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차면 스스로 모두 비워버리는 '잔'이 있었다.

내용물이 7할 이상 채워지면 깨끗하게 새어나가는 이 술잔은 고대 중국 춘추시대 어간에 과음을 경계하는 누군가가 술을 조절하는 의미를 담아 만든 것이 그 기원이다. 사람이 추하게 될 정도로 마시지 않으려는 이 경계심은 춘추오패 중 하나인 제환공(齊桓公)의 곁에 와서는 '늘 마음을 추스르고 가지런히 하는' 신물(神物)이 되었다.

훗날 제환공의 사당을 찾은 공자(孔子)는 이 그릇을 보고 인간의 끝없는 욕심과 지나침을 경계하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지표로 세웠다. 이날을 기록한 순자(荀子)에서 공자는, 그릇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도 술이 새지 않다가 일정 이상 차오르면 술이 새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라는 모습이다. 사이펀의 원리와 같은 과학적인 관심보다는 관념적인 면에서 받은 충격이 기록 전반에서 드러난다.

'사람 자체가 본질적으로 바닥에 구멍이 뚫려 지나치게 담으면 새는 그릇'이라는 공자의 깨달음이 당시의 상황을 지배한다. 적당한 욕심은 몸과 마음에 필요하지만, 넘치면 독이 된다는 확인이 이어진다.

이날 "총명하지만 어리석음을 지켜야 한다"는 공자의 설파는 단순히 처세훈(處世訓)에 그치지 않는다. 총명은 경쟁사회에서 우월한 무기이지만, 지나치게 드러내면 다수의 적에게 표적으로 노출된다. 따라서 어리석음으로 총명을 가리는 것은 안전을 도모하는 노력이다. 그보다 관계를 끊임없이 계산하는 어리석은 총명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먼저다. 오로지 승부를 위해 투쟁을 일삼는 피곤한 삶을 경계한 지혜가 깔려 있다. 총명이 공기(公器)에 담겨 널리 이롭게 쓰이기를 바라는 뜻이 함께 한다.

공자는 또, 이 날의 가득참을 경계하는 술잔 '계영배(戒盈杯)'를 통해, "천하에 공을 세우고도 겸양하고, 용맹을 떨치고도 검약하며, 부유하면서도 겸손함을 지켜야한다"고 제자들에게 일렀다. 내세우지 않고 섬기는 유가의 도덕률은 자신을 지켜 모두에게 이르는 '길'이 되었다.  

계영배는, 술은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기에 신들의 음식이라고 믿었던 때에 처음 만들어졌을 법 하다. 신들 조차 냄새로 취하는데 사람이 술을 이길 수는 없다는 순리를 일깨우기 위해서 였을 터다. 그런 연유로 계영배는 제자백가를 통해서 전해지지 않더라도 그 스스로 종교가 되어 세상을 정화해 온 듯 하다. 조선 후기의 도공 우명옥 또한 사람의 한계를 망각하고 방탕했던 자신의 삶을 뉘우치면서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임상옥은 이 계영배를 얻은 이후 사람의 과욕을 경계했고, 이는 임상옥을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거상으로 거듭나게 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임상옥은 계영배(戒盈杯)를 통해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아야 하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아야 한다'는 천리(天理)를 보았다.

그는 막대한 재화를 벌어들이면서도 자신의 욕심이 지나치게 커질까봐 경계를 했다. 나아가 빈민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임상옥은 나누어 주는 일을 작위적으로 하지 않았다. 어느정도 부가 쌓이고 그것이 지나치다 싶으면 자연히 쏟아져 내리게 하듯이 순리를 따랐다. 한낱 술잔에 지나지 않는 계영배는 임상옥에 이르러서 나눔의 도리까지 일깨운 상징물이 된 것이다. 임상옥의 계영배에는 '가득 채워 마시지 말기를 바라며, 너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는 추상같은 그의 뜻이 새겨져 전해 온다.  

사람의 욕심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쪽으로 커지기 마련이고, 과도한 욕심은 반드시 부작용을 야기한다. 이것은 다른 설명이나 입증이 필요없는 중력의 법칙과 같은 것이다. 실제로 신비한 술잔으로 알려진 계영배는 중력을 이용한 과학의 산물이다.

계영배의 중심부에는 둥근 기둥이 서 있고, 기둥과 연결된 밑바닥에는 외부로 통하는 구멍이 뚫려있고, 바닥 부위의 기둥에도 구멍이 뚫려있다. 기둥 안에는 빨대를 말굽 모양으로 구부려 놓은 관이 있다.

술을 관의 맨 윗부분 높이보다 적게 따를 경우, 잔 내부의 수압과 기둥 내의 대기압이 같기 때문에 술이 새지 않는다.

하지만 술을 기둥속 관의 위까지 차도록 계속해서 따를 경우, 잔을 채운 수압이 기둥 안쪽의 대기압보다 커지고, 잔 아래 구멍으로 연결된 관은 술이 빠지는 만큼 진공상태가 되므로 술이 잔 밑바닥과 연결된 통로 끝까지 빨려 들어간다. 이로 인해 술이 잔 밑바닥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중력을 어기는 웅포골프장

이 계영배는 최근 상궤를 벗어난 웅포골프장 관계자들과 그 이권을 둘러싼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전라북도는 업자의 협약불이행은 온전히 방기하고, 중대한 협약변경을 주도하면서 업자에게 막대한 특혜를 제공해 왔다. 이번에는 자치단체의 손해를 더 키우지 않으려는 익산시의 정당한 조치를 묵살하고 나섰다.

도저히 성립되지  않는 골프 비전을 볼모로 더이상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이한수 시장의 결단이었다. 자고로 자위권이란 초법적인 성격을 지닌다. 특별히 위법한 결정도 아닌 일에 월권의 잣대를 들이댄 배경은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웅포골프장 게이트는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들은 지나친 것을 원하기에 반드시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웅포골프장의 문제는 이미 감사원의 감사결과와 처분지시에서 충분히 드러났다. 업자는 사업계획상 공익시설을 조성한 사업비까지 다 썼지만 골프장만 조성한 상태다. 5백억원 가까이 증발한 셈이다. 웅포골프장을 계영배로 본다면 탐욕이 7할을 넘은지 오래다. 업자가 내부에서 사업비를 빼돌렸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빠져나가서 재원이 바닥을 드러냈을 것이 확실하다. 전라북도가 협약을 변경해 사업기간을 연장해 준지 벌써 4년이 흐르지 않았던가. 여기에는 제환공이나 공자는 커녕 장사꾼의 계영배조차 없다. 그렇다면 전라북도지사가 곁에 둔 것은 계영배인가 아니면 권모술수 방면의 서목(書目)을 모아 담은 술수략([術數略)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