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우리의 사법 저울은 범죄의 양형을 결정할 때 고의성을 추로 삼는다. 범행의 목적에 따른 사전 계획과 실행이 있었다면 중형을 면키 어렵다. 반면, 나이가 어리거나 정신적인 장애가 있어서 행위의 옳고 그른 것을 판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책임 무능력자로 그 범죄에 대해 처벌받지 않는다.

이렇게 시비판별과 판단능력을 생물학적 요소를 기준으로 검토하는 제도는, 피해를 입은 쪽에 그 피해를 그대로 감수하도록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범죄자가 책임을 면제받기 위해 책임 무능력 상태를 위장하는 등 악용되기도 한다. 이렇게 부작용이 많은 데도 이 제도가 그대로 운용되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모르는 사람은 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행위를 단죄하는 실정법의 존재, 행위의 결과, 벌의 목적 등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라면 결국 그에 대한 '처벌'은 실익이 없다. 법이 인과응보를 가치로 삼으며,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범죄의 예방인 이상, 법은 행위자의 '인식' 상태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못한다.

하지만 이는 모호한 태도를 낳기도 한다. 보통사람들이 잘 모르고 법을 위반했을 경우 면책받아 마땅하다는 주장을 펼치거나 처벌을 거부하며, 처벌을 받은 뒤에도 죄의식이 희박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실체 없는 법에 대한 회의는 법이 지닌 범죄 '예방' 또는 재발방지 '목적'을 달성하는데 사실상 큰 장애요인으로 상존한다.

그러나 종교는 이 '인식'에 다른 관점을 지닌다. 밀린다왕문경에서 고대 그리스 왕국 통치자였던 메난드로스는 “악을 알고 저지르는 자와 모르고 저지르는 자 가운데 어느 쪽의 재앙이 더 크냐" 고 물었다. 이에 인도의 승려 나가세나는 "지글지글 펄펄 끓는 뜨거운 불꽃이 치솟는 쇠 덩어리를 한 사람은 모르고 잡았고 또 한 사람은 알고 잡았다면 어느 쪽이 더 심하게 손을 데겠습니까"라고 반문하며, "모르고 저지르는 악의 재앙이 더 크다"고 답한다.     

잘못을 인식하는 정도를 무게로 친다면, 힘들게 가져왔던 큰 돌은 본래의 자리에 되돌려 놓기 쉽지만 가볍게 가져왔던 작은 돌들은 가져온 자리를 기억하지 못해서 제자리에 돌려놓기 어렵다는 현자의 가르침이 크게 다가온다. 알고 저지르는 일과 모르고 저지르는 일이 그와 같다고 하니, 자신의 잘못에 대해 가책했다면 큰 돌을 본래자리에 갖다 놓는 것과 같고, 자신의 행위가 죄인지 모를 경우 수많은 작은 돌을 돌려놓지 못하는 것과 같다.     

뉘우침은 죄를 짓지 않으려는 노력인 반면, 뒤돌아 반성할 기회조차도 없는 것이 모르고 짓는 죄다. 뉘우침이 없으면 자꾸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 죄를 모르는 것은 죄에 더욱 깊이 빠지는 것이다. 자신의 행위가 상대방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모른다는 것, 알려고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죄악이다.

따라서 사회구성원으로서 공존에 필요한 것(옳음)들을 '알고' '모름'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옳음을 그릇되게 아는 것은 죄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떠나, 자신이 행하는 악(惡)을 선(善)으로 오인하는 문제가 된다. 선을 파괴하고 악을 세우는 일에 목숨을 거는 이들의 현주소다. 알아야 하고 바르게 알아야 하는 이유다. 자신의 죄에 대해서 너그러움을 버리고 냉철하게 될 때 까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다같은 죄인이라는 두루뭉술한 공범의식에, 상황논리에 빠져 자기를 합리화시키지 않게 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결단코 죄를 정당화 시키는 논리가 될 수 없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버젓이 통용된다. 여기에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있나'라는 무기는 의외로 강력해서 비판의 칼날을 돌이켜 그 칼을 든 이의 가슴을 찌르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최근 한 학교에서 일어난 학교폭력과 그 후 처리과정은 모르고 짓는 죄의 폐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은 학교의 장은 학교폭력이 일어난 사실을 알았을 때 이를 지체 없이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 통보하고, 자치위원회 위원장은 회의를 소집해야 한다. 그러나 이 학교의 장은, 지난해 그런 사실을 알고도 자치위원회에 통보하지 않았다.

