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우리는 쉬지 않고 특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며, 끊임없이 새로운 결과물들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인류의 숙명이며 진보의 원천이다. 앞선 결과물은 특정지어진 질량이나 가치의 한계를 드러내며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깨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도공(陶工)이 완성된 도자기를 깨거나 혹은 남기지만, 이내 새로운 작업에 매달리며 미완의 과정에서 훨씬 더 몰입하는 이유다.

아이디어와 설계가 총합을 이룬 누군가의 결과물이거나, 혹은 특정한 의미가 부여된 누군가의 목표지점이거나 도달된 유·무형의 특정된 가치는 경직성을 지닌다. 굳어간다는 것은 유기체의 죽음을 의미한다. 도자기처럼 무기물로 형태를 이루고 빛깔을 지니는 것은 언제나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한다. 경직은 멈춤이며 소멸의 시작이다.      

우리의 사고체계에서의 경직은 고정관념이다. 이는 편견이나 부정적인 습관 같은 것들의 축적에서 비롯하며, 그것은 현상의 꼴을 왜곡시키고 판별력을 방해하는 프리즘이 된다. 이것의 속성은 편향이다. 수직적 사고를 비롯한 흑백논리, 권위주의 등은 그 전형적인 드러남이며, 이는 유연한 사고의 구동을 가로막아 소통부재의 사회를 조장한다. 무엇보다 고정관념은 변화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며,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려는 유목민들을 거세(去勢)하는 퇴행의 기제다.

고정관념이 만연한 사회는 정해진 영역 또는 이미 구축된 본디의 목적이나 길, 사상, 규범, 조직 따위에 사람들을 묶고, 그로부터의 일탈을 허용하지 않는 폐쇄성을 지닌다. 이런 길들여진 것들이 '길'이 되는 세상에서는 사고의 다양성이 설자리를 잃고 불균형이 심화된다. 가치의 주객이 전도된다. 절대적 가치는 밀려나고 상대적 가치가 사회적 규준이 된다. 목적과 수단, 내용과 포장, 원인과 결과의 본말도 전도된다.

우리는 많은 거리를 달려 왔다. 무수히 많은 결과물들을 파괴했으며 그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구촌은 문물의 국경을 허문지 오래되었고, 다른 행성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통합적인 사고를 저해하는 고정관념의 망령과 함께 살고 있다. 우선, 좌파는 북한과 내통하는 빨갱이고, 우파는 잔존 친일세력이라는 터무니 없는 등식이 사회지도층을 비롯한 학계와 정계를 지배하고 있다.

정녕 이 나라는 여전히 북한의 공산주의와 일본의 제국주의가 혼재하고 있다는 말인가. 혹은 우리의 민주주의는 허상이며, 우리는 절반으로 나뉘어 한 무리는 소련의 식민(植民)이고, 한 무리는 일본의 식민(植民)이라는 말인가. 부당하게도 우리는 그런 질문에 다른 대답을 하지 못하는 지도층을 목도한다. 한 세기에 걸친 격변은 우리가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 겪어야 했고, 그래서 피하지 못한 채 입었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주도적으로 새로운 역사를 쓴지 오래고, 치유기간은 결코 적지 않다.

환부에 생살이 돋지 않는 것은 자생력을 잃었다는 반증이다. 특히,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이런 순환불가의 좌·우 이념과 궤를 같이한다. 그들만의 세상은 벼랑끝이다. 이런 눈먼자들의 세상에서 그나마 이 나라의 번영을 견인하는 이들은 생존을 위해 자신을 비우고 모든 가능성에 도전해 온 유목민들이다. 결단컨데, 그들이 넘을 수 없는 선들을 이들 유목민들은 무수히 넘나들어왔다. 처음부터 유목민들의 장애물은 단단하게 고착화된 그들의 관념이었다. 내부의 길은 유목민들에게 여러모로 위태로운 험로였다. 지금도 유목민들의 내부 지형은 별반 나아진 바가 없다.

전시작전권 문제를 단적인 예로 들어보자. 4년 전 노무현 정부는 한미연합사령부가 행사하도록 되어 있는 전시작전권을 대한민국 국군으로 환수하기로 방침을 정했고, 2009년 10월 22일 한미안보연구회 국제회의(SCM)는 당초 노무현 정부가 제시한 2012년 4월 12일자 환수를 재확인 했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과 군 원로 등 보수진영은 이를 두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빨갱이들이 하는 짓으로 규정하고 참으로 입에 담기 조차 어려운 모욕을 일삼았다. 이런 극렬한 반발은 한·미간의 합의 이후에도 계속되어 이명박 정부에서 재론되기에 이르렀으며, 지난 6월 27일에는 한·미 양국 대통령이 만나 전시작전권 환수를 2015년 12월로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본질은 '완전한 독립'의 문제다. 해방 이후 60년 동안 군사주권을 갖지 못했던 우리였다. 미국은 전시작전권 반환을 거절하지 않고, 그것을 조건으로 미군 철수를 시사하지도 않았다. 제국주의를 지향하는 미국에게 한반도는 전략적 요충지다. 전시작전권 유무와 관계없이 한반도 내의 미군 전력 증감은 국제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할 것이며, 전쟁억지력을 상실할 만큼의 한반도 주둔군 감축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입장이다. 50년 동안 대한민국에 군사적 투자를 해 왔다고 주장하는 미국으로서, 우리 영토내 자국 주둔군에 대한 우리의 운용비용 분담을 가중시킬 것이 분명하다. 특히, 실질적인 면에서 어떤 형태로든 우리 영토 안에서의 군사적 통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퇴행에 쏟아 붓는 천문학적인 비용

지난 3월 천안함 사건 이후 우리 군부의 무능은 백일하에 드러났다. 건군 이래 거의 전시 기획, 통제 경험이 없는 군부의 현주소를 방증했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 3개월 뒤에 우리 정부는 전시작전권 환수를 3년 더 연기했다. 폐쇄적이고 경직된 관념의 프레임에 사로잡힌 우리의 자화상이다. 무의미하고 비실용적인 주장들이 쉬운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

통일을 위한 자구적 역량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런 고정관념의 폐단은 비단, 군사적 문제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수직적 사고와 흑백논리, 권위주의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습관이 된다. 일상의 본 궤도를 일탈해 있지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편견의 토양이다. 우리사회의 고정관념 때문에 우리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하면서 역발상의 싹을 지속적으로 잘라내고 있다. 좌파와 우파의 갈림과 대립·충돌은 우리민족 고정관념의 근원적인 문제가 되었다. 사회전반에 도사리고 우리를 휘감아 어둠속으로 잡아끄는 망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