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이웃나라 어느 시골마을 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외모가 험상궂은 두 건달이 예쁘고 여리게 보이는 여자를 희롱하고 있었다. 버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건장한 남자들도 적잖게 눈에 띄었지만 모두가 모른 체 한다. 급기야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두 건달은 운전사에게 칼을 들이대며 정지할 것을 강요했고, 말을 듣지않자 흉악하게 날뛰며 마구잡이로 칼질을 한다. 운전사가 피투성이가 되어 나뒹굴자 두 건달은 버스에서 여자를 강제로 끌어내려 훤히 내다보이는 풀밭으로 데려가 돌아가며 성폭행을 한다. 사람들은 차창너머의 참혹한 광경을 슬금슬금 눈치보며 구경만 한다. 예순명이 넘는 버스안은 밖에 있는 두명의 무뢰한들에 의해 완전히 제압되는 듯 했다. 그때, 보다 못한 한 청년이 버스 밖으로 뛰쳐나가 그들과 싸운다. 건달들은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청년을 칼로 수 회 찌르고 달아난다. 여자가 흐느껴 울면서 주섬주섬 옷을 차려입는다. 여자가 버스에 오르자 아무도 말이 없다. 눈길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모두가 창밖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운다. 크게 다친 운전사는 버스 바닥에 누워있고, 여자는 헝클어진 상태로 운전석에 앉는다. 그때, 피를 흘리며 청년이 차에 타려하자 여자는 "왜 남의 일에 참견하는 거냐"고 화를 내며 버스 문을 닫아버린다. 절규 같은 목소리를 뒤로 하고 여자가 운전하는 버스는 출발한다. 청년은 몸안을 파고드는 통증보다 더 큰 버림받은 충격을 쓸어안고 시골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다 자동차 사고현장을 목격한다. 버스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승객이 모두 사망한 사고라는 경위를 교통경찰관을 통해 알게 된다. 저 아래 낭떠러지를 내려다 보니 방금 자신이 타고 왔던 바로 그 버스였다.

이 사건은 실화다. 이 얘기를 접한 이웃나라 사람들은 한 동안 냉정을 찾지 못했다. 언론들은 연일 그런 감정의 편린들을 쫓아가며 극한의 상황에 노출되었던 여성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좌절과 자포자기, 분노의 화신으로 이어지기까지 짧은 시간에 겪었을 여성의 심리적인 변화와 이를 둘러싼 사회병리를 심층적으로 파고들며 개선을 계도했다. 이렇게 경도된 감정은 '살인자' 여성을 영웅시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럴만큼 이 사건의 이야기 구조에는 특징적인 몇가지 패턴들이 내재한다.

우선, 거침없는 완력 앞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관심은 본능이다. 버스 안의 승객들은 두 건달을 자극할 경우와 숨을 죽이고 저항하지 않았을 경우의 패턴을 읽었으며, 결국 무저항을 선택해 생존과 진화를 담보하는 패턴을 보였다. 다음은 만신창이가 된 여자에 의한 승객들의 죄의식이다. 이는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에서 기인하며, 불안한 폭압적 생존의 조건을 적합하게 복원하려는 성찰에 따른 집단최면의 패턴이다. 또다른 패턴은 유약한 것에 대한 맹신이다. 버스안의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한 여성을 전혀 거부하지 않았고 방어시스템을 일절 작동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패턴은 속죄와 보상심리다. 대중은 여성이 모든 권한을 행사하도록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운전석을 장악한 여성이 자신들을 대신해 불의에 대항한 청년을 버려도 저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 사건을 접한 사람들에게서는 인과응보의 패턴이 드러난다. 분노한 여성에 의해 살해 된,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았고 그런 의사조차 없었던 승객들에게 부여되는 무가치성과 그에 대한 심판이다. 여기에서 여성은 범법자가 아니다.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협력도 하지 않은 구성원들, 혹은 사회적 약자에 반하는 '사회'를 응징한 집행자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현실 속에서 무관심은 여성이 설정한 사회의 악이며, 공공의 적이었다.

이는 위험한 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유사위험까지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고 단죄하려는 편집증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스캡틱'(과학저널)의 편집장 '마이클 셔머'는 이런 믿음의 실체를 바람과 맹수의 가설로 밝힌 바 있다. 그는, 생존의 갈림길에서 시행착오로 겪어 온 인류가 '긍정 오류'쪽에 경도 되면서 진화해 온 패턴성을 다음과 같이 예시한다.   

「오래된 과거, 맹수들이 득실거리는 아프리카 평원을 거닐고 있는 인류의 조상은 수풀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것은 위험한 맹수일까? 아니면 그냥 바람일까? 그 다음 결정은 그의 후손들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될 수 있다. 만약 수풀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위험한 맹수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바람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진다면 그는 인지 오류를 일으킨 것이 된다. 잘못된 '긍정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는 해가 될 만한 건 없다. 그냥 가버리면 된다. 좀 더 조심스러웠고, 조금 더 경계를 했을 뿐이다. 반면에, 만약 수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그냥 바람이라고 믿었는데 그것이 위험한 맹수였다면, 그는 '부정 오류'를 범한 것이고, 맹수의 점심꺼리가 되었을 것이며 그 후손들은 존재하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긍정-부정 오류 간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패턴 감지 문제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순간적으로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이런 때에 우리는 "모든 수풀의 부스럭거림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위험한 맹수다"고 인지하는 쪽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불신'은 불편하고 '믿음'은 편하다는 것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그저 모든 패턴이 실제라고 믿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진화해 왔다.

   죽은 악(惡)보다 더 위험한 '무관심'

우리는 믿고 싶어 한다. 믿지 않을 경우의 리스크가 더 크기에 우리는 온갖 종류의 것들을 그냥 믿고 이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왜 그 날 버스 승객들은 '긍정 오류'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여자가 두 사람의 건달 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 였는데, 어떻게 '부정 오류'를 범하게 된 것일까. 여기에는 너무나 뚜렷한 이유가 존재한다. 바로 정신적 공황이다. 돌발적인 상황에 대한 충격과 여러가지 뒤섞인 감정에 갇혀 패턴 검색의 두뇌 프로세스를 작동시키지 못한 탓이다. 예컨데 포효하는 맹수를 코 앞에서 조우하고 맥이 풀려 그대로 주저 앉아버린 경우와 같은 현상이다.

그렇다면, 사고 이후 사람들의 반응은 무엇인가. 60여명이 넘는 버스 승객들 가운데 아무도 힘을 과시한 사람은 없었다. 저항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성은 어떤 기회나 여지도 주지 않고 버스를 벼랑 끝으로 돌진해 갔다. 사람들은 그 살인귀 여성의 잔혹성이 두 건달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을 조명하는 대신, 무관심의 폐해에 대한 경종에 더 무게를 뒀다. 명백한 '부정 오류'다. 그러나 우리는 여성의 죄를 인정하고 여성을 단죄하고자 할 때, 여성이 우리 앞에 현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여성은 더이상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반면, 두 건달과 '무관심'은 당장 사회 불안을 야기하는 행위자이거나 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