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소원을 빌며 달집을 태운다. 불 꽃 저 너머에 소원을 들어 줄 존재는 있을까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유한(有限)하나 영속(永續)을 꿈꾸는 인간의 원초적인 기원이 있을 따름이다. 사람이 사람을 낳고 염원은 반드시 승계되며 당대의 신화(神話)는 여러대를 거쳐 각기 다른 양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는 한, 자신의 바람은 후대에라도 이뤄진다는 확신으로 마주하는 달집이다.

결국 달집은 무능력한 자신이며, 불타는 달집 저 너머에는 신화를 창조하는 새로운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닐까.

성공신화는 지표다. 멀지만 도달할 수 있고 막연하지만 접근 할 수 있는, 사람의 길이다. 그 지표를 읽는 범례는 없다. 가르키는 지점을 향해 굳세게 묵묵히 가야 할 뿐이다. 영웅은 그 길 위에서 불굴의 의지를 지닌 자가 되었다.

다만 당대의 영웅이 되려면 때를 만나야 했다. 장자(莊子)가 말한 크기가 몇천리나 되는 새, 붕(鵬)은 날아오르면 하늘을 덮은 구름과 같지만, 태풍이 바다 위에 불어야 남쪽 바다로 옮겨 갈 수 있다. 그 때 붕은 날개로 물을 쳐서 삼천리나 비상하고, 빙빙 돌며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리나 올라간다. 

거인들의 신화는 그런 곤붕과 꼭 닮았다. 대개 큰 것은 서두르지 않는다. 아직 붕(鵬)이 되지 못한 물고기 곤(鯤)은 수면아래에서 때를 기다리며 존재의 도리를 다할 뿐이다. 마침내 새로 환골탈태하여 때에 이른다는 것은, 큰 날개를 띄울 두텁고 강한 바람을 만난다는 것이다.

구만리를 오르되 자신의 날개 보다는 태풍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거인과 붕의 공통점이다.        

현대사를 풍미했던 가장 위대한 기업인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위기를 바람으로 삼아 날아 오른 대표적인 붕이 아닐까 한다.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자전거 점포의 점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그는 23세에 '마쓰시다전기'를 창업, 훗날 '내쇼날' 브랜드의 창조자가 되었으며, 94세의 나이로 운명할 때까지 산하 570개 기업에 종업원 13만 명을 거느린 대기업의 총수 자리에 있었고, '지난 천년간 가장 위대한 경영인'으로 뽑힌 바 있다.

그가 깨달은 지혜는 불황의 한 가운데서 경영인들의 지표가 되고, 그의 생전 행적들은 시공간 도처에 남겨져 경영인들의 순례 대상이 되고 있다.

그는 일본 경영자들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기업은 끈임없는 기술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물건을 만들기 전에 사람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지론을 경영의 중추로 삼았으며, 이같은 신념은 그가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

고노스케가 회사 창립 40년만에 닥친 위기를 기술혁신으로 정면승부했던 점은 그의 경영철학을 단적으로 명증한다. 당시 마쓰시다전기로부터 라디오를 납품받던 도요타는 납품가격을 20% 내리지 않으면 거래를 끊겠다는 통보를 해 온다.

제품의 이익이 3%에 불과해 산술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요구였다. 전사원들이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공황상태에 빠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쓰시다는 제로베이스에서 해법을 찾았다. 기존의 제품에 매달리지 않고, 품질을 더 높이면서 비용을 20% 이상 낮추는 새 제품생산의 길을 택한 것이다. 

200년 앞을 내다보며 인재의 숲을 가꾸어 낸 그의 경영수업은 한 국가를 대표하는 기업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의 분신들은 결국 그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제인의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이다.

그가 사람을 기업의 경쟁력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은 만들어진다"는 확신에서 기인했다. 그 자신이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났고, 지독하게 불행한 유년시절을 딛고 일어섰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성공을 이룬 고노스케가 자신이 가난했던 것과 허약했던 것, 못 배운 것을 오히려 하늘의 은혜로 회상한 대목은 오랜 세월 동안 큰 울림이 되고 있다. 그는 가난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서는 잘 살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또 허약하게 태어난 덕분에 건강의 소중함도 일찍이 깨달아 몸을 아끼고 건강에 힘써 90살이 넘었어도 30대의 건강으로 겨울철 냉수마찰을 할 수 있게 됐다.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했기 때문에 항상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나의 스승으로 받들어 많은 지식과 상식을 얻었다.

유년기에 가족 중 대부분을 사별하고 어머니가 그리워 매일 밤 눈물을 흘리던 울보 고노스케는 자신의 불행을 역경을 이겨내는 초석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런 역발상을 가능하게 한 근원에은 그의 긍정적이고도 열정적인 마음이 있었다. 신념과 희망에 넘치고 용기로 가득해서 나날이 새로운 활동을 했던 그의 강한 체취는 잡초 같은 불굴의 의지에서 뿜어나왔다.

 "성공할 때까지 계속한다면 실패란 존재하지 않는다. 성공만이 있을 뿐이다. 실패를 하는 이유는 실패한 채로 중단해 버리기 때문이다." 고노스케가 인재의 숲에 쉼없이 던진 지표다.

고노스케 사후 12년 신묘년 2월 중순, 새로운 목표를 세웠던 이들이 작심 삼일을 한탄하는 즈음에 고노스케의 길이 보인다. 하늘이 우리에게 각각 내려준 존엄한 길, 어떤 길인지 알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은 갈 수 없는 길, 나만이 걸을 수 있는 두 번 다시 걸을 수 없는 소중한 길, 어쨌든 쉬지 않고 가야 계속 열리는 길.

그 길 위에서는 조바심이 없다. 고노스케가 당대에 뜻을 이루었다면, 그것은 지속적으로 물러섬이 없이 나아간 전대의 염원들이 적당한 때를 만난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른채 거치른 길을 천천히 나아가는 '나'가 곧 영웅이다. 아직 곤의 신화를 쓰지는 못했더라도 물속에서 유영하는 곤의 한 지점이다. 오늘 불타는 달집 너머에서는 우리의 뒤를 이을 또 다른 우리의 길이 이어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