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일본은 독특한 나라다. 열도 동북부해안 쪽에서 지진이 일어나 도시 몇개가 사라지고 수만명이 쓰나미에 휩쓸려 수장 된 나라치곤 너무나 질서정연하다. 폐허 위에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은 없다. 적어도 메스컴에 투영되는 일본사람들은 어디에서나 줄을 서고 남들이 놀랄 정도로 절규하지도 않았다. 세계는 안정된 나라 일본을 극찬했다.

지속적인 학습과 대피훈련 덕분이다. 지진의 강도별 시뮬레이션 안에서 행동요령을 부여하고 반복 대응훈련을 거듭했다. 이번에는 예상보다 큰 지진이었고 미처 피할 겨를이 없어 피해를 입었을 뿐이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사후 수습과정에서도 숨을 죽이고 지침에 따라 철저하게 행동할 것이다. 일본은 그렇게 믿었다.  

공포에 길들여져서 실제 재앙 앞에서 담대하며, 통제에 익숙해져서 억압에 순응한다. 국수주의가 선별한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이면서 난민들에게 장기적인 희생을 강요해도 동요하지 않는 국민성이다. 나라의 자존심을 위해서 자신들이 겪은 참상과 그 고통이 국제사회에 투시되지 않는 것에 대해 침묵한다. 인내가 그들이 존재하는 방법이다.

방사능 위험도 국익 때문에 자체 해결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일본이다. 이대로는 잔해 아래 엎드린 국민과 잔해를 뚫고 올라 올 새 생명의 토양이 미래를 담보하지 못하는데도, 자국의 기술력으로 재난을 수습하겠다는 태도는 완고하다. 절체절명의 위기상황 속에서도 이 섬나라는 국제 무대의 중심에서 물러서려고 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가라앉을 것이라는 강박이 죽음을 건 고군분투의 근원이다. 그들은 섬나라의 숙명인 '고립'과 '침몰'을 학습하고, 국수주의를 본능적으로 체득한다. 경쟁에 단련되지 않거나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면 제2 제3의 영토를 확보할 수 없다는 당위를 통제의 수단으로 삼는다. 그들의 생존은 죽음을 짊어진 역설이다.

일본을 끌고가는 지배층은 그런 국민들의 위험수위에 도달한, 그러나 만연한, 짓눌린 심리상태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독도와 같은 분출구를 찾지 않으면 머지 않은 미래에 통제불능 상태로 떨어질 수 있다는 조바심에 사로잡혀 있다. 외부자극에 방어태세를 갖추는 비판, 영토확장과 같은 모험적인 생각들은 국민을 응집의 대열 안에 순치시키려는 계략의 산물이다. 일본은 국제무대에서 우월하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폐쇄적일 수 밖에 없다는 망상과 희생의 강요가 일본 열도를 지배하는 배경이다.

경제논리가 지배의 씨줄과 날줄이 되는 나라. 그 경쟁지상주의는 재앙 앞에서 조차 전체주의적 가치를 위해 억압을 정당화하고 개인의 불행을 뭉개버린다. 언론 역시 국익을 위한 엠바고(보도 자제)에 능숙하다. 정부가 나서서 보도를 관제할 필요도 없다. 그들 언론의 일등시민이라는 자기도취에 빠진 가미가제식 충성법이 다 알아서 한다.

이렇게 물샐틈 없이 촘촘하게 일본 열도를 관류하는 터무니없는 사고법(思考法)은 체질화 교육의 소산이다.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표기하는 망동은 그 효과가 그만큼 유혹적인데서 비롯한다. 일본의 모든 질서, 그 시스템의 시작은 학교다. '무한경쟁'이라는 신화를 확산하면서 통제의 기틀을 다지는 곳, 국가와 개인의 틈을 섬나라의 특수성으로 메워버리는 모순의 산실, 그런 음험하고 교묘한 학교의 시스템이 언제까지 작동할 것인가.

정부에 더이상 의존하지 않고 국제사회에 직접 도움을 요청한 후쿠시마현 미나미 소마시의 시장 사쿠라이 카츠노부는 학교화한 일본사회의 변화를 이끌 단초가 될까. 미나미소마시는 일본 동북지역에 위치한다. 지진과 쓰나미로 지상위의 건축물과 기반이 초토화 된 도시다. 그나마 살아남은 2만여명의 시민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위험에 노출됐다. 최소한의 기초생필품 조차 바닥난 상황이다. 굶주림과 질병에 맞서면서 제한된 정보 때문에 고립된 지역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원전사고 이후 그들을 대피명령으로 격리시켰다. 이럴 경우 집안에만 머물도록 교육받은 그들은 물품을 공급받지 못하지만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기아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몇몇의 공무원들과 함께 고군분투하던 사쿠라이 카츠노부 시장은 범지구촌 차원의 도움을 요청했다. 물자 지원은 물론이고 약간의 방사능 피폭을 감수하고 물류를 옮겨줄 외부세계의 자원봉사자들을 갈망했다.

카츠노부는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반역자다. 그의 조국은 건축물의 내진 설계와 지진 대비 훈련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싶어 한다. 건축물이든 인명이든 정확한 피해 수치를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은 나라다. 거기에서 비롯한 억압은 개인이 꾸리는 삶의 영역을 점점 좁히고, 개인의 능력을 점점 쇠퇴시키며, 개인의 삶을 제도로부터 철저히 소외시키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 국민의 일방적인 희생을 전제하는 비인도적 통제는 허위에 기반한다.

카츠노부와  카이스트

신조차도 할 수 없는 것,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해 누군가를 조작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그들의 오만은 머지않아 종언을 고할 수 밖에 없다. 안정과 부국강병의 환상속에서 작동하는 비정하고 반동적인 통제는 개인이 더이상 버티지 못할 때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일본의 교육학이 추구하는 것은 '개인은 곧 전체'다. 그래서 개인의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지는 도미노를 감수해야 한다. 더구나 일본은 억압과 고립을 통해 얻고자 하는 실리도 잃었다. 2011년 4월 14일 현재 50개국이 일본 식품 수입을 제한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따른 방사능 유출도 더이상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우려해야 할 것은 방사능이 아니라 우리가 답습하는 일본의 교육학이다. 올 들어 4명의 학생을 자살로 내몬 카이스트는 그 단적인 폐해다. 학점에 등록금을 매기고, 전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억압의 명분은 일등학교와 그 일원들의 일등화 기도(企圖)다.

신자유주의의 핵심동력인 무한경쟁을 앞세워 궁극적으로는 대학의 우월성과 이익을 구가하는 양태다. 카츠노부나 자살을 선택한 카이스트의 학생들은 결국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환상의 수단인 억압'이 산자을 더이상 죽음으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