생존의 문제지만 탐욕이 지나치면 반대의 길로 빠질 수 있다는 경구다. 최근 익산에서는 부정한 돈에 손을 댔다가 자살한 공무원도 있었다.

우리는 무한경쟁의 대열 안에서 자주 나태해진다. 적은 노력과 쉬운 접근으로 돈벌이를 좇는 데 적잖은 시간을 투자하곤 한다. 근시안적으로 급급하다가 사리사욕의 타성에 젖어 쉽게 사회상궤나 의리를 저버리고 시장(市場)의 부침(浮沈)에 끌려다니게 되는 것이 다반사다. 우리는 그런 폐해를 학습 이전에 본능으로 알고 있지만, 우리의 짧은 호흡과 조바심은 그 유혹의 너머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돈을 향한 빠른 접근은 설령 성공한다 하더라도 오래 가지 못했다. 거상들을 흉내 내던 이들이 그랬다. 잡은 것을 놓치고 무너질 때도 빈약한 기반 탓에 시간과 동력만 좀먹었을 뿐 건질 것이 없었다. 대부분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 채 흔적도 없이 몰락해 갔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태생적으로 쉽고 빠르고 편한 돈 버는 길을 거부하기 어렵다.

새는 먹이 때문에 죽는다

이 꿈틀거리는 봄에 고단한 마음을 달래는 호접몽(胡蝶夢)은 '돈 많이 버는 법'이다' 조선 최고의 거상 임상옥 처럼 불확실 할 수록 공격적으로 투자하면 거부(巨富)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까. 시간이 다를 뿐 같은 공간에서 부를 지배했던 수 많은 거상들의 족적을 따르면 그들 처럼 성공 할 수 있을까. 백선행은 미래에 대한 통찰력으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서 블루오션을 창출했다는데, 그걸 해낼 수 있을까. 최문과 한충교 처럼 숨겨진 잠재력을 발굴하여 혁신과 창조의 달인이 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큰 꿈을 꾸면 이덕유 처럼 조선의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을까. 선택하고 집중하며 역경을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면 다른 여러 거상들 처럼 정말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이런 무수한 격언들은 성공한 이의 역정(歷程)에서 비롯한 것이니 의심할 여지는 없겠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500년 조선의 거상이 30명을 넘지 못하고, 언제나 가진자 보다 갖지 못한자가 상대다수라는 것을. 그렇다고 가졌던 자가 깆지 못한자 보다 우월했던 것만은 아니다. 누구라도 자신이 지닌 강점의 끈에 흩어져있는 격언들을 잘 꿰면 일가(一家)를 이룰 수 있다는 확신에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 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불행하고 부자이기에 행복한 것이 아님을 공감한다.

단견(短見)이지만, 조선시대 내내 시장을 지배했던 거상들의 공통 된 시스템은 실핏줄 같은 조직력이었다. 그 관건은 다름 아닌 '신뢰'였다. 이익을 챙기되 만족할 줄 알고 독점하지 않았고 번 만큼 베풀었다. 의로움을 좇아 이로움을 구했고, 초심을 잃지 않았으며, 믿음과 감동으로 경영했다.

이렇듯 부는 결국 돈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나눔'은 모은 것을 소모하는 게 아니라 더 큰 생산을 위한 동력이었다. 김만덕이든 조선 최고의 거상 임상옥이든 그것을 깨달은 이들이었다. 그들과 나누는 자 역시 부를 공유한 것이니 우리 모두가 같은 부자라는 역설이 곧 이 봄날의 호접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