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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와 ‘가족위기’의 함수관계

▲ 62호 데스크 칼럼

편집국장 공인배

최근 부쩍 급증한 어린이 성폭행범들로 인해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유년기에 감당하지 못할 일을 겪은 충격은 평생 화인(火印)이 되어 가치관의 혼란을 일으키고, 공포와 적대감을 내재시키는 트라우마로 상존하면서 피해자와 그 주변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죽기보다 힘든 피폐한 영혼들이 속출하는 사이에 한편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그 이유는 대개 기댈 곳 없는 고달픔과 극단(極端)에 이른 허무감으로 나타나곤 한다. 우리 주변 사람들은 IMF 직후 10만명 당 19명이 자살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었으나, 좀처럼 그 추세가 잡히지 않고 증가세를 보였고 2005년에는 10만명 당 25명이 자살하는 등 자살률이 OECD 국가 중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균형을 잃은 광기는 우리들 내부가 맞딱뜨린 가족의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성폭행범들이 대부분 해체된 가족사의 이력을 지녔고, 어린시절과 청년기를 불우하게 지냈다는 수사결과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가족위기'는 외환위기 이후 무한경쟁시대를 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산물이며, '가족 영역' 혹은 '사적 영역'의 위기를 동반한다. 잘 알려진 연예인들의 자살은 두드러지게 '사적 영역'의 위기를 방증한다. 그들은 대체로, 가족 보다는 대중에 기대고 자신의 사적 영역이 대중의 영역에 매몰된 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는 돌아갈 곳이 없게 된 대동소이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지닌다. 아니, 그들은 돌아가려고 시도하기보다 대중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고 불나방 처럼 대중속으로 뛰어들다가 어느 순간 날개에 불이 붙었을 때는 죽음이 오히려 안식이 되었을 것이리라. 일반인이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대중'이 아닌 '사회'라는 대상만 다를 뿐, 그 처지와 이끌림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균열 정도가 아니라 붕괴된 양태로 다가서는 가족사를 조우한다. 2년 전 이맘때 통계를 보면, 같은 연령대 기혼자 가운데 24세이하 '젊은 부부' 이혼율이 1천명 당 남녀 평균 50명으로 나타났다. 20대 초반에 일찍 결혼한 100명 가운데 5명이 바로 이혼한 꼴이다. 지난 2000년의 이혼율이 1천명 당 남녀 평균 31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8년새 58%(18명)가 증가하는 등 결혼과 이혼을 가볍게 여기는 풍조는 더이상 놀랍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일찍 이혼하지 않고 결혼생활을 영위하는 부부와 그 가족들이 상대적으로 행복지수가 높다는 등식이 성립되지도 않는다. 한 재단법인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가족과 행복지수의 불일치(不一致)를 단적으로 명증한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에서 평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하루 2시간도 채 안 됐다. 배우자와 대화시간도 4명 중 1명꼴로 30분에 미치지 못했다. 자녀를 둔 맞벌이 부모들 입장에서 자녀와 마주하는 시간이 하루 30분도 채 안 되는 등 가족간 대화단절이 주된 고민거리였다. 게다가 평일 저녁시간과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75%가 TV시청, 81%가 비디오 시청으로 소비됐다. 이처럼 가족과 여가시간을 가지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부담(39%)이었다. 그래서,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부는 자녀교육 문제와 배우자와의 의사소통·대화 부족으로 배우자간 갈등 정도가 가장 심각했다

가족, '해체' 아닌 '치유'가 숙명

이는, 20년 이상 가족을 이루며 살아 온 부부 이혼율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2년 전 이맘때 통계청이 발표한 이혼통계 결과를 보면, 20년 이상 동거한 부부 중에서 한 해 동안 2만6,900쌍이 이혼해 전년보다 1,900건 증가한 실태를 보였다. 이는 한 해 동안 이혼한 16만6,500쌍 가운데 23%를 차지하며, 지난 2000년 대비 1.5배 이상 높아진 이혼율이다. 또 이혼한 부부들의 평균 동거기간은 12.8년으로 나타났으며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연령대별로는 40대 초반이 2만2,200쌍으로 가장 많았다. 이로 인해 자녀가 2명 이상인 부부의 이혼하는 빈도(43%)가 가장 높았다.

전통적인 가족주의가 쇠퇴하고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뿌리를 내린 현주소다. 7년 전 가계버블붕괴 이후 지속된 가계부채의 확대와 물가상승, 일자리 감소, 대규모 실업사태의 장기화 등 가족을 위협하는 경제위기로 가족간 정서적 유대감이 와해되고 다양한 가족갈등의 잠재요인이 누적되고 있다. 이는 이혼에 관대한 가족가치관을 형성하는 기제가 됐고 가족해체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특히, 이런 빈곤은 비행과 범죄율 증가로 이어지며 심각성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유수의 경제연구소들의 경제 전망에서 가족은 가장 큰 변수로 취급되는 시대가 됐다. 장기화되는 경제위기가 가족에 미치는 악영향과 사회불안, 동력 상실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심화를 거듭 발견하는데서 비롯한다. 우선, 가족의 삶을 악화시켜 미래의 희망을 담보할 수 없는 피폐한 형편이 지속되고, 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적 비용의 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또, 중산층의 서민화와 서민의 극빈화 등 계층의 하향화로 위기직면 가족이 양산되어 사회적 기반의 불안정이 가속화되고 있다. 불안정한 고용상태는 가정 공동화에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가족간 갈등.불화 등 가족관계 약화에 영향을 미치며,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유기와 방치의 위험성을 높여 자녀양육기와 중년기 가족 등 가족생애주기별로 다양한 문제를 야기하면서, 미래 상황에 대한 불안정성으로 이어져 출산이 기피되고, 이는 일상적.세대적 재생산이라는 개별가정의 기능의 혼란, 왜곡 등을 야기하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은 3년 전 경제위기 이후 전국가정폭력실태조사를 통해 "조사대상 가구 중 43.3%에서 부부폭력이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그러면서 '경제적 위기가 가족위기를 유발하는 것은 개별 가족의 선택이기보다는 사회변화로 인해서 불가피하게 겪어야 하는 비선택적인 상황'으로 진단했다. 따라서 당면한 문제를 가족내부의 노력으로 해결하는데 한계점을 갖게 되었으며, 가족단위에서의 노력뿐만 아니라 가정 외적 환경에서의 지원을 통해 해결이 될 수 있다는 방향성이 제시됐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이 현실적으로 제한적이어서 위기에 직면한 가족의 역기능과 빈곤을 예방하기에는 상당히 미흡한 실정이다.

결국, 가족주의 가치관의 복원이 긴요한 지형이다. 가족이란 어느 일방의 책임과 희생이 강요되는 불합리한 역학구도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인위적으로는 결코 끊을 수는 없는 관계망이다. 공존을 위한 무조건적인 희생과 협력은 다름아닌 그 자족의 관계망에서 발원한다. 해체가 아닌 치유를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다. 그 다음이 사회 안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