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우리는 만족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불만족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신자유주의 시대, 상대를 물리쳐서 가치의 총합을 줄이는 제로섬 게임의 속성, 그 무한경쟁에 의한 외상성 스트레스가 극심하다. 깨어 있어서 고통이라는 강박상태는 갈수록 굳어지고, 결국 '죽음'을 깊고 평온한 '잠'에 대입하는 이들이 늘어만 간다. 이런 망연스러운 자기 상실감과 막연한 동경은 바닥모를 절망감의 부화 온도가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짐이 본래 무거웠던 것은 아니다. 단지, 본질적으로 무거움을 지향하는 존재의 나침반에서 참으로 가볍게 떨리며 갈등하는 자침(磁針)의 감응, 그 너무나도 모순적인 내부의 충돌에서 먼저 지쳐버리는 탓이다.

여기에 덮치는 트라우마의 파괴력은 겪어본 사람이 아니고서 짐작할 수 조차 없을 일이다. 피해자가 존재와 존재를 둘러싼 관계에 설정 된 책임을 벗어 던질 때 그 지점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아닐까 한다.

짐을 지고 잘 견디는 사람이 가볍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벼운 것을 가벼운 채로 놓아 둘 수 있는 담대함이나 짐의 무게를 조절할 수 있는 유연성이 생존의 한 방편인 것은 엄연하다.
 이 때 그런 이는 의타(依他)의 지점에 놓여 있는 것이고, 자기를 부정한 채 강자의 논리나 다수의 강변에 종속된 것을 의심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도식(圖式)에 기대어 정체성 부재를 말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겠지만, 이를 무릅쓰고 우리가 '사회적인 동물'인 이상 자기를 온전히 지켜내기란 지극히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해야만 한다.  

하지만 자살을 선택할 수 없는 건강한 우리는 윤리적 투쟁을 멈출 수 없다. 사회 성원으로서의 책임이 순응하는데도 있지만, 집단의 부조리에 반응하여 저항과 수정을 기도(企圖)해야 할 책임도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우리는 또다시 심각한 트라우마에 노출된다. '순응' 속에서의 '반응'은 소수 일 수 밖에 없다. 수정을 쟁취하기 위해 강자의 논리와의 물리적인 충돌이 불가피한데, 여기에 '순응'은 그 보다 더한 부담이 된다.

순응하는 이들은 대게 의존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 역할을 강조할 뿐, 독립의 가치에 둔감하여 그런 것을 고민하는 자체를 잘 납득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는 '반응'에 따른 소요와 자신들에게 낯선 그런 행동에 동참하지 못한다. 그들이 지향하는 질서와 침묵은 강력한 압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사실, '반응'을 차치하고라도 본질을 억압하는 '순응'쪽에서 역시 포기 할 수 없는 공동체가 아닌가. 어느 쪽이라도 그 경색을 마주 할 경우는 망연자실 할 지형이다. 

이런 지형에 처한 '반응'에게는 '순응'과의 소통을 위한 표준 주파수가 필요하게 된다. 우리의 보편가치는 뭘까를 '반응'쪽에 서서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이웃의 얼굴에 관심조차 없는 높은 마음의 벽을 해체하고 재구성할 '공동선'은 추출 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 우선, 순응하는 집단의 이기(利己)와 거기에 속한 개인의 이기에게 '반응'이 트러블이지 않고 교집합을 이룰 영역이 되도록 할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제로섬 게임을 중지시킬 묘안은 없겠지만, 개인이나 조직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과의 협력을 통한 상생전략, 그 포지티브섬 게임을 가능하게 할 방향성도 도출해야 한다.
'운명은 개척되는 것'이라는 섭리를 믿는 한 우리에게는 '순응'과 '반응'의 경계를 뭉갤 책무가 주어진다. 우리의 핏속에 흐르는 공동체의 본질인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기를 꾸짖고,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는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단군의 건국이념 '홍익 인간'(弘益人間)과 조선시대의 도덕 공동체 향약(鄕約) 그 네 가지 덕목( '착한 것은 서로 권하고(德業相權), 잘못한 것은 서로 고쳐주며(過失相規), 예의로서 서로 사귀고(禮俗相交), 어려울 때 서로 돕는다(患難相恤))을 공동체의 도덕률로 복원해야 한다.

공동체 도덕률 복원이 곧 공동선

이는, 신자유주의가 동반하는 '다원주의'에 배치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공동선'이 한 낱 수사(修辭)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 동질적이고 응집력 있던 우리의 전통사회로부터 공동선의 가치 기준을 채택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우리의 오늘에 세울 공동선은, 아직 미분화된 단일 가치체계를 토양으로 삼지 않을 경우 필경 불확실성을 배제 할 수 없고, 굴절되거나 표류할 수 밖에 없다.

공동체 복원은 실천적인 공동선의 핵심적 가치이며, 이런 단선적이고도 명료한 기준이 바로 섰을 때 상이한 가치들을 추구하는 다양한 문화전통들을 수용 할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한다. 실증적인 규범을 다 버리고 무턱대고 '다원주의'에 진입한 몰골이 우리의 현주소가 아닌가 한다.     

의존과 역할 사이에서 만족하거나 일탈하거나 참여하거나 이제 다양한 집단들의 분출과 순응은 건강하게 공존해야 한다. 물론, 언제든지 역사적 현실에 대한 면밀한 성찰이 필요하다. 하지만 과도한 가치 목록은 당장 사고(思考)의 경제학에도 위배 된다.
더구나 우리의 오늘은 행위를 규제하는 공통 가치나 도덕 기준이 없는 혼돈 상태다. 노이로제,비행,범죄,자살 따위와 같은 사회 부적응 현상이 만연하고, 분리감이나 고립감이 심화되고 있다.

공동선이 유의미하고 적합성을 가져야 비로소 공동체는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부조리들을 막아낼 수 있다. 문명간의 공존을 위한 '차이'를 인정할 수 있는 힘도 이런 자존감에서 비롯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