특정학년에서 한 전학생에 대한 집단 따돌림이 7개월여 동안 계속됐고, 급기야 집단폭행이 발생하자 피해학생의 부모는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학교측에 요청했으나, 학교장은 자치위원회에 통보하는 것은 고사하고 가해학생들의 부모에게 조차 알리지 않았다.

올해 들어 이 학교에서 똑같은 피해자가 더 광범위해진 가해학생들에 의해 집단폭행을 당하는 사태가 재발한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피해 학생 학부모가 직접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소집해 달라고 요청했다. 가해학생들이 심리상담을 받고 최소한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스스로 깨닫고 반성할 수 있도록 조치해달라는 게 학부모의 요구였다. 그래야 집단폭력이 재발하지 않겠다는 생각때문이었다.

불타는 쇠덩이를 덥석 잡을 사람은 누구인가

하지만 이 학교는 가장 먼저 피해학생이 속한 반 학생들에게 피해학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써라고 조치했다. 또, 폭력을 주동한 가해학생이 몇일 째 등교하지 않자 같은반 담임은 학생들에게 몸과 마음이 아픈 가해학생을 위로하는 편지를 쓰라고 강요했다. 성의있게 쓰라는 주문도 빼놓지 않았다. 여기에 특정 수업시간을 소모했다. 사건 발생 이후 이 담임이 피해학생이나 그 학부모를 위로하는 일은 일절 없었다.

담임은 특히, 이번 집단폭력이 일어날 것을 사전에 알았다. 폭력을 주동한 학생의 피해학생에 대한 위협이 사건 전 날 있었고, 피해학생 부모는 이런 사실을 담임에게 알려 미연에 방지해 줄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이 정한 매뉴얼은 일절 이행되지 않았다. 나아가 사태가 발생한 지 이틀 뒤, 피해학생 부모가 학교에 찾아 갈 때 까지도 학교는 뒷짐지고 있었다.

이 학교의 교무부장은 피해사실을 조사하면서 돌을 던진 것으로 지목된 가해학생을 앞에 놓고 피해 학생을 다그치는 양태를 보여, 조사 이후 가해학생이 교실에서 득의양양하는 결과를 불렀다.

학교가 이러는 사이, 두번 열린 이 학교의 학교폭력자치위원회는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학교폭력SOS지원단 전북센터'로 사안을 이관했다. 가해학생 부모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들이 저지른 일이고, 적극 가담자와 단순 가담자가 있는데 별로 한 일도 없는 우리 애가 왜 똑같이 심리상담을 받고 사회봉사를 해야 한다는 말이냐"면서 소란을 피우고 위원회의 권고에 불복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 학교도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처음 열었다고 말한다. 잘 몰랐다는 것이다. 담임도 교원으로 임용되어 첫 부임한 터라 미숙하다며 이해하라고 한다. 책임있는 태도였는지 별도로 질문할 일이다. 이 학교가 처음부터 잘 하려는 의도가 없었을 수 있다는 우려에 사로잡히게 되는 국면이다. 피해학생은 학교폭력자치위원회 소집 이후 가해학생들의 더 공개적으로 자행되는 집단 따돌림을 견디지 못하고 더이상의 학교 등교를 포기한 상태다.

학교폭력자치위원회 소집은 궁극적으로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역주행하고 있다. 몰라서 신중하지 못했거나, 별것도 아닌 일을 공론화 한 피해학생 부모가 악(惡)이고 그런 악을 무찌르려는 학교는 선(善)이라는 그릇된 앎이 부른 불행이 아닐까.

모두 차치하고, 10여명이 한 명을 놓고 하루종일 욕설을 퍼붓고, 툭툭 치고 다니고, 저녁에 죽도록 패줄테니 각오하라며 위협하고, 혹자는 돌을 던져 맞추고, 혹자는 사전에 주동하거나 배후 조종하고 피해자를 보며 즐기고 나아가 그 꼴이 잘 됐다 박수치는 일이 '몰라서 한 행위'인데다, 대수롭지 않으며, 단순히 가담하여 욕설 몇마디 한 것은 죄가 없고 벌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 그걸 그 학부모와 학생이 공유하며 저항하여 처벌을 피해갔을 때 그 뒤에는 무엇이 기다릴까.

가해학생들의 미래를 놓고 지글지글 끓는 쇠덩어리를 마주하는 오늘이다. 그렇다면 학교는 어떤가.