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나는 한 일이 없습니다" 한 사람이 사는 법이다. 그는 자신의 주변이 널리 이롭기를 바라고, 필요하다면 자신의 살점이라도 떼어내어 나누는 사람이다. 한사코 자신의 발자국을 뒷걸음질 쳐 지우며 그늘에 가리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는 늘 다른 뜻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는다. 최소한, 당장 남들이 알지 못하는 반사이익을 얻고 있을 것이라는, 또는 장차 그가 걸어갈 노정에서 그것을 활용할 것이라는 추측의 대상이 된다. 이는 그런 한 사람의 복제를 가로막는 장애다. 약자가 포식자의 먹이가 되는 일상의 역기능이다. 그 한 사람은 이런 분위기에 까지 초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한 사람은 소년소녀 가장 옆에서 맴돌고, 혹은 독거노인이거나, 생활이 불편한 사람을 지키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남을 보살피고 남이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나눔'은 단순히 행동에 그치지 않고, 지극히 어려운 자기극복의 산물이다. 대개, 누군가가 그를 필요로 할 때 그는 풍요롭지 않다. 남보다 덜 먹고 덜 누리는 것이 그가 나누는 방법이다. 주는 기꺼움은 내밀한 떨림을 일으키고 그 공명에 영혼이 춤추는 것을 그는 은밀하게 간직한다. 이렇게 아낌없이 주게하는 동력은 결코 맹목적인 데서 생겨나지 않는다. 반드시 보상이 있으며 남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그런 가운데서 그가 그보다 더한 희열을 안겨 줄 환경이나 대상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나눔을 줄이면 개인적으로 휠씬 더 큰 쾌락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는 재화가 한 사람에 과도하게 집중되면, 그 자신과 재화가 동시에 소모된다는 것도 안다. 그걸 작게 여럿으로 나누면 여러 사람의 희망이 생산되고, 그들 열린 내부에 파동이 전달된 데 따른 빛 무리의 군무를 만날 수 있다. 그는 그 모든 것을 알지만 그런 것에 관심 조차 없다. 그저 나눔이 습관인 것 처럼 보인다.

"내가 불우이웃입니다" 다른 한 사람이 사는 법이다. 그는 경제활동으로 바쁘고 주어진 여가시간도 언제나 부족하다. 관리할 사람도 많고 술과 음식을 나눌 사람도 줄지어 있다. 더 좋은 생활환경을 만들고 더 나은 여가를 위해 재화를 아낌없이 쓴다. 자동차와 집을 그 모든 노력의 결실로 여긴다. 더 비싼 것을 소비하고 자녀가 고가의 학원을 다니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삼는다.

무한경쟁의 정글에서 일류를 열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일류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는 걸 드러내 보여서 경쟁자의 도전을 억지(抑止)하는 효과를 노리고, 그걸 과시하면서 허영을 채우는 효과도 거둔다. 또, 일류가 되었을 때 그 이전에 접근하지 못했던 부(富)의 원천을 다른 일류들과 공유 할 수도 있다. 부는 부를 낳고 불로소득을 낳는다는 힘의 법칙을 그는 신봉한다. 그에게 재화는 쟁취하는 것이며, 생존에 필요한 소비나 재투자가 아닌 자선(慈善)은 무가치 한 것이다. 혹은 죄악일 수도 있다.     

누구나 노동에 의해 재화를 획득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정글을 지배하는 불문율의 존립에 직접 기여한다. 노숙자와 같은 의지의 결핍에 따른 무위(無爲)를 용납하지 않고, 노동의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을 정글법칙에 따라 마땅히 도태되어야 할 대상으로 분류한다. 그들의 무능력이나 무기력은 그 스스로의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노동현장의 생산성 저하에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그들을 돕는다는 것은 그가 한사코 지키려고 하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이는 나아가 무위도식자들을 양산하는 꼴이 되어 그가 생산하려고 하는 부의 자원이 고갈되는 역작용이 일어난다. 그가 인식하는 적자생존의 원칙과 신념은 그렇게 고착상태다.

나누는 이와 독차지하는 이를 선악의 기준으로 평가하기는 쉽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신념의 문제다. 특히, 나눔을 실천하는 이는 자신이 다른 한 사람을 규탄하는 빌미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또한 도움이 필요한 이는 자신이 경쟁대열에 있다는 명확한 현실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독차지 하려는 이들의 독선이 우리의 주류사회를 지배하지만 물리적으로 제동을 걸 수 없는 이유다.   

단지, 우리가 표면적으로는 영묘한 힘을 가진 동물중의 우두머리로서, 혹은 동물이라는 점을 잊을 정도로 간혹 자신의 신성(神聖)에 도취되기도 하는 영장(靈長)류로서, 자신을 종교에 의탁하고, 고행과 금욕으로 탐욕을 제어하는 데서 '나눔'의 당위를 찾을 수 있을 따름이다. 본질적인 면에서도 고독하고 미약한 존재로서 사랑의 근원인 신성(神性)을 닮기를 열망하고 신을 섬기듯 사람을 섬기는 희생, 혹은 스스로 신이 되고 성전(聖殿)이 되어 텅빈 충만에서 오는 자비심에 기대어 느릿느릿 걸어가는 연말연시를 소망해 본다.   

성탄절에 만나는 아픔

“종교의 구도(求道)라는 것은 '진리'라든가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얼마나 알차게 사는가의 문제다.” 라는 카렌 암스트롱의 깨달음에 이끌리는 마을 안 길에 서서 성큼 다가온 성탄절을 생각한다. 신앙인(구도자)은 초인간적 인격체나 천국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온전히 사람답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마호메트, 붓다, 예수의 원형은 모두 충만한 인간성의 상징이다. 사람은 누구나 거룩해질 수 있다. 자기 안에서 그걸 깨달아야만 완전해질 수 있다. 참다운 종교는 사람을 더욱 사람답게 만든다.

동의한다. 아픔을 부정하는 사람일수록 남의 아픔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쉽다. 어느 종교든지 아픔을 맨 위에 놓는 이유다. 아픔은 피할 수 없다. 현실이다.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면 올바르게 살아 갈 수 없다. 아픔은 동정심이 모든 신앙의 중앙에 위치해 있게 하는 중력이다. 내 마음을 들여다 보고 나를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가 알아낸 다음 남들 한테도 비슷한 괴로움을 안기지 않도록 애쓰는 것, 그 황금율이 다가올 성탄절을 관류하여 2011년의 지표가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